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천체

우리 은하 퀘이사였을까, 잠든 블랙홀이 하늘에 남긴 흔적

지금은 더없이 조용한 우리 은하의 중심. 그 자리에 웅크린 거대한 블랙홀이 한때 퀘이사처럼 타올랐을지 모른다는, 하늘에 남은 흔적들을 따라가 본다.

글 · 경이의목록· 약 7분 읽기· 2026.07

오래 다니던 골목의 가게가 어느 날 문을 닫으면, 한동안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눈길이 머문다. 불 꺼진 유리창과 빛바랜 간판, 셔터에 얼룩처럼 밴 지난 세월의 자국. 분명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자리인데, 지금은 숨을 죽이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 은하의 한복판에도 꼭 그런 자리가 하나 있다. 지금은 더없이 고요하지만, 아주 먼 옛날에는 눈이 멀 만큼 밝게 타올랐을지 모르는 자리다.

1.지금은 조용한 우리 은하의 심장

우리 은하를 옆에서 바라본 상상도. 납작한 원반 모양의 은하가 가로로 길게 누워 있고, 그 한가운데가 수많은 별로 눈부시게 밝다. 오른쪽에 태양(Sun)과 별 무리 웨스터룬드 1(Westerlund 1)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우리 은하를 옆에서 본 상상도. 가운데의 밝은 팽대부 깊은 곳에, 태양의 약 400만 배 무게인 블랙홀 궁수자리 A*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NASA/JPL-Caltech/ESO/R. Hurt · CC BY 4.0

우리 은하 중심에는 태양의 약 400만 배나 되는 거대한 블랙홀이 하나 웅크리고 있다. 이름은 궁수자리 A*, 밤하늘의 궁수자리 방향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우리로부터는 약 2만 7천 광년 떨어져 있다. 2022년에는 전 세계의 전파망원경을 하나로 이어 붙여, 이 블랙홀이 드리운 그림자를 처음으로 찍어 내기도 했다. 이름값만 보면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괴물 같다. 그런데 실제 이 블랙홀은 놀라울 만큼 얌전하다.

주위의 가스를 거의 먹지 않는 탓이다. 제 몸집에 견주면 흘리는 빛도 미미하다. 삼킬 수 있는 최대치에 비하면, 지금 궁수자리 A*가 내는 빛은 그야말로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여름밤 은하수를 올려다볼 때 그 중심이 특별히 눈부시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우주의 기준에서 보면, 우리 은하의 심장은 지금 깊이 잠들어 있다.

우리가 이 블랙홀의 무게를 아는 방법도 흥미롭다. 천문학자들은 은하 중심 바로 곁을 도는 별 몇 개를, 무려 수십 년에 걸쳐 끈질기게 쫓았다. 그 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중심으로 어지럽게 돌고 있었다. 어떤 별은 무서운 속도로 중심에 바짝 다가갔다가 다시 멀리 튕겨 나갔다. 그 춤의 속도와 크기를 재어, 한가운데에 태양의 400만 배짜리 블랙홀이 있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집요한 추적은 2020년 노벨 물리학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퀘이사를 나란히 떠올려 보면 이야기가 묘해진다. 퀘이사 역시 은하 중심의 거대한 블랙홀이 물질을 게걸스럽게 삼키며, 수천억 개의 별이 모인 은하 전체를 홀로 압도하도록 밝게 타오르는 현상이다. 재료가 같은데 한쪽은 우주에서 가장 눈부신 등불이 되고, 다른 한쪽인 우리 은하 중심은 이토록 조용하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 은하 퀘이사' 시절, 그러니까 우리 은하의 심장이 퀘이사처럼 이글거리던 때가 과연 있었을까. 퀘이사가 대체 무엇인지부터 궁금하다면 퀘이사란 무엇일까 편을 먼저 읽어도 좋다.

