돌고 있는지 보려면 표면에 표시가 있어야 한다. 블랙홀에는 그 표면이 없다. 그래서 사람은 블랙홀이 아니라 그 둘레의 빈 공간을 본다.
세 줄 요약
① 블랙홀에는 회전을 확인할 표면이 없다. 대신 회전하는 질량이 시공간을 끌고 도는 흔적을 읽는다.
② 지금까지 그 흔적은 X선과 전파 영상에서 간접적으로만 읽혔고, 값은 모형에 따라 흔들렸다.
③ 8월 19일 발표된 별 S301은 그 흔적을 별의 궤도에서 직접 잴 수 있는 첫 사례다.
유럽남천천문대가 8월 19일 우리 은하에서 가장 빠른 별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이름은 S301이고, 은하 중심의 블랙홀을 8.7년마다 한 바퀴 돈다. 같은 날 그 결과가 네이처에 실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속도가 아니라 연구진이 그 별로 하려는 일이었다.
그들은 블랙홀의 자전을 재겠다고 했다. 이 문장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된다.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곳이고, 표면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다. 도는지 안 도는지를 대체 무엇으로 판정한다는 말인가.
답은 블랙홀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다. 회전하는 질량은 자기 주변의 시공간을 함께 끌고 돈다. 그 끌림은 블랙홀에 접근하는 것들의 움직임에 지문처럼 남는다. 지문을 읽을 만큼 가까이 다가간 물체가 그동안 없었을 뿐이다.
블랙홀에는 돌 만한 표면이 없다. 도는 것은 블랙홀이 가진 각운동량이며, 그 값은 주변 시공간의 뒤틀림으로만 드러난다. 자전은 0에서 1 사이의 무차원 값으로 표기하고, 1은 이론이 허용하는 최댓값이다. 궁수자리 A*의 질량은 태양의 400만 배로 확정돼 있지만 이 자전값은 아직 직접 측정된 적이 없다. (ESO 보도자료 eso2612, 2026-08-19 · GRAVITY+ Collaboration 2026, Nature)
일반상대성이론이 말하는 블랙홀은 놀랄 만큼 단순한 대상이다. 질량, 자전, 전하. 이 셋만 정하면 나머지가 전부 따라 나온다. 별이 어떤 원소로 이루어졌는지, 어떤 모양이었는지 같은 정보는 붕괴하는 동안 전부 지워진다.
천체 규모에서 전하는 사실상 0으로 본다. 우주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라 반대 부호의 전하가 곧바로 끌려와 상쇄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남는 값은 둘, 질량과 자전이다.
자전값이 왜 중요한지는 사건지평선의 크기에서 바로 드러난다.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보다 최대로 회전하는 블랙홀의 지평선이 절반가량 작다. 같은 질량인데 경계선의 위치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 안쪽으로는 사건지평선 너머의 사정이 시작된다.
회전은 블랙홀이 주변에서 에너지를 뽑아내는 방식도 정한다. 퀘이사와 블레이자가 쏘아 올리는 제트의 동력을 회전 에너지에서 찾는 모형이 널리 쓰인다. 자전값 하나가 은하 전체의 진화 시나리오에 개입한다.
회전하는 질량은 주변 시공간을 함께 끌고 돈다. 1918년 요제프 렌제와 한스 티링이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유도했고, 흔히 틀끌림이라 부른다. 이 끌림 안에 놓인 물체는 궤도면 자체가 조금씩 돌아간다. 지구 둘레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며, 미국 항공우주국 위성이 잰 값은 1년에 37.2밀리각초였다. (Lense & Thirring 1918 · Everitt 외 2011, PRL 106:221101)
비유가 하나 있다. 꿀이 담긴 그릇 한가운데에서 숟가락을 돌리면 숟가락에 닿지 않은 꿀까지 함께 돌기 시작한다. 시공간도 그렇게 끌려간다는 것이 틀끌림의 그림이다. 다만 시공간은 꿀과 달리 점성이 없고, 끌림은 마찰과 무관하게 기하 자체의 변형에서 나온다.
이 효과는 지구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항공우주국과 스탠퍼드대가 함께 띄운 그래비티 프로브 비는 초정밀 자이로스코프 넷을 극궤도에 올려 축이 어느 쪽으로 밀려나는지를 쟀다. 최종 결과는 2011년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실렸다.
숫자를 보면 이 실험이 얼마나 무리한 일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이론이 예측한 틀끌림은 1년에 39.2밀리각초, 400미터 밖에서 본 머리카락 한 올의 굵기에 해당한다. 실측값은 37.2에 오차 7.2가 붙었다. 예측과 맞기는 했지만 오차가 20퍼센트에 가까웠다.
