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벌릴 재료, 몸이 찢기지 않을 크기, 지나는 동안 무너지지 않을 균형. 물리학이 이미 거의 다 써 둔 웜홀 통과의 조건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다.
놀이기구 앞에는 늘 안내판이 서 있다. 키 110센티미터 미만 탑승 불가, 심장이 약한 분은 삼가 주세요, 안전바를 꼭 잡으세요. 아찔한 기계일수록 조건은 길어진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가장 아찔한 탈것에는 어떤 안내판이 붙을까? 멀리 떨어진 두 곳을 한 걸음에 잇는 지름길, 웜홀 말이다. 놀랍게도 물리학은 그 안내판을 이미 거의 다 써 두었다. 목을 벌려 둘 재료, 몸이 찢기지 않을 크기, 지나는 동안 무너지지 않을 균형. 오늘은 웜홀 통과의 조건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읽어 본다.
▶ 영상으로 보기 — 웜홀 W03 · 웜홀 통과, 사람이 살아서 지날 수 있을까
웜홀이라고 하면 다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처음 알려진 웜홀부터 그렇지 않았다. 아인슈타인과 로젠이 방정식에서 찾아낸 아인슈타인-로젠 다리다. 그림으로 보면 두 곳을 잇는 잘록한 목처럼 생겼다. 문제는 그 목이 순식간에 조여 닫힌다는 데 있다. 무언가 지나기도 전에 통로가 끊기고, 빛보다 빨리 달리지 않는 한 누구도 건너편에 닿지 못한다. 남는 것은 지평선 안에 갇히는 일뿐이다. 앞선 글에서 만난 그 다리는, 사실 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물리학은 다른 개념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사람이나 빛이 한쪽으로 들어가 반대쪽으로 무사히 나오는 웜홀, 통과 가능한 웜홀이다. 재미있게도 이 문이 열린 계기는 소설이었다. 콘택트를 쓰던 칼 세이건이 주인공을 먼 별로 보낼 방법이 필요해, 물리학자 킵 손에게 말이 되게 고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손은 목을 벌려 붙잡아 두는 방법을 찾아냈고, 1988년 모리스와 손은 그 조건을 논문으로 정리했다. 목이 열려 있을 것. 지평선이 없을 것. 그리고 지나는 사람이 견딜 수 있을 것. 오늘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세 줄이다.
목은 가만두면 닫힌다. 중력이 안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열린 채 붙잡아 두려면 안에서 밖으로 미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우리가 아는 보통 물질은 서로 끌어당기기만 해서 목을 오히려 조인다. 필요한 것은 밀어내는 중력, 음의 에너지를 가진 재료다. 물리학자들이 이색 물질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이 재료는 있으면 좋은 정도가 아니다. 2026년 카탈도와 동료들은 이색 물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정리로 증명했다. 출발은 단순하다. 목은 통로에서 가장 좁은 지점이라 그곳에서 바깥으로 벌어져야 하는데, 그 벌어짐을 방정식에 넣으면 목에서 밀도와 압력의 합이 0 아래로 내려간다. 에너지 조건 위반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있어야 할까. 1999년 이다와 헤이워드는 그 양을 0으로는 줄일 수 없음을 보였고, 양자 부등식은 음의 에너지가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도록 한 번 더 막아선다. 다만 총량은 아주 작게 줄일 수 있다. 2022년에는 최소한의 이색 물질만으로 웜홀을 지탱하며 조석 가속도와 통과 시간까지 구한 계산이 나왔다. 물론 공짜는 없어서, 이색 층을 너무 얇게 만들면 극단적인 미세조정이 필요하다. 그럼 음의 에너지 자체가 공상일까. 그렇지는 않다. 진공 속 두 금속판을 아주 가까이 두면 그 사이 에너지가 바깥보다, 심지어 0보다도 낮아지는 카시미르 효과가 실험실에서 실제로 측정됐다. 다만 그 양은 웜홀에 견주면 턱없이 작다.
목이 열려 있어도 지나는 사람이 무사하리란 법은 없다. 문제는 조석력이다. 중력은 가까울수록 세다. 목에 발부터 들어간다고 해 보자. 발이 받는 중력과 머리가 받는 중력이 다르고, 이 차이가 크면 몸은 세로로 늘어나며 옆으로 짓눌린다. 블랙홀 물리학은 여기에 스파게티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수 가락처럼 늘어난다는 뜻이다.
목이 좁을수록 이 차이는 커진다. 그래서 웜홀은 작을수록 위험하다. 큰 블랙홀보다 작은 블랙홀이 더 잔인하게 찢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안전한 통과는 결국 목의 크기 싸움이 된다. 모리스와 손의 1988년 조건에도 이미 들어 있었다. 여행자가 받는 조석력을 사람이 견딜 수준, 대략 지구 중력 정도로 묶어 둘 것. 찢는 힘만이 문제는 아니어서, 너무 급히 빨려들면 사람이 뭉개지니 지나는 동안의 가속도도 견딜 수준이어야 한다. 목의 크기, 지나는 속도, 목을 벌린 모양 전부가 그 한계 안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안전하게 지나려면 목이 어마어마하게 커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것은 곧 거대한 공학 과제다.
