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에 닿은 별은 그것으로 끝이라고들 한다. 열 개 남짓한 계에서 별들이 그 문장을 반박하고 있다.
세 줄 요약
① 조석반지름은 문턱이지 절벽이 아니다. 그 안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지에 따라 별은 껍질만 잃기도 한다.
② 살아남은 핵은 같은 궤도로 돌아와 다시 뜯긴다. 관측된 반복 계 넷은 돌아올 때마다 플레어가 어두워졌다.
③ 8월 19일 시러큐스대 연구는 그 감광의 원인으로 별이 처음부터 빠르게 자전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블랙홀에 빨려 든 별의 최후는 대개 한 장면으로 요약된다. 국수 가락처럼 길게 늘어나 흩어지는 그림이다. 물리학자들도 이 현상을 스파게티화라는 이름으로 진지하게 부른다.
그 장면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전부도 아니다. 별이 블랙홀 곁을 스치고도 몸의 일부만 내준 채 빠져나오는 경우가 실제로 관측돼 있다.
더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다. 살아남은 별은 몇 달이나 몇 해 뒤 같은 자리로 돌아와, 다시 한 겹을 벗고 또 빠져나온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계를 열 개쯤 찾아냈다. 그중 넷에서 이해되지 않는 흐름이 나타났고, 그 흐름을 설명하려는 논문 한 편이 8월 19일 The Astrophysical Journal에 실렸다.
블랙홀이 별의 앞뒤를 서로 다른 세기로 잡아당기는 정도가 별을 뭉쳐 두는 자체 중력과 맞먹는 거리부터다. 이 거리를 조석반지름이라 부른다. 조석반지름은 별의 반지름에 블랙홀 질량과 별 질량의 비를 세제곱근 한 값을 곱해 정의된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별이 크고 무를수록, 블랙홀이 무거울수록 이 경계는 멀찍이 밀려난다.
이 개념을 처음 또렷하게 세운 사람은 마틴 리스다. 1988년 Nature에 낸 논문에서 그는 가까운 은하 중심의 블랙홀이 별을 찢는 사건을 예측했다.
당시에는 이론이었을 뿐이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하늘을 넓게 반복해 훑는 시간영역 탐사가 자리 잡으면서 조석파괴 사건은 지금까지 100건 넘게 검출됐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블랙홀 자체는 빛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건들은 관측자에게 뜻밖의 선물이 된다.
찢긴 잔해 일부가 블랙홀 쪽으로 떨어지며 에너지를 잃고, 그 에너지가 며칠에서 몇 달에 걸쳐 빛으로 나온다. 블랙홀은 별을 붙잡고, 붙잡힌 별은 살점을 내주며, 그 살점이 빛이 되어 우리 망원경에 닿는다.
조석반지름은 넘으면 죽는 선이 아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더 들어갔는지가 운명을 가른다.
조석반지름을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지, 그리고 별의 속이 얼마나 중심으로 몰려 있는지가 함께 결정한다. 근일점 거리는 조석반지름을 침투계수 베타로 나눈 값으로 정의되며, 베타가 작으면 무거운 별은 잃는 질량이 무시할 만큼 적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얕게 스치면 겉만 벗겨지고 핵은 살아 나온다.
속 구조 쪽이 더 흥미롭다. 시러큐스대의 아난야 반도파디아이는 가벼운 별을 머랭에 견준다.
머랭은 푸석하게 부푼 덩어리다. 밀도가 안팎으로 고르게 퍼져 있어, 바깥을 뜯기면 남은 부분이 도리어 부풀어 오른다.
부풀면 다음번에는 더 쉽게 뜯긴다. 그래서 가벼운 별의 플레어는 돌아올 때마다 밝아지는 쪽으로 간다.
무거운 별은 양파에 가깝다. 질량이 중심으로 몰려 있어 겉껍질 몇 겹을 잃어도 단단한 핵이 거의 그대로 남는다.
질량이 태양의 1.5배를 넘고 진화가 진행된 별은 질량을 잃으면 평균 밀도가 오히려 크게 올라가고, 그 결과 통과할 때마다 벗겨지는 양이 줄어드는 흐름을 보인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잃을수록 단단해지는 셈이다.