같은 블랙홀, 밥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삼킬 때 — 퀘이사 달아오른 물질이 눈부시게 타오른다 굶을 때 — 잠듦 삼킬 것이 없으면 빛도 함께 꺼진다 블랙홀이 빛나는 게 아니라, 빨려들기 직전의 물질이 내지르는 빛이다
퀘이사의 빛은 블랙홀이 아니라, 그 속으로 떨어지기 직전 달아오른 물질에서 나온다. 삼킬 것이 떨어지면 그 빛도 사그라든다.도해 · 경이의목록

2.퀘이사는 어떻게 잠드는가

퀘이사의 밝기는 오로지 '밥'에 달려 있다. 블랙홀 둘레로 가스와 별의 잔해가 소용돌이치며 빨려들 때, 그 물질은 서로 짓눌리고 마찰하며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뜨겁게 달아오른다. 수백만 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바로 그 열기가 빛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퀘이사다. 그러니 블랙홀 자체가 빛나는 게 아니다. 블랙홀로 떨어지기 직전의 물질이 마지막으로 내지르는 비명, 그것이 곧 퀘이사의 빛이다.

블랙홀이 이토록 밝게 타오를 수 있는 건, 강착이 놀랍도록 효율 좋은 발전기이기 때문이다. 별이 수소를 태워 빛을 내는 핵융합조차, 물질이 품은 에너지의 채 1퍼센트도 끌어내지 못한다. 그런데 블랙홀로 빨려드는 물질은 그보다 열 배 넘게 효율적으로 제 에너지를 빛으로 바꾼다. 같은 양의 재료로 훨씬 더 눈부시게 타오르는 것이다. 그러니 연료만 넉넉하다면, 블랙홀 하나가 수천억 개의 별을 거느린 은하 전체보다 밝아지는 일도 얼마든지 벌어진다.

그렇다면 그 빛은 언제 꺼질까. 삼킬 것이 떨어지는 순간이다. 둘레의 가스를 웬만큼 먹어 치우고 나면 블랙홀은 더 삼킬 게 없어 조용해진다. 불은 장작이 있을 때만 타오르고, 장작이 다하면 저절로 사그라든다. 블랙홀도 다르지 않다.

이 통찰을 처음 또렷이 내놓은 사람이 천문학자 도널드 린든벨이다. 그는 1969년에, 겉보기엔 평범하고 조용한 여느 은하의 중심에도 실은 거대한 블랙홀이 숨어 있으며, 그것들은 한때 퀘이사로 타오르다 연료가 바닥나 잠든 '늙은 퀘이사'라고 내다봤다.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 논리대로라면 우리 은하 중심의 궁수자리 A*도, 지금은 굶주려 잠들어 있을 뿐 아주 오래전에는 뜨겁게 타올랐을 수 있다.

3.하늘에 남은 두 개의 거품

짐작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우리 은하가 한때 타올랐다면, 그 흔적이 어딘가에 남아 있어야 한다. 놀랍게도 흔적은 하늘 전체에 걸쳐 있었다. 다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은 감마선의 형태였다. 2010년, 페르미 감마선 우주망원경이 모은 자료를 뒤지던 연구진이 은하 중심의 위와 아래로 각각 2만 5천 광년씩, 도합 5만 광년에 이르는 거대한 거품 두 개를 찾아냈다.

은하 심장에서 위아래로 부푼 두 거품 중심 은하 원반 (옆에서 본 모습) 약 2만 5천 광년 감마선으로만 보이는 이 거품은, 과거 중심에서 뿜어 나온 거대한 에너지의 자국이다
2010년 페르미 망원경이 찾아낸 두 거품. 은하 중심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로 각각 2만 5천 광년씩 부풀어 있다.도해 · 경이의목록

훗날 페르미 버블이라 이름 붙은 이 구조는, 마치 은하의 심장에서 위아래로 부풀어 오른 두 개의 풍선처럼 생겼다. 크기가 상상을 넘어선다. 우리 은하 원반의 절반에 맞먹는 거품이 위아래로 하나씩 걸려 있는 것이다. 이만한 것을 부풀리려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한꺼번에 쏟아져야 한다.

