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천체

빅뱅 7억 년 만에 나타난 초기 우주 거대 블랙홀, 씨앗 문제

우주가 갓난아기였을 때, 이미 태양 수십억 배로 자란 블랙홀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랄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 이 수수께끼, 천문학이 씨앗 문제라 부르는 난제를 들여다본다.

글 · 경이의목록· 약 6분 읽기· 2026.07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누구에게나 갓난아기 시절 한 장이 끼어 있다. 주먹은 밤톨만 하고, 온몸을 다 합쳐도 어른 팔뚝 하나 길이다. 그런데 그 백일 사진 속 아기가 이미 씨름 선수만 한 덩치였다면 어떨까. 누구라도 사진이 잘못됐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우주를 찍은 사진첩에서, 천문학자들은 바로 그런 장면과 마주쳤다. 우주가 태어난 지 겨우 7억 년, 지금 나이의 이십분의 일밖에 안 된 갓난 시절에, 이미 태양의 수십억 배로 자란 블랙홀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초기 우주 거대 블랙홀은 지금도 천문학의 가장 큰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다.

1.우주가 갓난아기였을 때 나타난 거인

우주가 갓 태어났을 때 이미 있던 거인들 가로 띠는 138억 년에 이르는 우주의 일생 빅뱅 오늘 · 138억 년 ← 우주 나이의 약 5% 구간 → J1342+0928 · 약 6.9억 년 · 태양 8억 배 J0313−1806 · 약 6.7억 년 · 태양 16억 배 UHZ1 · 약 4.7억 년 · 가장 이른 후보 우주의 첫 한 뼘 안에, 이미 태양 수십억 배 블랙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주의 일생을 하나의 가로 띠로 폈을 때, 가장 먼 퀘이사들은 맨 왼쪽 끄트머리에 몰려 있다. 우주 나이의 5%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미 태양 수십억 배 블랙홀이 빛났다.도해 · 경이의목록

가장 먼 퀘이사 하나를 소개하자. 이름은 J1342+0928, 부호만 봐서는 무뚝뚝하지만 사연은 놀랍다. 이 퀘이사의 빛은 우리에게 오기까지 약 130억 년을 달려왔다. 오는 동안 그 빛은 부풀어 오르는 우주를 따라 함께 늘어나, 본래보다 한참 붉은 쪽으로 물들었다. 그 늘어난 정도를 되짚으면 천체까지의 거리가 나온다. 천문학자들이 '가장 먼'이라는 말을 자신 있게 붙일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우주가 태어난 지 약 6억 9천만 년밖에 안 됐을 때의 모습이다.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니, 사람으로 치면 여든 살 노인의 생애에서 겨우 서너 살 무렵에 해당하는 나이다. 그 어린 우주 한복판에, 태양 팔억 배 무게의 블랙홀이 이미 시퍼렇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기록은 곧 깨졌다. 몇 해 뒤 발견된 또 다른 퀘이사 J0313-1806은 그보다도 이르다. 빅뱅 후 약 6억 7천만 년, 이 퀘이사의 심장에는 태양의 십육억 배에 이르는 블랙홀이 도사리고 있었다. 은하 하나가 뿜는 빛을 통째로 합친 것보다 밝게 타올랐다. 블랙홀 자체는 빛을 내지 못한다. 다만 그 둘레로 빨려드는 가스가 서로 짓눌리고 부대끼며 수십만 도로 달아올라, 은하 하나를 압도하는 광채를 뿜을 뿐이다. 그 불빛이 백억 년을 넘어 우리 망원경에 겨우 닿았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무거운 블랙홀이 그토록 이른 시기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별도, 은하도 이제 막 빚어지던 우주의 새벽이었다. 그 짧은 틈에 블랙홀이 태양 수십억 배까지 자랄 겨를이 과연 있었을까. 초기 우주 거대 블랙홀이 던지는 물음은 바로 이 한 줄이다.

빛이 제 밥상을 걷어찬다 에딩턴 한계 — 먹는 속도의 상한 블랙홀 빛의 압력 (바깥으로) 가스 (안으로) 당기는 중력과 미는 빛이 맞서, 아무리 굶주려도 일정 속도 이상은 못 먹는다
블랙홀로 떨어지는 가스는 뜨겁게 달아올라 강한 빛을 뿜고, 그 빛이 뒤따르는 가스를 도로 밀어낸다. 그래서 먹는 속도에는 상한이 생긴다.도해 · 경이의목록

2.블랙홀도 한입에 다 삼키지는 못한다

흔히 블랙홀이라 하면 뭐든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우주의 대식가를 떠올린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블랙홀은 분명 게걸스럽지만, 먹는 속도에는 뜻밖에도 정해진 상한이 있다. 이 한계를 처음 따진 천문학자의 이름을 따 에딩턴 한계라 부른다. 이름은 거창해도 담긴 뜻은 제법 소박한 편이다.

