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에서 은하를 통째로 가로질러 뻗는 빛의 줄기. 그 가느다란 제트를 빛의 속도 가까이로 쏘아 올리는 두 엔진과, 빛보다 빨라 보이는 착시까지 차분히 들여다본다.
여름 마당에서 호스로 물을 뿌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손끝으로 호스 입구를 슬쩍 조이면, 흩어지던 물이 갑자기 한 줄기로 모여 멀리까지 곧게 뻗는다. 헐겁게 쥐면 발치에 힘없이 떨어지던 물이, 좁게 조이는 순간 마당 끝 담장까지 날아간다. 같은 물인데 무엇이 달라진 걸까. 답은 좁은 통로에 있다. 넓게 퍼질 길이 막히자, 물은 한 방향으로만 세차게 뿜어져 나간다. 우주에도 꼭 이런 물줄기가 있다. 어떤 퀘이사는 중심에서 가느다란 빛의 줄기를 두 갈래로 곧게 내뻗는데, 이것을 퀘이사 제트라 부른다.
다만 그 규모가 상상 밖이다. 마당 호스의 물줄기가 담장을 넘는다면, 퀘이사 제트는 은하 하나를 통째로 가로지르고도 남는다. 게다가 이 줄기는 빛의 속도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는 무서운 속도로 달린다. 마당의 물줄기와 닮았지만, 그 사나움은 견줄 수가 없다. 무엇이 이 줄기를 이토록 빠르고 곧게 내쏘는 걸까. 그 답을 좇다 보면,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난폭한 엔진 앞에 서게 된다.
퀘이사의 심장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있다. 그 둘레로는 뜨거운 가스가 소용돌이치며 원반을 이룬다. 강착원반이라 부르는 이 원반은 안으로 빨려들며 수백만 도로 달아오르고, 퀘이사를 은하 전체보다 밝게 빛나게 만든다. 그런데 블랙홀로 떨어지는 이 물질이 전부 삼켜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원반 한복판에서 위아래로 튕겨 나가, 회전축을 따라 두 줄기로 곧게 뻗고 있다. 이 두 줄기가 바로 제트다.

제트의 길이는 사람의 감각을 훌쩍 넘어선다. 최초의 퀘이사로 이름난 3C 273은 중심에서 약 20만 광년에 이르는 제트를 한쪽으로 내뻗고 있다. 우리 은하의 지름이 대략 10만 광년이니, 이 줄기 하나가 은하 두 개를 나란히 눕힌 것보다 길다. 조금 더 가까운 이웃으로는 처녀자리의 거대 은하 M87이 있다. 그 중심 블랙홀은 약 5천 광년을 내달리는 제트를 내뿜는데, 사진에 찍힌 그 곧고 푸른 줄기는 마치 누군가 자를 대고 그은 듯하다.
제트의 끝은 더욱 장관이다. 은하를 벗어난 줄기는 성간 공간의 옅은 가스에 부딪혀 거대한 구름으로 부풀어 오른다. 이 구름을 전파 로브라 부르는데, 그 크기가 모은하보다 몇 배씩 커지기도 한다. 전파망원경으로 하늘을 보면 이런 로브 한 쌍을 활짝 펼친 은하가 곳곳에 걸려 있다. 전파은하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눈에 보이는 별빛은 얌전한데, 전파로 바라보면 같은 은하가 제 몸집의 몇 배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가느다란 실오라기 같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조용하지 않다. 제트는 전자 같은 입자를 빛의 속도 가까이로 실어 나르며, 그 길을 따라 전파와 엑스선을 뿜고 있다. 블랙홀이라 하면 무엇이든 집어삼키기만 하는 존재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퀘이사의 블랙홀은 삼키는 만큼이나 맹렬하게 내뱉는다. 그 뱉어 냄이 바로 제트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줄기를 빛의 속도 가까이까지 몰아붙이는 걸까. 마당의 호스는 수돗물의 압력이 밀어낸다. 하지만 제트를 쏘아 올리는 힘은 물의 압력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정체는 놀랍게도 자기장이다. 제트를 빚어내는 엔진은 크게 둘이라고 여겨진다.
첫 번째 엔진은 블랙홀 자신이 쥐고 있다. 블랙홀은 대개 팽이처럼 빠르게 돌고 있다. 1977년 두 물리학자 블랜퍼드와 즈나이엑은, 회전하는 블랙홀이 제 둘레의 자기장을 비틀며 그 회전에너지를 바깥으로 뽑아낼 수 있음을 이론으로 보였다. 블랙홀이 자전하면 곁의 자기장선도 함께 꼬이며 돌고, 그 꼬인 자기장이 발전기처럼 어마어마한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 입자를 회전축 방향으로 내쏘는 것이다. 블랙홀의 회전이라는 거대한 저금통을, 자기장이 열쇠가 되어 여는 원리다.