연구진은 그 근원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중심 블랙홀이 한때 물질을 왕성하게 삼키며 내뿜은 분출이다. 다른 하나는 중심부에서 별이 폭발적으로 태어나며 남긴 거센 바람이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다. 지금은 잠잠한 우리 은하의 심장이, 과거에는 결코 잠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옛 불길이 남긴 재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던 셈이다.

이 거품이 한때의 착각이 아니라는 증거는 훗날 더 쌓였다. 2020년, 독일의 엑스선 망원경 에로시타가 페르미 버블을 통째로 감싸는 한층 더 거대한 엑스선 거품을 찾아냈다. 감마선으로 보이던 자국이, 전혀 다른 파장의 엑스선으로도 또렷이 드러난 것이다. 서로 다른 눈으로 같은 흉터를 두 번 확인한 셈이다. 우리 은하가 과거에 무언가 거대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은, 이제 좀처럼 부정하기 어려워졌다.

4.350만 년 전, 중심이 번쩍였다

페르미 버블이 아득한 옛날의 흔적이라면, 좀 더 최근의 사건을 가리키는 증거도 있다. 2019년, 조스 블랜드호손이 이끄는 연구진이 뜻밖의 자리에서 단서를 찾아냈다. 우리 은하에서 무려 20만 광년이나 떨어진 마젤란 흐름이었다. 마젤란 흐름은 이웃한 작은 은하들에서 길게 흘러나온 가스 줄기다. 그 먼 가스가 무언가에 세게 얻어맞아 달아오른 흔적을 품고 있었다.

원뿔 모양의 섬광이 20만 광년 밖까지 닿았다 궁수자리 A* 마젤란 흐름 (약 20만 광년 밖) 이온화된 자국 약 350만 년 전, 궁수자리 A*가 30만 년 동안 짧고 강렬하게 타올랐다
세이퍼트 섬광의 상상 도식. 중심에서 위아래로 뻗은 원뿔형 에너지가, 20만 광년 밖 마젤란 흐름까지 닿아 그 가스를 이온화시켰다.도해 · 경이의목록

무엇이 그토록 먼 가스를 데웠을까. 역산해 보니, 약 350만 년 전에 궁수자리 A*가 짧고 강렬하게 타오른 '세이퍼트 섬광'이 범인이었다. 중심에서 원뿔 모양의 빛과 에너지가 위아래로 길게 뻗어 나가, 20만 광년 밖의 가스까지 이온화시킨 것이다. 이 섬광은 대략 30만 년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지질학적으로는 순식간이지만, 사람의 시간으로는 아득한 세월이다.

'세이퍼트'라는 이름은 은하 중심이 어중간하게 활동적인 은하들을 가리키는 말에서 왔다. 퀘이사만큼 압도적이진 않아도, 여느 조용한 은하보다는 중심이 제법 밝게 타오르는 부류다. 그러니 350만 년 전 우리 은하의 중심은, 잠깐이나마 딱 그런 상태에 이르렀던 셈이다. 완전한 퀘이사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깊은 잠과는 견줄 수 없이 격렬한 순간이었다. 잠든 심장이 짧게 다시 뛴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시점이다. 350만 년 전이면, 아프리카의 초원을 두 발로 걷던 우리의 먼 조상들이 살아 있던 무렵이다. 화석으로 남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를테면 '루시'라 불리는 이들이 그 하늘 아래를 거닐던 시절이다. 만약 그들이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봤다면 어땠을까. 은하 중심 방향에서 희미하게 번지는 빛의 기둥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빛이 무엇인지는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저 밤하늘의 낯선 얼룩으로만 여겼을 테다. 그럼에도 우리 은하의 심장이 마지막으로 크게 뒤척인 그 순간을, 지구 위 누군가는 정말로 두 눈으로 목격했을 수 있다.

