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천체 · 웜홀 시리즈 W02

웜홀 시간여행, 정말 과거로 갈 수 있을까

공간의 지름길로 알려진 웜홀이, 방정식 안에서는 과거로 이어지는 시간 기계가 될 수 있다. 할아버지 역설부터 호킹의 마지막 방어선까지 차분히 따라가 본다.

글 · 경이의목록· 약 6분 읽기· 2026.07

식탁에 놓아둔 커피는 시간이 지나면 식는다. 그런데 저 혼자 다시 데워지는 법은 없다. 웜홀 시간여행이라는 말은 바로 그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우주의 지름길로 거스를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공간의 지름길로 알려진 웜홀이,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안에서는 시간의 지름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말 과거로 갈 수 있을까. 오늘은 그 위험한 문 앞까지 당신과 함께 가 본다.

웜홀 시간여행 — 두 입구의 시각이 어긋난 웜홀을 표현한 영상 썸네일 ▶ 영상으로 보기 — 웜홀 W02 · 웜홀 시간여행

1.공간의 지름길이 시간의 지름길로

두 입구의 시각이 어긋나면, 웜홀은 시간 기계가 된다
한쪽 입구만 빛에 가까운 속도로 다녀오게 하면 두 입구의 시계가 어긋난다. 그 순간 웜홀은 두 시각을 잇는 통로, 곧 시간 기계가 된다.도해 · 경이의목록

지난 편에서 웜홀이 무엇인지 짚었다. 멀리 떨어진 두 지점을 짧은 목으로 잇는 통로, 아인슈타인과 로젠이 방정식에서 찾아내고 존 휠러가 이름을 붙인 그 통로다. 열어 두려면 스스로를 밀어내는 음의 에너지, 이물질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이야기했다. 웜홀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낯설다면 웜홀이란 무엇인가 편을 먼저 읽어도 좋다. 이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웜홀이 사는 무대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 곧 일반 상대성 이론이다. 이 이론에서 공간과 시간은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짜여 있다. 그러니 웜홀이 두 장소를 이으면, 두 시각도 이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방법은 뜻밖에 단순하다. 먼저 웜홀을 열어 안정시킨 다음, 두 입구 가운데 한쪽만 붙잡아 빛에 가까운 속도로 먼 우주를 다녀오게 한다. 빠르게 움직인 쪽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 덜 늙는데, 쌍둥이 가운데 한 명만 우주여행을 다녀와 더 젊은 얼굴로 돌아오는 그 유명한 이야기와 똑같은 원리다. 이제 두 입구를 나란히 놓으면 둘은 서로 다른 시각을 살게 되고, 더 늙은 입구로 들어간 사람은 덜 늙은 입구로, 그러니까 과거로 걸어 나온다. 공간을 이어 주던 웜홀이, 이렇게 두 시각을 잇는 지름길로 바뀌는 것이다. 정말 그런 일이 방정식 안에서 벌어질까.

한 바퀴 돌면 출발한 과거로 출발 = 도착 빛원뿔이 조금씩 기운다 빛보다 빠르지 않아도, 끝내 자기 과거로 돌아온다
닫힌 시간꼴 곡선(CTC). 빛원뿔이 늘 미래로 열려 있는데도 고리를 따라 조금씩 기울어, 한 바퀴 돌면 출발했던 과거로 돌아온다.도해 · 경이의목록

2.시간을 도는 길

시간을 도는 길. 물리학에는 정말 그런 것이 있다. 어떤 경로는 늘 미래 쪽으로만 나아가고, 빛보다 빠르지도 않고, 상대성 이론을 어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끝내 자기 자신의 과거로 돌아온다. 물리학은 이 길을 닫힌 시간꼴 곡선이라 부른다. 영어 머리글자를 따 흔히 CTC라 줄여 쓴다. 이 고리를 한 바퀴 돌면 출발했던 과거로 돌아온다. 그것이 바로 시간여행의 수학적 정체다.

