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인 줄 알았던 어느 깜빡임의 정체는, 아득히 먼 은하의 심장이 우리를 향해 곧장 쏘아 보내던 한 줄기 빛이었다. 각도 하나가 얼굴을 통째로 바꾸는 천체, 블레이자를 따라가 본다.
블레이자는 우주에서 가장 능청스러운 배우다. 수십 년 동안 밤하늘의 평범한 별인 척하며 천문학자들을 감쪽같이 속였으니 말이다. 정체를 알고 보면 그것은 별이 아니라, 아득히 먼 은하의 심장이 우리를 향해 곧장 쏘아 보내는 한 줄기 빛이다. 등대의 불빛이 정면으로 눈에 꽂히면 그 램프가 얼마나 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것처럼, 블레이자는 정면으로 마주 선 탓에 우리를 오래도록 헷갈리게 만들었다.
밤하늘의 별 하나가 며칠 사이에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되풀이한다면, 누구든 그것을 변덕스러운 변광성이라 여길 것이다. 1929년, 도마뱀자리 방향에서 꼭 그렇게 깜빡이는 천체 하나가 발견됐다. 천문학자들은 별에게 붙이는 이름 규칙을 그대로 따라, 여기에 'BL 라케르타이'라는 변광성 이름을 달아 주었다. 그렇게 이 천체는 사십 년 가까이 평범한 별 목록에 얌전히 올라 있었다. 밤하늘을 뒤져도 그저 조금 변덕스러운 별 하나로만 보였다.
정체가 드러난 것은 1968년이다. 이 '별'은 강한 전파를 뿜어내고 있었다. 보통의 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어진 관측 결과는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BL 라케르타이는 우리 은하 안의 별이 아니라, 무려 9억 광년 밖에 자리한 어느 은하의 중심핵이었다. 우리가 별이라 믿었던 그 깜빡임은, 사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먼 은하가 내지르는 격렬한 빛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별 흉내를 내며 사람들을 오래 속인 천체가 바로 블레이자다.
블레이자는 활동은하핵이라 불리는 거대한 현상의 한 얼굴이다. 은하 중심에 웅크린 거대한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게걸스럽게 삼키며 눈부시게 타오르는 현상,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변덕스럽고 유난히 밝은 부류를 가리킨다. 재료만 보면 퀘이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어떤 것은 점잖은 퀘이사가 되고, 어떤 것은 이토록 능청스러운 블레이자가 되는 걸까. 답은 뜻밖에도 재료에 있지 않았다. 순전히 각도에 있었다. 퀘이사 자체가 궁금하다면 퀘이사란 무엇일까 편을 먼저 읽어도 좋다.
활동은하핵을 오래 들여다본 천문학자들은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마주했다. 겉모습이 제각각인 여러 천체가 알고 보면 속은 똑같았다. 어떤 것은 밝은 퀘이사로 보이고, 어떤 것은 두 갈래 제트를 뻗은 전파은하로 보이고, 또 어떤 것은 격렬하게 깜빡이는 블레이자로 보인다. 이름도 다르고 성격도 사뭇 달라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그 중심을 파고들면 하나같이 같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대한 블랙홀, 그 둘레를 도는 뜨거운 강착원반, 바깥을 두른 도넛 모양의 먼지 고리, 그리고 위아래로 곧게 뻗은 제트다.
여기서 나온 것이 이른바 통합모형이다. 1995년, 천문학자 메그 어리와 파올로 파도바니는 이 얼기설기한 동물원을 하나의 그림으로 묶어 냈다. 겉보기에 전혀 달라 보이는 활동은하핵들이 실은 거의 같은 물체이며,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각도만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옆에서 보면 먼지 고리에 가려 중심이 어둑하게 보이고, 비스듬히 보면 밝은 퀘이사로 보인다. 그리고 제트가 뻗은 방향을 정통으로 마주 보게 되면, 바로 그때 우리는 블레이자를 만난다.
그러니 블레이자를 만든 것은 특별한 종류의 블랙홀이 아니다. 순전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다. 같은 등대라도 옆에서 보면 그저 담담한 불빛이지만, 그 빛줄기 한복판에 서면 눈이 멀 듯 부시다. 우주에는 이렇게 각도 하나로 얼굴을 통째로 바꾸는 천체가 수두룩하다. 블레이자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극적인 예인 것이다. 우연히 그 제트의 총구를 정면으로 들여다보게 된 관측자에게만 허락되는 얼굴인 것이다.