궤도를 그대로 돌아 같은 자리로 되돌아온다. 일부 조석파괴 사건은 첫 폭발 뒤 몇 달에서 몇 해 만에 다시 밝아지며, 이런 계를 반복 부분 조석파괴라 부른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남은 핵이 근일점을 지날 때마다 질량의 일부를 내주고, 그 잔해가 다시 플레어를 만든다.
이 되풀이가 관측자에게 주는 값은 크다. 같은 별과 같은 블랙홀의 만남을 여러 번 볼 수 있어서다.
한 번뿐인 사건에서는 별이 원래 어떤 별이었는지 알아낼 길이 거의 없다. 반복되는 사건에서는 회차 사이의 차이가 곧 자료가 된다.
이름이 붙은 계도 여럿이다. 논문은 ASASSN-14ko, AT2018fyk, eRASSt-J045650, AT2022dbl, AT2020vdq, AT2021aeuk, AT2023uqm을 예로 든다.
이 가운데 eRASSt-J045650은 지금까지 최소 다섯 번의 폭발을 보였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다섯 번을 견뎠다는 말은 그 별이 아직 거기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이 논문이 붙잡은 수수께끼다. 관측된 반복 계 가운데 일부는 폭발할 때마다 최대 광도가 낮아지는데, 별이 한 번 넘게 살아남는 경우에는 이 흐름이 이론 모형에서 재현되지 않았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벗겨지는 양이 줄어드는데도 예측된 밝기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얼핏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덜 뜯기면 덜 밝아야 자연스럽다.
모형은 그렇게 답하지 않았다. 원인은 블랙홀이 질량만 벗겨 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블랙홀은 지나가는 별에 회전력도 함께 건넨다. 연구진의 앞선 작업은 조석력이 별을 통과할 때마다 더 빠르게 돌게 만들고, 그 결과 떨어져 나간 물질이 더 짧은 시간에 되돌아와 플레어의 밝기가 대체로 유지된다는 것을 보였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4).
여기서 밝기의 정체를 짚어 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보는 밝기는 잔해가 블랙홀로 되돌아오는 속도에 달려 있다.
같은 양이라도 짧은 시간에 몰려 돌아오면 더 밝게 타오른다. 오래 나누어 돌아오면 흐릿하게 오래 간다.
그래서 두 효과가 서로를 지웠다. 잃는 양은 줄고 되돌아오는 속도는 빨라져, 최대 밝기가 제자리걸음을 했다.
반도파디아이는 이 상태를 두 해 동안 붙들고 있었다고 말한다. 관측은 어두워지는데 계산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블랙홀이 더 얹어 줄 회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별이 첫 만남 이전부터 빠르게 자전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 자전축이 궤도 각운동량과 나란하다면, 조석 회전력이 별에 거의 아무것도 더하지 못해 회차마다 어두워지는 흐름이 재현된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되돌아옴에 걸리는 시간이 일정하게 유지되면, 줄어든 질량이 그대로 줄어든 밝기로 나타난다.
연구진은 이것을 계산으로 확인했다. 유체역학 코드 팬텀에 항성진화 코드 메사가 만든 별의 구조를 넣고, 별 하나를 입자 100만 개로 잘게 나누어 돌렸다.
상대는 태양 질량의 100만 배짜리 블랙홀이다. 별의 자전 속도는 무차원 값으로 다루었고, 부호가 음이면 궤도와 반대로 도는 경우를 뜻한다.
첫 사례는 태양과 비슷한 별이다. 태양 질량의 영년 주계열성이 무차원 자전 0.7로 돌면서 침투계수 0.6인 궤도를 지날 때, 첫 통과에서 자전이 살짝 줄어든 뒤 이후 통과에서는 거의 변하지 않았고 최대 되돌아옴률은 첫 회차 대비 약 1.5배 낮아졌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더 무거운 별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왔다. 태양 질량의 세 배짜리 말기 주계열성을 자전 0.8로 돌렸을 때, 회차마다 벗겨지는 양과 최대 되돌아옴률이 나란히 줄었다.
