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과 퀘이사는 비슷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같은 층위의 단어가 아니다. 하나는 물체이고, 하나는 그 물체가 벌이는 일 — 장작과 모닥불의 비유로 두 이름을 확실히 구분해 본다.
누군가 밤하늘 이야기를 하다 블랙홀과 퀘이사를 한 문장 안에서 뒤섞어 쓰는 걸 종종 본다. 두 이름은 어딘가 비슷하게 들리지만, 알고 보면 같은 층위의 단어가 아니다. 퀘이사 블랙홀 차이를 한마디로 줄이면 이렇다. 블랙홀은 하나의 천체이고, 퀘이사는 그 블랙홀이 벌이는 사건이다.

블랙홀은 물체다. 시공간이 극단으로 휘어, 한번 안으로 들어간 것은 빛조차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리. 그래서 블랙홀은 그 자체로는 아무 빛도 내지 않는다. 우주에서 가장 어두운 침묵에 가깝다.
퀘이사는 그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왕성하게 집어삼킬 때, 그 언저리가 눈부시게 타오르는 현상이다. 그러니 블랙홀이냐 퀘이사냐를 묻는 건, 장작이냐 모닥불이냐를 묻는 것과 닮았다. 장작은 벽난로 옆에 늘 쌓여 있는 물건이고, 모닥불은 그 장작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사건이다. 블랙홀은 장작이고, 퀘이사는 그 장작이 활활 타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둘은 아무 상관없는 말일까. 그렇지는 않다. 같은 대상을 두고 하나는 물건을, 하나는 그 물건이 벌이는 일을 가리킬 뿐이다.
두 이름이 이렇게 헷갈리게 된 데엔 사연이 있다. 퀘이사라는 말부터가 준항성체, 그러니까 별처럼 보이지만 별은 아닌 무엇이라는 뜻이다. 1960년대 천문학자들은 하늘에서 강한 전파를 쏘는 별 같은 점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한참을 몰랐다. 그 점의 정체가 먼 은하 중심의 블랙홀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퀘이사는 이름부터 오해를 안고 태어난 천체였다.
사실 이 헷갈림은 꽤 자연스럽다. 우리가 어디서든 블랙홀 사진이라며 보게 되는 그 눈부신 고리와 소용돌이는, 엄밀히 말하면 블랙홀이 아니라 그 둘레에서 타오르는 빛이다. 블랙홀 자체는 그 한복판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뿐이다. 우리 눈이 늘 밝은 쪽으로 이끌리다 보니, 정작 주인공인 어둠은 뒷전으로 밀려나곤 한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려면 이렇게 나눠야 한다. 눈에 보이는 그 찬란한 빛의 잔치가 퀘이사이고, 그 잔치를 벌이는 보이지 않는 주인이 블랙홀이다. 잔치가 끝나도 주인은 그대로 남는다. 불이 꺼진 자리에 장작이 남듯이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짚고 가야 한다. 퀘이사의 그 눈부신 빛은 블랙홀이 내는 게 아니다. 빛조차 붙잡아 두는 블랙홀이 스스로 밝을 리 없다.
빛은 블랙홀로 빨려드는 가스에서 나온다. 곧장 떨어지지 못한 가스는 소용돌이치며 납작한 원반을 이루는데, 이것이 강착원반이다. 안으로 갈수록 서로 세차게 마찰해 수백만 도까지 달아오르고, 그 열이 자외선과 엑스선을 어마어마하게 쏟아 낸다. 우리가 퀘이사라 부르며 올려다보는 빛은, 블랙홀에게 삼켜지기 직전의 가스가 지르는 마지막 비명이다.
놀라운 건 그 효율이다. 별이 수소를 태워 빛을 낼 때, 연료가 에너지로 바뀌는 비율은 0.7퍼센트 남짓이다. 그런데 블랙홀 곁으로 떨어지는 물질은 그 열 배가 넘는, 무려 10퍼센트가량을 빛으로 내놓는다. 우주에서 물질을 가장 알뜰하게 빛으로 바꾸는 방법이 바로 블랙홀에게 먹이는 일이다. 그래서 퀘이사 하나가 자신을 품은 은하, 수천억 개의 별을 다 합친 빛마저 가볍게 넘어선다.