블랙홀이 물질을 삼킬 때, 모든 물질이 얌전히 안으로 빨려드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강한 자기장에 붙들려 블랙홀의 양극 방향으로 튕겨 나간다. 이렇게 뿜어져 나오는 가느다란 물질의 줄기가 바로 제트인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속도다. 제트 속 입자들은 빛의 속도에 거의 육박하는 맹렬한 기세로 내달린다. 은하 하나를 가로지르고도 남을 만큼 길게, 수십만 광년을 곧게 뻗어 나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제트가 하필 우리를 정면으로 겨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다가오는 광원은 제 밝기를 실제보다 엄청나게 부풀려 보이게 만든다. 이 현상을 도플러 부스팅이라 부른다. 정면으로 달려드는 빛은 에너지가 한곳으로 몰리고 시간마저 압축되어, 원래 밝기의 수백, 수천 배로 뻥튀기된 채 우리 눈에 도착한다. 옆에서 보면 평범했을 제트가, 정면에서 보면 하늘을 압도하는 등불로 돌변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블레이자가 그토록 변덕스럽게 깜빡이는 이유도 같은 데서 온다. 제트 속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요동조차, 정면에서 보면 크게 증폭되어 며칠 새 밝기가 요동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 정면의 빛은 라디오파부터 감마선까지 전자기 스펙트럼의 온 영역을 거세게 쏟아 낸다. 특히 감마선처럼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빛을 뿜는다는 점이 블레이자의 뚜렷한 표식이다. 하늘에서 가장 밝은 감마선 천체를 헤아려 보면, 그 상당수가 우리를 정면으로 겨눈 블레이자다.
블레이자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천체가 3C 279다. 이것은 블레이자 중에서도 이른바 평평한 스펙트럼 전파 퀘이사, 곧 FSRQ로 분류된다. 3C 279는 여러모로 교과서 같은 사례인 것이다. 무엇보다 이 천체는 인류가 처음으로 '빛보다 빠른 움직임'을 목격한 대상으로 유명하다. 그 제트의 일부가 마치 빛의 속도를 훌쩍 넘어, 무려 열일곱 배에 이르는 속도로 내달리는 것처럼 관측된 것이다.
물론 정말로 빛보다 빠른 것은 아니다. 자연은 그런 반칙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빛보다 빠른 것처럼 보이는 걸까. 이것은 제트가 우리를 향해 거의 정면으로, 그것도 빛의 속도에 바짝 붙어 달려올 때 생기는 착시다. 정면으로 다가오는 물체는 제가 내보낸 빛을 바짝 뒤쫓아 오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면 실제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큰 거리를 옮겨 간 것처럼 보인다. 우리를 정면으로 겨눈 각도가 만들어 내는 웅장한 눈속임인 것이다. 3C 279의 제트는 우리 시선과 겨우 몇 도 안쪽으로 어긋나 있다고 한다. 거의 총구를 똑바로 들여다보는 자리다.
이 눈속임 덕분에 3C 279는 하늘에서 가장 밝은 감마선 천체의 하나로 군림한다. 수십억 광년 밖의 천체가, 마치 이웃처럼 밝게 하늘을 밝힌다. 우리를 정면으로 겨눴다는 그 우연 하나가, 아득히 먼 은하의 심장을 우리 눈앞까지 성큼 끌어당긴 것이다. 만약 이 제트가 우리 쪽이 아니라 옆으로 조금만 비껴 있었다면, 3C 279는 그저 그런 평범한 퀘이사로 목록 한 귀퉁이에 조용히 적혔을 것이다. 이름만 비슷한 퀘이사와 펄사가 실은 정반대인 것처럼, 블레이자와 퀘이사는 이름이 달라도 속은 하나다.
블레이자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결국 시선에 관한 것이다. 똑같은 물체라도 어느 각도에서 마주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담담한 별이 되기도 하고 하늘을 압도하는 등불이 되기도 한다. 우주에 블레이자라는 특별한 괴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우연히 그 제트의 정면에 서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천체의 본모습만이 아니라, 그 천체와 우리 사이에 놓인 각도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하늘에 총구를 정면으로 겨눈 블레이자를 만난다는 것은 제법 아득한 우연이다. 수십억 광년을 날아온 그 가느다란 빛줄기가, 하필 지구라는 이 작은 점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숱한 방향 가운데 하필 우리가 정면을 마주하고 섰다는 것은 얼마나 아득한 우연일까. 조금 과장하면 우주가 우리에게 잠깐 눈을 맞춰 준 순간에 가깝다. 물론 블랙홀에게 무슨 뜻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 우연한 마주침이 우리에게 먼 우주를 들여다볼 창을 하나 열어 준다.
별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던 먼 은하의 눈빛이었다.
그러니 다음번에 감마선 하늘의 지도를 보거나 블레이자라는 낯선 이름을 마주하게 된다면, 당신도 그 빛이 지나온 아득한 길을 잠시 떠올려 봐 주면 좋겠다. 수십억 광년 밖 어느 은하의 블랙홀이 뿜어낸 제트가, 하고많은 방향 가운데 하필 이 자리를 정면으로 겨눈 덕분에 우리는 그 심장의 고동을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 별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던 먼 은하의 눈빛이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밤하늘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글의 사실은 아래 1차 문헌(원논문)과 기관 자료에 근거합니다. 위키백과·보도자료가 인용하는 원출처까지 함께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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