이 고리를 방정식에서 붙잡은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1938년, 반 스토쿰이 회전하는 먼지 기둥의 해를 풀었는데 그 안에 시간을 되도는 경로가 숨어 있었다. 정작 본인은 그 뜻을 몰랐고, 훗날 프랭크 티플러가 의미를 다시 정리했다. 그다음은 뜻밖의 인물이다. 1949년, 불완전성 정리로 논리학을 뒤흔든 수학자 쿠르트 괴델이다. 프린스턴에서 아인슈타인의 산책 동무였던 그가 회전하는 우주라는 해를 찾아냈다. 이 우주에서는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빛이 갈 수 있는 방향이 점점 기울다가, 마침내 시간의 고리가 생긴다. 괴델에게 이것은 한낱 계산 곡예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시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오랜 철학을 떠받치는 증거였다. 1963년에는 로이 커가 회전하는 블랙홀의 해를 찾았고, 그 안쪽 깊은 곳에도 시간의 고리가 숨어 있었다. 다만 이 오래된 해들에는 공통된 약점이 있다. 우리 우주는 그렇게 통째로 회전하지 않고, 무한한 회전 기둥은 현실에 없으며, 회전하는 블랙홀 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무리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좀 더 현실적인 후보로 눈을 돌렸다. 바로 통과 가능한 웜홀이다. 그 구체적인 설계를 1988년 킵 손과 마이클 모리스, 울비 유르체베르가 내놓았다. 어떤 계산은 이렇게 갈 수 있는 과거를 최대 만 년까지 보기도 한다. 물론 방정식이 허락한 상한일 뿐, 정말 만들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논리가 제 꼬리를 문다 과거로 간다 할아버지를 막는다 나는 못 태어난다 과거로 못 간다 할아버지 무사 인과율이무너진다
할아버지 역설. 과거로 가 조상을 막으면 나는 태어나지 못하고, 그럼 애초에 막을 수도 없다. 원인과 결과가 끝없이 제자리를 돈다.도해 · 경이의목록

3.할아버지 역설

이제 작동하는 시간 기계가 손에 들어왔다고 해 보자. 그런데 그 문이 열리자마자 유령 같은 문제가 따라붙는다. 그 유명한 할아버지 역설이다. 과거로 가서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를 막아 버린다고 하자. 그럼 나는 태어나지 못하고, 태어나지 못했으니 애초에 과거로 갈 수도 없다. 그런데 가지 못했다면 할아버지는 무사하고, 무사하다면 나는 다시 태어나 또 과거로 향한다. 논리가 끝없이 제 꼬리를 문다. 원인이 결과에 앞선다는 오래된 약속, 곧 인과율이 여기서 무너진다.

재미있는 건 순서다. 이 역설은 물리학보다 이야기에서 먼저 태어났다. 1936년 캐서린 무어의 단편에, 1944년 바르자벨의 소설에 이미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주인공이 과거로 가 실수로 조상을 죽이는 장면이다. 괴델이 시간의 고리를 방정식으로 붙잡기도 전에, 이야기꾼들이 먼저 그 모순을 상상한 것이다. 역설은 하나 더 있다. 정보 역설이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어떤 방정식을 알려 준다. 과거의 나는 늙어서 다시 젊은 나에게 그것을 전한다. 그렇다면 그 방정식은 대체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아무도 만들지 않았는데, 버젓이 존재한다. 출처가 없는 지식이다. 인과가 고리처럼 닫혀, 누구도 시작하지 않은 이야기가 스스로를 낳고 또 낳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라는 우리의 오랜 감각이, 이 고리 안에서는 통째로 헐거워진다.