빛만이 다가 아니다. 어떤 퀘이사는 블랙홀 양극에서 가느다란 제트를 뿜는데, 이 물질 다발은 거의 빛의 속도로 은하 밖 수십만 광년까지 뻗어 나간다. 놀랍게도 그 동력의 일부는 블랙홀 자신의 회전에서 나온다. 검기만 한 줄 알았던 블랙홀이, 돌면서 제 회전 에너지를 우주로 내던지고 있다. 이 또한 블랙홀 자체는 아니고, 그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제트가 지구를 정면으로 겨눌 때는 유난히 밝고 사납게 보여, 아예 블레이자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같은 블랙홀을 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일 뿐이다.
결국 퀘이사 블랙홀 차이가 갈리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검은 블랙홀과, 그 둘레에서 타오르는 밝은 빛은 애초에 서로 다른 것이다. 이 빛의 정체가 더 궁금하다면 퀘이사란 무엇일까 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블랙홀은 우주에 생각보다 흔하다. 큰 별이 수명을 다하면 그 중심이 무너져 블랙홀이 되고, 이런 별 무게의 블랙홀만 해도 우리 은하 안에 억 단위로 흩어져 있다. 하지만 이들은 태양의 몇 배에서 몇십 배 남짓이라, 아무리 물질을 먹어도 퀘이사만큼 밝게 타오르진 못한다.
퀘이사로 불붙는 건 완전히 다른 급의 블랙홀이다. 웬만한 은하라면 저마다 중심에 태양의 수백만에서 수십억 배에 이르는 초대질량 블랙홀을 하나씩 품고 있는데, 퀘이사는 오직 이 거대한 블랙홀이 왕성하게 폭식할 때에만 나타난다. 그러니 조건은 둘이다. 충분히 무거운 블랙홀, 그리고 곁에 넉넉히 몰려든 먹이.
그래서 오늘날 우주를 둘러보면, 은하 백 곳 가운데 중심이 환하게 켜진 곳은 한두 곳뿐이다. 나머지 대다수 은하의 중심 블랙홀은 조용히 잠들어 있다. 게다가 같은 켜짐에도 세기가 있어서, 퀘이사만큼 밝진 않아도 은은하게 활동하는 세이퍼트 은하나 전파은하 같은 사촌들도 있다. 퀘이사는 그 활동은하핵 가족 가운데 가장 화려하게 타오르는 맏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이 있다. 블랙홀은 마냥 폭식할 수만은 없다. 너무 왕성하게 먹어 치우면 그만큼 거센 빛과 바람이 뿜어져 나와, 정작 곁의 가스를 바깥으로 밀어내 버린다. 스스로 밥상을 엎는 격이라, 퀘이사의 전성기는 좀처럼 영원히 이어지지 못한다. 밝게 타오르는 바로 그 힘이, 제 불을 끄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조건을 늘 갖춘 블랙홀은 드물다. 무엇이 그 둘을 갈라놓을까. 먹을 것이 떨어진 블랙홀은 그저 조용하다. 우리 은하 한복판에는 태양의 사백만 배쯤 되는 궁수자리 에이스타가 앉아 있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먹이가 없어 거의 굶주린 채 잠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 은하는 퀘이사가 아니다. 같은 초대질량 블랙홀이라도 지금 무엇을 얼마나 먹고 있느냐가 그 얼굴을 가른다.
그러니 퀘이사는 블랙홀의 정체라기보다, 블랙홀이 지나는 한 시기에 가깝다. 연료가 바닥나면 빛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다시 어둡고 조용한 블랙홀로 잠든다. 반대로 어느 날 새 가스가 왈칵 밀려들면, 잠들었던 블랙홀도 다시 타오를 수 있다. 실제로 몇 해 사이에 밝기가 확 달라지며 켜졌다 꺼지기를 되풀이하는 블랙홀들이 관측되기도 한다.