지구의 틀끌림이 이토록 재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다. 지구는 느리게 돌고 밀도가 낮다. 틀끌림은 질량이 크고 회전이 빠를수록, 그리고 가까이 갈수록 급격히 강해진다. 블랙홀 바로 옆이라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지구에서는 머리카락 굵기였던 효과가, 블랙홀 옆에서는 궤도를 눈에 띄게 비튼다.
틀끌림이 강해지는 안쪽까지 들어가는 유일한 별이기 때문이다. S301은 8.7년마다 한 바퀴를 돌고, 가장 가까울 때 블랙홀에서 17억 8천만 킬로미터까지 접근한다. 태양과 지구 사이 거리의 약 12배이고 토성 궤도보다 조금 바깥이다. 그 순간 속도는 초속 2만 5천 킬로미터로 빛의 8퍼센트를 넘는다. (ESO 보도자료 eso2612, 2026-08-19)
비교 대상이 있어야 이 값이 실감 난다. 그동안 은하 중심 연구의 주인공은 S2라는 별이었다. S2의 공전주기는 16년이고 최근접 속도는 광속의 3퍼센트 남짓이다. 같은 연구진이 2020년 S2의 궤도에서 슈바르츠실트 세차를 잡아냈다.
슈바르츠실트 세차와 틀끌림은 다른 현상이다. 앞의 것은 블랙홀의 질량이 만드는 효과로, 타원 궤도의 긴 축이 궤도면 안에서 천천히 회전한다. S2의 경우 한 바퀴에 12분각쯤 돌아간다. 뒤의 것은 자전이 만드는 효과이며, 궤도면 자체를 통째로 비틀어 놓는다.
가까이 다가가는 별을 찾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관측 성능에 있었다. S301은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보다 20억 배 어둡다. 연구진은 파라날 천문대의 8미터 망원경 넷을 하나로 묶은 간섭계를 썼다. 이렇게 묶으면 한 대일 때보다 공간 분해능이 15배 좋아진다.
발견 과정도 눈여겨볼 만하다. 연구진은 2023년 봄에 이 별을 처음 알아봤고, 그 뒤 2017년까지 쌓여 있던 관측 자료를 거꾸로 뒤져 궤도를 맞췄다. 마지막 최근접 통과는 2023년 초였다. 다음 차례는 2031년이다.
별이 아니라 블랙홀이 삼키는 물질의 빛으로 쟀다. 강착원반의 안쪽 끝은 자전이 빠를수록 블랙홀에 더 바짝 붙는데, 그 반지름을 X선으로 되짚는 방식이다. 원반이 내는 연속 스펙트럼을 맞추는 방법과, 철이 되쏘는 6.4킬로전자볼트 부근의 선이 얼마나 일그러졌는지를 읽는 방법이 쓰인다. (Reynolds 2014, Space Science Reviews · doi:10.1007/s11214-013-0006-6)
원리의 핵심은 마지막 안정 원궤도라는 개념이다. 블랙홀 둘레에서 물질이 원을 그리며 안정하게 돌 수 있는 한계선이 있고,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곧장 빨려 든다. 이 한계선의 반지름이 자전값에 따라 달라진다. 회전이 빠르면 물질이 더 안까지 내려와 돌 수 있다.
더 안쪽까지 내려온 물질은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더 강한 중력에서 빠져나오느라 빛의 파장이 더 크게 늘어난다. 그래서 철이 되쏘는 선은 좌우로 비대칭하게 뭉개진다. 그 뭉개진 폭이 얼마나 넓은지를 재면 한계선의 위치가 나오고, 거기서 자전값을 역산한다.
이 방법으로 여러 블랙홀의 자전이 추정됐다. TON 618이나 OJ 287 같은 먼 천체를 다루는 연구도 결국 이 계열의 논법 위에 서 있다. 다만 궁수자리 A*에는 잘 통하지 않았다.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은 활동적이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삼키는 양이 매우 적어, 읽을 만큼 밝은 원반이 없다.
그래서 등판한 것이 전파 간섭계였다. 사건지평선망원경은 2022년 궁수자리 A*의 고리 영상을 공개했다. 고리의 지름은 51.8마이크로각초로, 태양질량 400만 배짜리 회전 블랙홀 모형이 내놓는 값과 맞아떨어졌다. 자전축이 시선 방향과 이루는 각도는 30도보다 작다는 제한도 함께 나왔다.