4.역설의 세 가지 해법

물리학자들은 이 역설을 그냥 두지 않았다. 대답은 크게 세 갈래로 나온다. 첫째는 우주가 갈라진다는 답이다. 조상을 막는 순간 역사가 다른 갈래로 갈라지고, 내가 막은 것은 다른 가지의 할아버지라는 그림이다. 매력적이지만, 여러 검토는 이 적용이 부적절하다고 못 박는다. 여러 세계로 갈라진다는 발상은 원래 양자 측정을 설명하려는 해석인데, 과거로 가서 조상을 막는 일은 양자 측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① 다세계 해석이 부적절 ② 노비코프 모순 없는 경로만 실현 ③ 도이치 양자로는 모순 없는 상태 존재
세 가지 해법. 다세계 해석은 적용이 부적절하다고 여겨지고, 노비코프의 자기일관성과 도이치의 양자 해법은 저마다 모순 없는 경로가 늘 존재함을 보인다.도해 · 경이의목록

둘째는 노비코프의 자기일관성 원리다. 러시아 물리학자 이고르 노비코프의 대답은 단호하다. 과거로 갈 수는 있지만, 이미 일어난 역사를 어기는 행동은 끝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공할 확률이 아예 0이다. 총이 걸리고, 손이 미끄러지고, 하필 그 순간 발이 접질린다. 우주는 앞뒤가 맞는 역사만 실현한다. 킵 손의 연구진은 이것을 당구공으로 보였다. 공이 웜홀로 들어가 과거의 자기를 때려 진입을 막는 역설적 경로 옆에는, 언제나 공이 자기를 살짝 빗맞히고도 결국 웜홀로 들어가는 모순 없는 경로가 함께 존재했다. 셋째는 도이치의 양자 해법이다. 데이비드 도이치가 1991년에 내놓았다. 여러 가능성을 확률로 한꺼번에 다루는 계산법을 쓰자, 시간의 고리 위에서도 모순 없는 상태가 늘 존재했다. 고전 논리로는 막다른 골목인 문제가, 양자로 보면 풀린 것이다. 다만 확률이 이상하게 행동하는 대가가 따라붙는다.

켜지려는 찰나, 스스로 무너진다 요동이 고리를 돌며 겹겹이 쌓인다 에너지가 폭주해 웜홀을 깨뜨린다 — 시간순서 보호
호킹의 시간순서 보호 가설. 시간 기계가 켜지려는 순간 진공 요동이 고리를 돌며 폭주해, 웜홀을 스스로 무너뜨린다는 그림이다. 아직 증명되지는 않았다.도해 · 경이의목록

5.호킹의 마지막 방어선

그런데 역설을 논리로 봉합하기 전에, 더 근본적인 방어막이 있을지 모른다. 아예 시간 기계가 완성되지 못하게 막아 버리는 장치다. 스티븐 호킹이 1992년에 내놓은 시간순서 보호 가설이다. 원리는 이렇다. 웜홀이 막 시간 기계가 되려는 그 순간, 경계 근처에서 진공의 양자 요동이 생긴다. 이 요동이 새로 열린 시간의 고리를 따라 돌고 또 돌며 스스로를 겹겹이 쌓는다. 마주 본 두 거울 사이에서 빛이 무한히 반사되며 점점 밝아지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거울이 서로를 비출수록 상이 끝없이 겹치듯, 이 요동도 고리를 한 바퀴 돌 때마다 몇 곱절씩 불어난다. 그리고 꼭 그처럼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치솟아, 마침내 웜홀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만다. 시간 기계가 켜지려는 찰나에 자연이 스위치를 태워 버리는 셈이다. 호킹은 이를 두고 우주가 역사학자들을 위해 안전하게 지켜진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이 가설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요동이 쌓이는 계산은 절반만 양자를 쓴다. 시공간은 고전적으로 두고, 그 위의 요동만 양자로 다루는 방식이다. 경계에 정말 가까워지면 에너지가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로 커지는데, 이 지점에서는 그 절반짜리 계산이 깨진다. 중력까지 완전히 양자로 다루는 이론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에게는 그런 이론이 없다. 그래서 연구는 지금도 이어진다. 2024년에는 두타와 동료들이, 통과 가능한 웜홀의 목 근처 불안정한 궤도에서 자유낙하만으로 시간을 도는 경로가 나타남을 보였다. 방정식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답하고 있다.