5.잠든 심장

우리 은하 퀘이사 가설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지금 우리가 몸담은 이 평온한 은하도, 한때는 그 심장이 뜨겁게 타오르던 격렬한 곳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 은하만의 사연이 아니다. 우주의 거의 모든 큰 은하는 중심에 이런 거대한 블랙홀을 하나씩 품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지금 우리 은하처럼 조용히 잠들어 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한 번도 타오른 적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대개는 아주 먼 옛날 격렬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 긴 휴식에 든 것에 가깝다. 밤하늘을 수놓은 저 잔잔한 은하들 하나하나가, 저마다 뜨거웠던 젊은 날을 가슴에 묻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 은하를 늘 지금처럼 잔잔하고 안전한 보금자리였으리라 여긴다. 하지만 하늘에 남은 두 개의 거품과, 20만 광년 밖까지 닿은 오래된 섬광의 자국은 사뭇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은하의 중심은 잠들어 있을 뿐, 죽은 것이 아니다. 아주 먼 훗날 충분한 가스가 다시 중심으로 흘러든다면, 궁수자리 A*는 또 한 번 깨어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 은하는 스스로 만든 등불로 밤을 밝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깨어남은 생각보다 극적인 형태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수십억 년 뒤, 우리 은하는 이웃한 안드로메다 은하와 정면으로 부딪칠 예정이다. 두 은하가 서로 뒤섞이면 엄청난 양의 가스가 중심으로 쏟아져 들 수 있다. 오래 굶주린 블랙홀에게 그것은 더없는 진수성찬이다. 그때 우리 은하의 심장이 다시 한번 퀘이사처럼 타오른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 은하의 심장은 죽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잠들어 있다.

그러니 다음번에 도시의 불빛을 피해 은하수를 마주하게 된다면, 당신도 그 부연 빛의 띠 한가운데를 가만히 바라봐 주면 좋겠다. 지금은 고요한 그 자리가, 우리 조상이 초원을 걷던 무렵 마지막으로 번쩍였고, 아주 먼 미래에 다시 타오를지도 모르는 우리 은하의 잠든 심장이니 말이다. 보이는 고요함 너머에서 지난 불꽃과 다가올 불꽃을 함께 읽어 내는 눈이, 곧 우주를 읽어 내는 눈이다.


§참고한 자료

이 글의 사실은 아래 1차 문헌(원논문)과 기관 자료에 근거합니다. 위키백과·보도자료가 인용하는 원출처까지 함께 밝혀 둡니다.

잠든 블랙홀 — 조용한 은하 중심은 늙은 퀘이사

  1. Lynden-Bell, D. (1969). “Galactic Nuclei as Collapsed Old Quasars.” Nature 223, 690. doi:10.1038/223690a0 — 조용한 은하 중심에도 거대 블랙홀이 숨어 있으며, 한때 퀘이사로 타올랐다는 착상.

페르미 버블 — 하늘에 남은 감마선 거품

  1. Su, M., Slatyer, T. R. & Finkbeiner, D. P. (2010). “Giant Gamma-ray Bubbles from Fermi-LAT: AGN Activity or Bipolar Galactic Wind?” ApJ 724, 1044. doi:10.1088/0004-637X/724/2/1044 — 은하 중심 위아래로 뻗은 약 5만 광년 규모의 감마선 거품 발견.

세이퍼트 섬광 — 350만 년 전의 대분출

  1. Bland-Hawthorn, J., Maloney, P. R., Sutherland, R., et al. (2019). “The Large-scale Ionization Cones in the Galaxy.” ApJ 886, 45. doi:10.3847/1538-4357/ab44c8 — 약 350만 년 전 궁수자리 A*의 세이퍼트 섬광이 20만 광년 밖 마젤란 흐름을 이온화.

개괄

  1. Wikipedia — Fermi bubbles · Sagittarius A* — 크기·질량·발견 경위 정리.
  2. ESO — Artist’s impression of the Milky Way (eso1339e) — 히어로 이미지 출처(NASA/JPL-Caltech/ESO/R. Hurt, CC BY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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