원리는 제법 단순하다. 블랙홀로 가스가 쏟아져 들어가면 그 가스가 엄청난 빛을 뿜는 것이다. 그런데 빛에도 미는 힘이 있다. 바깥으로 새어 나가는 이 빛이, 뒤따라 떨어지려는 가스를 도로 밀어낸다. 너무 급히 먹으려 들면 제가 내뿜은 빛이 밥상을 걷어차 버린다. 그래서 블랙홀은 아무리 굶주려도, 일정 속도 이상으로는 결코 몸집을 불리지 못한다. 이렇게 상한선까지 꽉꽉 채워 쉼 없이 먹어 댄다 해도, 무게가 고작 두 배로 느는 데에만 대략 수천만 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다. 블랙홀에게도 마음껏 폭식하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이제 계산이 어긋나는 지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만약 첫 별이 죽어 남긴 작은 블랙홀에서 출발했다면 그 씨앗의 무게는 태양의 백 배 남짓인데, 여기서 에딩턴 한계를 얌전히 지키며 태양 십억 배까지 불어나려면 넉넉잡아 팔억 년, 어쩌면 그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본 거인들은 그보다도 훨씬 어린 우주에 이미 버티고 있었다. 시간이 모자란다. 우주의 나이 자체가 씨앗을 그만큼 키울 여유를 도무지 내주지 않았다. 갓 안친 밥이 채 뜸도 들기 전에 이미 한 솥 가득 지어져 있던 격이니, 대체 누가 언제 이 밥을 지었단 말인가.

3.그렇다면 씨앗이 애초에 컸을까

시간이 부족하다면 풀이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씨앗이 처음부터 남달리 컸다고 보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성장 속도가 우리 짐작보다 훨씬 빨랐다고 보는 쪽이다.

같은 거인에 이르는 두 갈래의 씨앗 가벼운 씨앗 첫 별의 잔해 태양 ~100배 아주 오랜 성장 · 폭식(초에딩턴)이 필요 무거운 씨앗 직접붕괴 태양 ~수만 배 출발선이 앞당겨져 짧은 성장으로 충분 초대질량 블랙홀 태양 수십억 배
가벼운 씨앗은 태양 백 배쯤에서 출발해 아주 오래, 때로는 한계를 넘는 폭식으로 자라야 한다. 무거운 씨앗은 직접붕괴로 태양 수만 배에서 시작해 훨씬 짧은 길로 같은 거인에 이른다.도해 · 경이의목록

첫 번째 갈래를 무거운 씨앗, 곧 직접붕괴 가설이라 한다. 보통 블랙홀은 별이 한 생을 다 살고 죽어야 비로소 생겨나는 법이다. 그런데 초기 우주의 어떤 가스구름은 자잘한 별로 조각나지 않고 통째로 무너져 내렸을 수 있다. 그러면 별을 거치는 단계를 통째로 건너뛰고, 단숨에 태양 수만 배짜리 블랙홀이 태어난다. 이런 일이 벌어지려면 가스가 자잘한 별로 흩어지지 않도록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런 환경은 오직 우주의 첫 새벽에만 잠깐 허락됐으리라 본다. 출발선을 저 앞에 그어 두고 시작한 씨앗이다. 두 번째 갈래는 폭식 성장이라 부른다. 짧은 순간이나마 에딩턴 한계를 넘어설 만큼 평소보다 훨씬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면, 작은 씨앗이라도 벼락같이 몸집을 불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 어느 쪽이 옳은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둘 다 조금씩 거들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어느 설명을 택하든 우주 초창기에 우리가 미처 그리지 못한 극적인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답을 모른다고 정직하게 인정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새 관측이 파고들 틈이 열린다. 그리고 바로 그 틈으로, 뜻밖의 천체 하나가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이 거대한 빛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퀘이사란 무엇일까 편이 좋은 길잡이가 된다.

4.더 이른 새벽에서 온 결정적 단서

이 수수께끼에 최근 한 가닥 빛이 들었다. 2023년, 찬드라 엑스선 망원경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힘을 합쳐 UHZ1이라는 천체를 붙잡았다. 이 블랙홀은 빅뱅 후 겨우 4억 7천만 년, 앞선 거인들보다도 이른 새벽에 있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블랙홀 후보다. 재미있게도 이 천체는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라 엑스선으로 먼저 정체를 드러냈다. 블랙홀로 빨려드는 가스가 극단적으로 달아오르면 강한 엑스선을 내뿜기 때문이다.