6.열려 있으나 아직 잠긴 문

그래서 웜홀로 시간여행이 될까. 정직한 답은 이렇다. 방정식은 그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괴델의 회전 우주가 그랬고, 커 블랙홀이 그랬고, 통과 가능한 웜홀이 그랬다. 최전선의 계산도 마찬가지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시간을 도는 길을 자꾸만 허락한다. 심지어 역설조차 봉합된다. 노비코프의 자기일관성이 있고, 도이치의 양자 해법이 있으니까. 수학의 문은 분명히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문에는 자물쇠가 세 개 걸려 있다. 첫째는 재료다. 통과 가능한 웜홀 자체가 이물질 문제로 아직 미해결이다. 둘째는 방어막이다. 설령 만든다 해도 호킹의 시간순서 보호가 막아설지 모른다. 그것 역시 증명되지 않았다. 셋째는 증거다. 관측이든 실험이든, 웜홀 시간여행을 뒷받침할 증거는 아직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웜홀 시간여행은 묘한 자리에 서 있다. 수학적으로는 열려 있는데, 물리적으로는 아직 아무도 열어 본 적이 없다.

수학적으로는 열려 있는데, 물리적으로는 아무도 열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시간의 강을 따라 흘러가는 작은 존재이면서도, 그 강을 거슬러 오를 문 하나를 자꾸 떠올린다. 어쩌면 그 상상이야말로, 식어 가는 커피를 앞에 두고도 우리가 여전히 우주를 향해 질문할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른다. 다음 편에서는 그 문을 정말 통과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웜홀을 건너는 여행의 안쪽으로 당신과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참고한 자료

이 글의 사실은 아래 1차 문헌(원논문)과 리뷰에 근거합니다. 웜홀 시간 기계와 닫힌 시간꼴 곡선은 모두 이론 단계이며, 관측·실험으로 확인된 시간여행은 아직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웜홀 시간 기계와 닫힌 시간꼴 곡선

  1. Morris, M. S., Thorne, K. S. & Yurtsever, U. (1988). “Wormholes, Time Machines, and the Weak Energy Condition.” Phys. Rev. Lett. 61, 1446. doi:10.1103/PhysRevLett.61.1446 — 한쪽 입구를 움직여 웜홀을 시간 기계로 만드는 방법.

회전하는 시공간의 시간 고리

  1. Gödel, K. (1949). “An Example of a New Type of Cosmological Solution…” Rev. Mod. Phys. 21, 447. doi:10.1103/RevModPhys.21.447 — 회전하는 우주와 닫힌 시간꼴 곡선.
  2. Kerr, R. P. (1963). “Gravitational Field of a Spinning Mass…” Phys. Rev. Lett. 11, 237. doi:10.1103/PhysRevLett.11.237 — 회전하는 블랙홀 해(커 블랙홀). (앞선 해: van Stockum 1938 · Tipler 1974)

역설의 해법 — 자기일관성과 양자

  1. Friedman, J., Morris, M. S., Novikov, I. D., Thorne, K. S. 외 (1990). “Cauchy problem in spacetimes with closed timelike curves.” Phys. Rev. D 42, 1915. doi:10.1103/PhysRevD.42.1915 — 자기일관성 원리와 당구공 사고실험.
  2. Deutsch, D. (1991). “Quantum mechanics near closed timelike lines.” Phys. Rev. D 44, 3197. doi:10.1103/PhysRevD.44.3197 — 닫힌 시간꼴 곡선 위의 양자 해법.

방어선과 최신 연구

  1. Hawking, S. W. (1992). “Chronology protection conjecture.” Phys. Rev. D 46, 603. doi:10.1103/PhysRevD.46.603 — 시간순서 보호 가설.
  2. Dutta, S. 외 (2024). “Particle motion around traversable wormholes: closed timelike geodesics.” arXiv:2404.11984 · 리뷰: Krasnikov 외 (2021), arXiv:2101.08592 — 괴델부터 시간순서 보호까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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