이 관계를 뒤집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나온다. 오늘날 은하마다 중심에 자리한 조용한 블랙홀들의 무게를 모두 더해 보면, 아주 먼 옛날 퀘이사들이 쏟아 낸 빛의 총량과 딱 맞아떨어진다. 지금은 잠잠한 이 블랙홀들이, 저마다 한때 퀘이사로 활활 타오르며 그만큼 살을 찌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조용한 블랙홀은 대개 늙은 퀘이사다.
블랙홀이 잠깐 반짝이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이따금 별 하나가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블랙홀의 조석력에 갈가리 찢기기도 하는데, 그 잔해가 원반을 이뤄 몇 달에서 몇 해 동안 밝게 타오르다 사그라든다. 작은 퀘이사가 잠깐 켜졌다 꺼지는 것과 같다.

퀘이사는 아주 먼 옛날, 우주가 젊고 가스가 흔하던 시절에 훨씬 많았다. 그때는 블랙홀마다 먹을 것이 넘쳐 곳곳에서 환하게 타올랐고, 세월이 흐르며 연료가 마르자 하나둘 조용해졌다. 지금 우주가 어둑한 건, 대부분의 블랙홀이 이미 폭식의 시기를 지나 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찾아낸 가장 먼 퀘이사들은 우주가 겨우 몇억 살이던 시절, 그러니까 백삼십억 년 더 전에 벌써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토록 이른 시기에 어떻게 그만한 블랙홀이 자라 폭식까지 시작했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아득한 빛조차 블랙홀이 낸 것이 아니라 블랙홀이 삼키던 물질이 남긴 흔적이라는 점이다.
우리 은하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은하 중심 위아래로 수만 광년씩 부풀어 오른 거대한 감마선 거품이 발견됐는데, 궁수자리 에이스타가 겨우 몇백만 년 전까지 훨씬 사납게 활동했다는 흔적으로 읽힌다. 그리고 수십억 년 뒤, 안드로메다 은하와 부딪쳐 가스가 중심으로 쏟아져 들면, 그 블랙홀은 다시 한번 퀘이사로 눈뜰지도 모른다. 지금은 조용한 그 블랙홀이, 언젠가는 하늘에서 가장 밝은 등불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블랙홀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을 삼키고 있느냐에 따라, 어떤 때는 우주에서 가장 어두운 침묵이 되고 어떤 때는 가장 밝은 빛이 된다. 블랙홀과 퀘이사를 굳이 둘로 나눠 부르는 것도, 실은 이 하나의 존재가 걸친 두 얼굴을 가리키기 위해서다.
생각해 보면 블랙홀과 퀘이사는 서로 반대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는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는 완벽한 어둠이고, 하나는 온 우주에서 가장 멀리까지 닿는 빛이다. 그런데 그 둘이 실은 같은 존재의 다른 얼굴이라는 게, 이 이야기에서 가장 묘한 대목이다. 어둠과 빛이 한 몸이라니, 우주는 종종 이렇게 우리의 상식을 슬쩍 비껴간다.
블랙홀은 물체이고, 퀘이사는 그 물체가 타오르는 순간이다.
별처럼 콕 박힌 저 먼 점 하나가 사실은 굶주렸다 폭식하기를 되풀이하는 한 은하의 심장임을 알고 나면, 블랙홀과 퀘이사라는 두 이름도 더는 헷갈리지 않는다. 하나는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그 존재가 이따금 터뜨리는 눈부신 사건이다. 오늘 밤 당신이 올려다보는 하늘 어딘가에도, 지금 이 순간 조용히 잠든 블랙홀과 요란히 타오르는 퀘이사가 함께 흩어져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사실은 아래 1차 문헌(원논문)과 기관 자료에 근거합니다. 위키백과·보도자료가 인용하는 원출처까지 함께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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