그렇다면 얼마나 커야 충분할까. 2024년 쿠피티히는 별 사이를 오갈 거시적 웜홀의 최소 요건을 정리하면서, 반지름 방향 조석력이 0에 가까운 극한을 제안했다. 조석력이 낮을수록 통과가 편하고, 양자장 이론의 까다로운 제약까지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가, 통과 가능한 웜홀을 떠오르는 현상으로 보자고도 제안한다. 그러면 존재할 여지가 더 커진다.
정말로 사람이 지나는 해가 있기는 할까. 2020년 말다세나와 밀레킨이 답했다. 논문 제목부터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웜홀이다. 고전 일반상대성만으로는 평균 에너지 조건이 길을 막지만, 여분 차원을 다루는 랜들-순드럼 모형까지 열어 두면 문이 열린다. 목을 여는 것은 자기 홀극을 띤 특별한 블랙홀 한 쌍이다. 둘 사이를 아주 작은 입자들이 흐르며 음의 에너지를 만들고, 그 힘이 목을 벌려 둔다. 다만 논문 스스로 단서를 붙여 두었다. 조건이 매우 특수하고, 안에서는 금방이어도 밖에서 재면 통과 시간이 천문학적이며, 우리가 아직 손에 쥐지 못한 물리에 기댄다. 그래도 의미는 작지 않다. 사람이 지나는 웜홀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목이 크고 이색 물질로 벌어졌다고 끝이 아니다. 마지막 함정은 안정성이다. 통과 가능한 웜홀은 안으로 조이는 중력과 밖으로 미는 음의 에너지가 겨우 맞선 아슬아슬한 균형이라, 작은 흔들림에도 목이 닫힐 수 있다. 더 얄궂은 것은 당신이 지나가는 그 행위 자체다. 통과하는 물질이 목에 에너지와 운동량을 더하고, 그것이 균형을 무너뜨린다. 문을 쓰는 순간 문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통과 연구의 큰 축이 안정성이다. 답은 반반이다. 얇은 껍질로 만든 웜홀은 구면 흔들림을 견디지만, 회전이 들어가면 결국 목에 이색 물질이 있어야 한다. 전하와 음의 우주상수를 잘 맞춰 안정을 얻는 길도 있고, 조건만 맞으면 아주 오래 열려 있기까지 한다. 반대로 스칼라장을 하나 더했더니 그 반작용이 이색 물질을 압도해 웜홀이 아예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계산 결과 역시 나와 있다. 목 근처는 생각보다 사나운 동네여서 불안정한 궤도와 강한 조석이 도사리고, 주변의 먼지와 가스가 목으로 떨어지는 강착도 목을 흔든다. 정리하면 안정성은 조건부다. 잘 설계하면 버티고, 함부로 지나면 무너진다.
지금 연구는 세 갈래로 달리고 있다. 첫째, 조석력을 아예 없애려 한다. 2024년에는 카시미르 에너지로 조석력이 0인 웜홀을 구성한 연구가 나왔다. 지나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는 문이다. 둘째, 이색 물질을 줄이거나 없애려 한다. 극소량으로 지탱하는 해도, 아예 없이 얇은 껍질로 버티는 해도 있다. 다만 정직하게 짚어 두면, 표준 일반상대성 안에서는 이색 물질을 피할 수 없고, 없앤 해들은 다른 중력 이론을 빌린 것이다. 셋째, 자연에 정말 있을 수 있다고 본다. 2025년에는 극 근처의 좁은 길로는 조석력이 작아 지날 수 있는 회전 웜홀이 제시됐다. 이런 웜홀은 겉보기에 블랙홀과 비슷해서, 우리가 웜홀을 블랙홀로 착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세 흐름 모두 아직 종이 위에 있다.
그래서, 사람이 웜홀을 지날 수 있을까. 정직하게 답한다. 방정식은 통과의 조건을 이미 다 적어 두었다. 목을 벌리는 이색 물질, 사람이 견딜 조석력, 그러기 위한 최소 크기, 지나는 동안 무너지지 않을 안정성. 이론상 사람이 지나는 해까지 나와 있다. 하지만 그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다. 필요한 만큼의 음의 에너지를 모으는 방법을 모르고, 크고 부드럽고 안정한 목은 상상하기도 벅차며, 관측과 실험 어느 쪽에서도 증거는 아직 하나도 없다.
웜홀 통과는 설계도가 다 그려진 문이다. 다만 첫 재료를 아직 손에 넣지 못했다.
놀이기구 안내판 앞에서 발끝을 들던 아이처럼, 우리는 이제 겨우 그 조건표를 다 읽어 냈다. 시공간의 아주 작은 존재가 그 시공간에 스스로 낼 문 하나를 떠올리고, 재료를 기다린다. 어쩌면 이것이 과학의 정직한 자리일 것이다. 이 문을 시간 방향으로 거꾸로 돌리면 어떤 문이 되는지 궁금하다면, 다음 글 화이트홀 편으로 이어진다. 그때까지 당신도 가끔, 안내판의 조건을 하나씩 지워 가는 상상을 해 보면 좋겠다.
이 글의 사실은 아래 1차 문헌(원논문)에 근거합니다. 통과 가능한 웜홀은 이론 단계이며, 사람이 지나는 해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물리에 기대고, 관측·실험 증거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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