별과 맞먹는 블랙홀 — UHZ1 보통 은하 별들이 훨씬 무겁고, 블랙홀은 작다 UHZ1 (빅뱅 후 4.7억 년) 블랙홀이 은하의 별들과 맞먹는다 엑스선으로 포착
보통 은하는 별들의 무게가 중심 블랙홀을 압도한다. 그런데 UHZ1은 블랙홀이 은하의 별들과 맞먹을 만큼 무거웠다. 별보다 블랙홀이 먼저 자란, 무거운 씨앗이 남길 법한 자취다.도해 · 경이의목록

정말 놀라운 점은 그 몸집의 균형이었다. 보통 은하에서는 별들의 무게를 다 합치면 중심 블랙홀보다 훨씬 무겁다. 그런데 UHZ1은 블랙홀이 제가 속한 은하의 별들과 맞먹을 만큼 무거웠다. 별이 미처 다 만들어지기도 전에 블랙홀이 먼저 덩치를 키운 모양새다. 이것이야말로 무거운 씨앗, 곧 직접붕괴로 태어난 블랙홀에게서 기대되던 바로 그 특징이었다. 별보다 블랙홀이 먼저 자리를 잡은 은하라니, 우리가 아는 여느 성장 순서와는 사뭇 거꾸로다. 연구진은 UHZ1을 직접붕괴 씨앗의 첫 유력한 후보로 지목했다.

물론 이 해석에도 반론이 뒤따른다. 관측된 빛을 다르게 읽으면 블랙홀 무게가 달라지고, 그러면 이야기의 결도 바뀐다. 그럼에도 UHZ1은 초기 우주 거대 블랙홀의 씨앗을 처음으로 눈앞에 들이민 사례로 남았다. 이론으로만 그리던 그림을, 실제 우주의 한 점이 조심스레 뒷받침하기 시작한 것이다. 퀘이사가 곧 초대질량 블랙홀의 불빛이라는 큰 그림이 궁금하다면 퀘이사란 무엇일까 편을 함께 읽어도 좋다. 우주에서 가장 밝은 이 천체가 얼마나 극단적인지는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 편에서 이어진다.

5.갓난 우주가 품은 거인

초기 우주 거대 블랙홀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장면으로 모인다. 이제 막 태어난 우주가, 제 나이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거인을 이미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과학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거인들이 어떻게 그토록 빨리 자랐는지 우리는 아직 온전히 알지 못한다. 무거운 씨앗에서 출발했을 수도, 유례없는 폭식으로 벼락같이 자랐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짐작조차 못 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괜찮다. 물음이 선명해질수록 우주는 조금씩 제 속내를 흘리기 마련이니, 백억 광년 저편의 흐릿한 붉은 점 하나가 어느새 우주의 유년기를 들여다보는 작은 창이 되어 준다.

갓 태어난 우주가 이미 거인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그 거인이 어디서 왔는지, 아직 다 알지 못한다.

그러니 언젠가 당신이 '가장 먼 퀘이사'라는 말을 다시 만난다면, 그저 멀다는 사실에만 놀라지 말기를 바란다. 그 빛은 우주가 아직 갓난아기였을 적의 소식이고, 그 안에는 우리가 여태 풀지 못한 거대한 물음 하나가 담겨 있다. 가장 먼 곳의 빛이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실어 나른다. 그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내려는 마음이, 곧 우주의 유년을 이해하려는 첫걸음이다.


§참고한 자료

이 글의 사실은 아래 1차 문헌(원논문)과 기관 자료에 근거합니다. 위키백과·보도자료가 인용하는 원출처까지 함께 밝혀 둡니다.

가장 먼 퀘이사 — 초기 우주의 거대 블랙홀

  1. Bañados, E., Venemans, B. P., Mazzucchelli, C., et al. (2018). “An 800-million-solar-mass black hole in a significantly neutral Universe at a redshift of 7.5.” Nature 553, 473. doi:10.1038/nature25180 — 퀘이사 ULAS J1342+0928, z=7.54(빅뱅 후 약 6.9억 년).
  2. Wang, F., Yang, J., Fan, X., et al. (2021). “A Luminous Quasar at Redshift 7.642.” ApJL 907, L1. doi:10.3847/2041-8213/abd8c6 — J0313−1806, 태양 (1.6±0.4)×10⁹배의 초대질량 블랙홀.

가장 이른 후보 — UHZ1과 무거운 씨앗

  1. Bogdán, Á., Goulding, A. D., Natarajan, P., et al. (2024). “Evidence for heavy-seed origin of early supermassive black holes from a z≈10 X-ray quasar.” Nature Astronomy 8, 126. doi:10.1038/s41550-023-02111-9 — 찬드라·JWST로 z≈10 블랙홀 UHZ1 발견.
  2. Natarajan, P., Pacucci, F., Ricarte, A., et al. (2024). “First Detection of an Overmassive Black Hole Galaxy UHZ1: Evidence for Heavy Black Hole Seed Formation from Direct Collapse.” ApJL 960, L1. doi:10.3847/2041-8213/ad0e76 — 별 질량과 맞먹는 과대질량 블랙홀, 직접붕괴 씨앗의 첫 후보.

개괄 — 씨앗 문제·에딩턴 한계

  1. Wikipedia — Direct collapse black hole · Eddington luminosity — 무거운 씨앗과 먹는 속도의 상한.
  2. Wikipedia — Quasar · QSO J0313−1806 — 퀘이사·거리(적색이동)·발견 경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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