관측과 견주어도 어긋나지 않는다. AT2022dbl과 eRASSt-J045650, AT2021aeuk의 광도곡선은 폭발마다 최대 광도가 두 배 이내로 낮아지는 모습을 보이며, 모의실험 결과가 이 흐름과 맞는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쌍성으로 살던 시절의 흔적일 가능성이 크다. 빠른 자전은 조석 고정된 촘촘한 쌍성이 힐스 붕괴를 겪으면서 남긴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연구진은 이를 반복 부분 조석파괴에 별을 공급하는 힐스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강력한 간접 증거로 제시한다(Bandopadhyay 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자전 하나가 그 별의 이력을 되짚는 단서가 된 셈이다.
힐스 메커니즘은 1988년 잭 힐스가 Nature에 제안한 과정이다. 가까이 붙어 도는 두 별이 초대질량 블랙홀 곁을 지나면 조석력이 그 쌍을 찢는다.
한쪽은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나간다. 다른 한쪽은 블랙홀에 붙잡혀 짧은 궤도에 앉는다.
이 대목이 두 번째 수수께끼와 맞물린다. 에릭 코글린은 별을 몇 달 만에 한 바퀴 돌 만큼 블랙홀에 단단히 묶어 두는 일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반복 조석파괴 계의 별들은 실제로 그렇게 돌고 있다. 짧은 주기를 만들려면 원래 쌍성의 간격이 극단적으로 좁아야 한다.
좁은 쌍성에서는 조석 고정이 일어난다. 두 별이 서로를 도는 주기와 각자 축을 도는 주기가 같아지는 상태다.
쌍이 촘촘할수록 그 주기가 짧고, 그래서 조석 고정된 별은 이미 빠르게 돌고 있다. 짧은 궤도와 빠른 자전이라는 두 성질이 하나의 사건에서 함께 나온다.
코글린은 이 점을 이번 작업의 핵심으로 짚는다. 각각 따로 이상해 보이던 특징들이 쌍성의 파괴와 한쪽의 포획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설명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우리 은하까지 이어진다. 코글린은 궁수자리 A* 주위를 도는 별들 가운데 일부도 같은 방식으로 붙잡혔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니 이 계산은 먼 은하만의 사정에 머물지 않는다. 블랙홀의 자전을 재는 일이 강착원반의 안쪽 끝을 읽는 간접 측정이듯, 별의 자전을 읽는 일도 빛의 흐름을 되짚는 간접 측정이다.
같은 조심성이 반복되는 다른 현상에도 걸린다. OJ 287이 12년마다 두 번 번쩍이는 이유는 블랙홀 둘이 서로를 도는 데서 나오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주기성만으로는 두 시나리오를 가릴 수 없다.
찢김 자체의 감각은 블랙홀에 떨어지는 일을 다룬 글에서 이미 다룬 적이 있다. 다만 그 글이 다루는 것은 사람 크기의 물체이고, 여기서 다루는 것은 스스로의 중력으로 뭉쳐 있는 별이다.
둘의 차이가 이 글의 요점이기도 하다. 자체 중력을 가진 것은 저항할 수 있고, 저항할 수 있는 것에는 정도의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정도의 문제가 생기는 순간, 우리는 한 번의 최후 대신 여러 번의 만남을 보게 된다. 당신이 다음에 조석파괴라는 말을 만나면, 그것이 끝을 뜻하는지 시작을 뜻하는지 한 번 더 물어볼 만하다.
본문의 모든 수치는 The Astrophysical Journal 논문 전문과 시러큐스대 발표문에서 가져와 1:1로 대조했다. 반복 계의 개수가 두 자료에서 다르게 읽히는 사정은 본문 상자에 따로 적었다. 논문에 나오는 무차원 자전과 침투계수는 원문의 그리스 문자 표기 대신 우리말 이름으로 옮겼으며, 지수는 화면에서 깨지지 않도록 수사로 풀어 적었다. 힐스와 리스의 1988년 논문, 쿠파리 외의 2022년 논문은 원문을 직접 열지 않고 2026년 논문의 인용을 통해 서지 정보만 확인했으므로, 그 세 편에서 개별 수치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한국천문연구원의 관련 발표나 국내 연구진의 참여 여부는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았다. 이미지 세 점은 이 글을 위해 직접 만든 도식이며, 그래프의 곡선은 논문이 보고한 흐름의 방향을 나타낸 것이고 관측 자료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