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내놓기만 하고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문, 화이트홀. 수학이 열어 놓고 물리학이 세 번이나 사형을 선고했던 이 문이, 지금 블랙홀의 임종 곁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영상 하나를 거꾸로 돌려 본 적이 있다. 다이빙 선수가 물보라를 도로 빨아들이며 발판 위로 솟아오르고, 쏟아진 우유가 슬금슬금 컵 속으로 돌아간다.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웃음이 나는 건 우리가 이미 알기 때문이다. 세상은 결코 저 방향으로는 흐르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 물리학의 방정식 안에는 그 되감기 버튼을 정말로 눌러 놓은 듯한 천체가 하나 잠들어 있다. 무엇이든 내놓기만 하고,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문. 이름마저 블랙홀을 뒤집어 놓은 그 문을 물리학자들은 화이트홀이라 부른다. 오늘은 이 문이 어떻게 태어나 세 번이나 사형 선고를 받았는지, 그리고 지금 어떻게 되살아나는 중인지 당신과 함께 따라가 본다.
▶ 영상으로 보기 — 웜홀 W04 · 화이트홀, 블랙홀이 죽으면 태어나는 문
블랙홀부터 다시 떠올려 보자. 무엇이든 빨아들이고 빛조차 내보내지 않는 시공간의 영역이다. 그 가장자리에는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경계가 있다. 한번 넘으면 되돌아 나올 수 없는 선이다. 이제 그 장면을 필름처럼 거꾸로 돌려 본다. 빨려 들어가던 모든 것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삼키던 문이 뱉는 문이 된다. 이것이 화이트홀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린 블랙홀. 블랙홀이 진공청소기라면 화이트홀은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다.
여기서 직관이 한 번 어긋난다. 화이트홀은 물체를 밀어내는 구멍이 아니다. 질량이 있으니 블랙홀과 똑같이 당신을 끌어당긴다. 중력이 끌어당기는 모습은 시간을 뒤집어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의 차이는 딱 하나, 지평선에서의 행동이다. 블랙홀의 지평선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선이라면, 화이트홀의 지평선은 아무리 다가가도 넘어 들어갈 수 없는 선이다. 빛과 물질이 쏟아져 나오는 환한 문 앞에서 우리는 문턱조차 밟을 수 없다.
이 이상한 문은 누군가의 공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방정식에서 나왔다. 1916년 카를 슈바르츠실트가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풀었다. 훗날 블랙홀이라 불리게 될 답이다. 그로부터 44년이 지난 1960년, 수학자 마틴 크루스칼이 이 답을 다시 들여다봤다. 목표는 소박했다. 이 시공간의 지도를 끝까지 그려 보는 것이었다. 물리학은 이 작업을 최대 확장이라 부른다. 자유낙하하는 입자의 길이 중심의 특이점에 부딪히지 않는 한 어디서도 끊기면 안 된다는 요구다. 그 요구를 끝까지 밀고 나가자 지도에 없던 영역이 저절로 나타났다. 밖에서 떨어진 것들이 들어가는 블랙홀 내부, 그리고 그 시간의 반대편에서 밖으로 솟아 나오는 것들의 출발지. 화이트홀의 내부였다. 누구도 찾아 나선 적 없는데 저절로 나타나 버린 발견이었다.
지도에는 더 놀라운 것도 있었다. 바깥 세계가 두 개였다. 우리 우주, 그리고 또 하나의 우주. 둘은 하나의 잘록한 목으로 이어져 있었다. 앞선 글에서 만난 아인슈타인-로젠 다리, 곧 웜홀이다. 그 다리의 정체가 알고 보니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쌍이었던 것이다. 1964년에는 우주론자 이고리 노비코프가 이 잠든 지도 위에 물리학의 질문을 던졌다. 화이트홀은 정말 있을 수 있는가.
물리학의 답은 차가웠다. 첫째, 만들 방법이 없다. 블랙홀에는 명확한 탄생 과정이 있다. 무거운 별이 붕괴하면 된다. 그런데 붕괴하는 별을 크루스칼의 지도에 그려 넣는 순간, 화이트홀 영역은 지도에서 지워진다. 현실의 블랙홀에는 화이트홀 짝이 없다. 화이트홀이 존재하려면 우주가 태어날 때의 초기 조건에 처음부터 박혀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둘째, 열역학이 막아선다. 화이트홀은 별이 붕괴하는 영상을 거꾸로 돌린 것과 같다. 스크램블드에그가 저절로 매끈한 계란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우주는 그런 되감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엔트로피는 줄지 않는다는 열역학 제2법칙이다. 셋째, 설령 있어도 버티지 못한다. 계산에 따르면 화이트홀은 극도로 불안정해서, 바깥에서 물질이 조금만 흘러들어도 문이 무너져 내린다. 남는 것은 블랙홀이다.
무대에 오를 뻔한 적은 있었다. 수십억 광년 밖에서도 보이는 괴물 같은 빛, 퀘이사가 발견됐을 때 저 에너지가 화이트홀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퀘이사는 블랙홀로 빨려들며 백열하는 물질의 소용돌이, 강착 원반으로 깔끔하게 설명됐다. 화이트홀에게 남은 지위는 하나였다. 실제 세계에 대응물이 없는 수학 연습.
그런데 사망 선고문에는 이상한 단서가 하나 붙어 있었다. 태초부터 존재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 방정식의 시간 대칭은 이런 답도 허락한다. 우주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해 물질을 내뿜다가 마지막에 폭발하며 사라지는 화이트홀. 어딘가 낯익지 않은가. 한 점에서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온 사건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빅뱅이다.