기존 값이 전부 모형을 거쳐 나온 추정치이기 때문이다. 사건지평선망원경 자료를 베이즈 신경망으로 분석한 2025년 연구는 궁수자리 A*의 자전값을 0.8에서 0.9 사이로 보고했다. 최댓값에 가깝다는 뜻이다. 다만 이 결과는 100만 건에 가까운 모의실험을 학습시켜 얻은 추론이라 모형이 바뀌면 답도 바뀐다. (Janssen 외 2025, Astronomy & Astrophysics — EHT 딥러닝 추론 III)
같은 천체를 두고 기관들이 다른 말을 하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전값이 0.8에서 0.9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아직 아무도 재지 못했으니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재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구분해 두면 편하다. X선과 전파 영상은 블랙홀 주변의 물질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통해 자전을 짐작한다. 별의 궤도는 물질의 사정과 무관하게 시공간의 기하만 읽는다. 앞의 것은 중간에 낀 가정이 많고, 뒤의 것은 적다.
물론 별을 쓰는 방식에도 어려움은 있다. 궤도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서 최소 두 바퀴를 봐야 하고, 그 사이 다른 별들의 중력이 궤도를 흔드는 몫도 걷어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쌍성이 찢겨 남은 쪽으로 본다. 블랙홀에 그만큼 가까운 곳에서는 기체 구름이 뭉쳐 별이 되지 못한다. 두 별이 짝을 이룬 채 다가왔다가 조석력에 갈라지면 하나는 붙잡혀 좁은 궤도에 남고 다른 하나는 튕겨 나간다. 연구진은 S301의 짝이 은하를 아예 벗어날 만한 속도로 날아갔을 것으로 본다. (ESO 보도자료 eso2612, 2026-08-19)
이 설명이 필요한 이유는 별의 탄생 조건에 있다. 별은 기체 구름이 자기 중력으로 뭉쳐야 만들어지는데, 블랙홀 근처에서는 조석력이 구름을 먼저 찢어 놓는다. 그러니 거기 있는 별은 거기서 태어난 별일 수 없다.
대신 밖에서 들어왔다고 보면 앞뒤가 맞는다. 짝을 이룬 두 별이 함께 접근하다 하나가 붙잡히고 하나가 튕겨 나가는 그림이다. 튕겨 나간 쪽은 은하 밖으로 향하는 초고속 별이 된다.
궁수자리 A* 둘레의 S별들이 대체로 이런 이력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지금의 표준적 설명이다. S301은 그 가운데 가장 안쪽까지 밀려 들어온 사례에 해당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을 가장 극단적인 조건에서 시험하게 된다. 블랙홀은 질량과 자전, 전하 세 값만으로 완전히 기술된다는 것이 이론의 주장인데, 궁수자리 A*의 질량은 이미 알고 전하는 사실상 0이므로 남은 값이 자전 하나다. 연구진은 향후 10년 안에 이 값을 재겠다고 밝혔다. (ESO 보도자료 eso2612, 2026-08-19 · GRAVITY+ Collaboration 2026, Nature)
측정이 성공하면 확인되는 것은 자전값 자체만이 아니다. 궤도가 이론이 예측한 방식으로 비틀리는지를 보는 것이므로, 중력 이론 자체가 시험대에 오른다. 만약 예측과 어긋난다면 그 어긋남이 새 물리로 가는 실마리가 된다.
관측 계획은 이미 짜여 있다. 성능을 높인 GRAVITY+로 추적을 이어가고, 칠레에 건설 중인 초대형망원경의 MICADO 장비가 합류한다. 2031년 최근접 통과가 첫 시험 무대다.
그래도 이 소식이 특별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동안 블랙홀의 자전은 늘 무언가를 거쳐서 짐작하는 값이었다. 삼켜지는 물질의 빛을 거치고, 모의실험을 거치고, 가정을 거쳤다. 이제 그 사이에 낀 것들을 걷어낼 길이 하나 열렸다.
우리가 하려는 일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 별 하나를 던져 놓고, 그 별이 어떻게 휘는지를 보고 그 자리의 모양을 되짚는 것이다. 퀘이사와 블랙홀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도, 초기 우주의 거대 블랙홀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자랐는지를 묻는 일도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재는 방법은 늘 그 옆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일이었다.
본문의 모든 수치는 위 자료에서 가져왔다. 궁수자리 A*의 자전값에 대해 사건지평선망원경 계열 연구가 내놓은 0.8~0.9와, GRAVITY+ 연구진이 말하는 미측정 상태는 서로 다른 방식의 결과이므로 어느 한쪽을 고르지 않고 둘 다 적었다. 렌제-티링 효과의 1918년 도출은 널리 인용되는 사실이며, 원논문은 독일어로 발표돼 본문에서는 연도와 이름만 밝혔다. 이미지 세 점은 유럽남천천문대가 CC BY 4.0으로 공개한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