두 번째 엔진은 원반 쪽에 있다. 1982년 블랜퍼드와 페인은, 강착원반에서 뻗어 나온 자기장선을 따라 물질이 원심력으로 튕겨 나갈 수 있음을 밝혔다. 팽팽하게 돌아가는 원반 위로 자기장선이 비스듬히 솟아 있으면, 그 선에 매달린 가스가 회전목마 바깥으로 내던져지듯 위로 뿜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솟은 물질은 멀리 올라가면서 스스로 감긴 자기장에 조여, 넓게 퍼지지 못하고 가느다란 두 줄기로 모인다. 마당 호스의 손끝이 하던 일을, 여기서는 자기장이 대신한다.
두 엔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크게 작용하는지는 천체마다 다르고, 아직 활발히 연구되는 물음이다. 다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어느 경우든 회전과 자기장이 짝을 이뤄야 한다는 점이다. 회전만 있고 자기장이 없으면 에너지를 끌어낼 손잡이가 없다. 자기장만 있고 회전이 없으면 비틀어 짜낼 힘이 없다. 팽이의 회전과 그것을 감아쥔 끈이 함께 있어야 팽이가 튀어 나가듯, 블랙홀의 회전과 자기장이 나란히 있어야 제트가 솟는 것이다. 이렇게 둘이 손을 맞잡아 은하를 가로지르는 빛의 창을 쏘아 올린다. 이 난폭한 엔진의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 더 알고 싶다면 퀘이사란 무엇일까 편이 좋은 길잡이가 된다.
제트에는 눈을 의심케 하는 재주가 하나 더 있다. 어떤 제트는 관측하는 내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물리학의 철칙을 정면으로 어기는 듯한 이 장면을, 천문학자들은 초광속 운동이라 부른다. 물론 진짜로 빛을 앞지르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방향이 빚어낸 착시일 뿐이다.
제트가 거의 우리 쪽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온다고 해 보자. 빛의 속도에 가까운 그 줄기는, 자신이 방금 내보낸 빛을 거의 따라잡을 만큼 바짝 뒤쫓는다. 그래서 나중에 도착한 빛과 먼저 도착한 빛 사이의 시간 간격이 극단적으로 쪼그라들고, 우리 눈에는 짧은 사이에 엄청난 거리를 건너뛴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실제로 M87의 제트에서는 빛의 다섯 배가 넘는 속도로 움직이는 듯한 조각이 잡히기도 했다. 이 착시는 1966년 마틴 리스가 미리 내다봤고, 몇 해 뒤 3C 273과 3C 279의 제트에서 처음으로 관측됐다.
처음 이 초광속 운동이 관측됐을 때, 몇몇 사람은 상대성이론이 깨진 것은 아닐까 술렁였다. 하지만 계산을 찬찬히 해 보면 조금도 모순이 없다. 빠르게 다가오는 물체가 스스로 내보낸 빛을 뒤쫓을 때 생기는, 순전히 시점의 문제였을 뿐이다. 실제 속도는 여전히 빛보다 느리다. 다만 우리가 그 줄기를 거의 정면에서 마주 보는 탓에, 하늘 위에서의 걸음걸이가 부풀려져 보이는 것이다.
정면으로 달려오는 제트에는 또 다른 효과가 겹친다. 우리를 향해 곧장 다가오는 빛은 훨씬 밝게 뭉쳐 보인다. 그래서 제트를 정확히 정면에서 마주한 천체는 유난히 밝고 변덕스럽게 반짝이는데, 이런 부류를 블레이자라 따로 부른다. 같은 제트라도 우리가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이 정면으로 마주한 제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블레이자란 무엇일까 편에서 이어 볼 수 있다.
퀘이사 제트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결국 한 장면으로 모인다. 무엇이든 삼키기만 할 것 같던 블랙홀이, 오히려 우주에서 가장 멀리 뻗는 빛의 줄기를 내쏜다는 것이다.
들어가는 것과 나오는 것은 늘 반대인 것만 같다. 하지만 제트는 그 둘이 한 몸임을 보여 준다. 블랙홀로 빨려드는 회전과 원반의 소용돌이가 없다면, 은하를 가로지르는 저 곧은 줄기도 없다. 삼키는 힘이 곧 내뿜는 힘이 된다. 가장 깊이 끌어당기는 자리에서, 가장 멀리 내닫는 빛이 태어난다.
가장 깊이 끌어당기는 자리에서, 가장 멀리 내닫는 빛이 태어난다.
그러니 언젠가 당신이 은하 사진 한 귀퉁이에서 곧게 뻗은 가느다란 줄기를 보게 된다면, 잠시 그 앞에 머물러도 좋겠다. 그것은 수억 광년 저편의 블랙홀이 제 회전을 쥐어짜 쏘아 올린, 빛의 속도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물줄기다. 가장 어두운 것으로 알려진 존재가, 실은 우주에서 가장 밝고 빠른 창을 던지고 있다. 그 창끝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눈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지 모른다.
이 글의 사실은 아래 1차 문헌(원논문)과 기관 자료에 근거합니다. 위키백과·보도자료가 인용하는 원출처까지 함께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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