2011년 천문학자 알론 레터와 슐로모 헬러는 화이트홀에 작은 빅뱅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화이트홀은 오래 머무는 천체라기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내놓는 단일한 폭발 사건이라는 가설이다. 두 사람은 후보까지 지목했다. 2006년 관측된 정체불명의 감마선 폭발 GRB 060614다. 더 급진적인 그림도 있다. 블랙홀 안에서 붕괴하던 물질이 극한 밀도에서 되튀어 새로운 아기 우주가 열리고, 그 우주의 주민에게 부모 우주는 화이트홀로 보인다는 상상이다. 우리의 빅뱅 자체가 어느 블랙홀의 내부일지 모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만 정직하게 적어 둔다. 표준 우주론은 빅뱅을 화이트홀로 보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모두 소수 가설이다.
화이트홀의 진짜 부활은 뜻밖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화이트홀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의 끝에 남는 것이라면 어떨까. 1974년 스티븐 호킹이 보였듯 블랙홀은 완전히 검지 않다. 미약한 열복사를 내며 아주 천천히 증발한다. 작아질수록 뜨거워지고 증발은 점점 격렬해진다. 그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삼켜진 정보는 어디로 갈까. 물리학은 아직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시공간마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이론, 루프양자중력을 연구하는 카를로 로벨리는 질문의 방향을 뒤집었다. 블랙홀은 어떻게 죽는가. 우리는 모른다. 화이트홀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어쩌면 그것은 블랙홀의 죽음일지도 모른다. 이 그림에는 플랑크 별이라는 이름이 있다. 2014년 로벨리와 프란체스카 비도토의 계산에서 붕괴하는 별의 중심은 특이점이 되지 않는다. 물질이 더는 압축될 수 없는 플랑크 밀도에 이르면 양자 압력이 붕괴를 되받아친다. 안에서는 이미 폭발이 시작된 것이다. 다만 극단적인 중력의 시간 지연 때문에 밖에서는 그 폭발이 수십억 년짜리 슬로모션으로 보인다. 블랙홀이란 아주 느리게 재생되는 폭발인지도 모른다.
2018년에는 그 끝의 계산도 나왔다. 증발이 막바지에 이르면 지평선이 양자 터널링으로 뒤집히고, 자연이 허락하는 가장 작은 질량의 화이트홀 잔존물이 남는다는 시나리오다. 삼켜진 정보도 그 안에 보존됐다가 서서히 풀려난다. 이 잔존물 무리가 어쩌면 암흑물질의 정체일지 모른다는 가설로도 이어진다.
오랫동안 그림에 머물던 이 이야기를 최근 계산이 따라잡기 시작했다. 2025년 셰필드대학의 스테펜 길렌과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의 루시아 메넨데스-피달은 확률은 보존되어야 한다는 양자역학의 기본 요구에서 출발했다. 그러자 특이점이 사라지고, 시공간은 끝나는 대신 화이트홀이라는 새 국면으로 이어졌다. 이 계산은 물리학의 대표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실렸다. 길렌의 표현을 빌리면 화이트홀은 시간이 시작되는 곳일 수 있다. 다만 단순화된 모형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뒤이어 무너짐에서 되튐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시공간에 담아낸 계산, 하늘의 블랙홀이 사실은 블랙 지평선과 화이트 지평선의 양자 중첩일 수 있다는 제안, 둘 사이를 건너뛸 확률 자체를 구한 연구가 잇따랐다. 잔존물의 수명을 두고는 지금도 논문이 오간다. 아직 합의는 없다. 살아 있는 논쟁이다. 그리고 2026년, 블랙홀 수명의 하한을 계산한 연구진이 보고했다. 증발이 플랑크 질량, 약 20마이크로그램에 이르면 잔존물은 사실상 안정되며, 멀리서 보면 정확히 화이트홀의 성질을 띤다. 빅뱅 직후 태어난 10억 톤짜리 원시 블랙홀이라면 약 10억 년에 걸쳐 증발한 끝에 그 20마이크로그램이 남는다. 사람 눈썹 한 올, 벼룩 알 하나의 무게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동료 심사 전의 프리프린트라는 점도 함께 적어 둔다.
찾는 방법도 제안되기 시작했다. 짝을 이룬 블랙홀의 빛이 화이트홀을 통과해 나오면 블랙홀 사진에 밝은 고리가 새겨진다는 예측이 있다. 우주 중력파 안테나로 그 신호를 가려내려는 계산 틀도 나왔다. 레터와 헬러가 지목한 정체불명의 감마선 폭발이 세 번째 갈래이고, 우리가 매일 그 중력만 보고 있는지도 모를 암흑물질이 네 번째다. 오늘까지의 성적표는 정직하게 0건이다. 화이트홀이라 확인된 관측은 아직 하나도 없다.
블랙홀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하얀 문으로 남는지도 모른다.
영상을 거꾸로 돌리며 웃던 마음으로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하늘의 블랙홀들이 아주 먼 훗날 시간이 새로 시작되는 문이 된다면, 우주의 되감기는 웃어넘길 장난이 아닌, 언젠가 올 일의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거대한 죽음의 끝에 남는 것이 벼룩 알 하나 무게의 하얀 문이라니. 우주는 가끔 이렇게 다정한 방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다음 이야기는 이런 문을 하늘에서 실제로 찾아 나서는 방법이다. 그때까지 당신도 가끔, 세상이 한 번쯤 거꾸로 재생되는 상상을 해 보면 좋겠다.
이 글의 사실은 아래 1차 문헌(원논문)과 리뷰 자료에 근거합니다. 화이트홀은 이론 단계이며 관측된 사례가 없고, 2025~26년 결과의 상당수는 동료 심사 전 프리프린트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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