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사와 펄사. 발음도 비슷하고 둘 다 1960년대에 정체 모를 전파 신호로 나타났다. 하지만 하나는 죽은 별의 등대이고, 다른 하나는 은하 심장의 블랙홀 불이다. 이름만 닮은 두 천체를 나란히 놓고 본다.
핵심 요약
쌍둥이처럼 이름이 닮은 형제가 실은 성격이 정반대인 경우가 있다. 밤하늘에도 그런 한 쌍이 산다. 퀘이사와 펄사. 발음도 어지간히 비슷하고, 둘 다 1960년대에 정체 모를 전파 신호로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그래서 지금도 두 이름을 나란히 놓으면 어느 쪽이 뭐였는지 아리송해진다. 그런데 이 둘은 이름의 끝소리만 닮았을 뿐이다. 크기부터 정체, 사는 곳까지 완전히 다르다. 오늘은 그 퀘이사 펄사 차이를 하나씩 짚어 본다.

이름을 지을 때 둘 다 정체가 밝혀지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천문학자들은 정체 모를 전파 신호를 잇달아 잡아냈는데, 하나는 별처럼 작은 점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규칙적으로 깜빡였고, 둘 다 별 비슷한 무엇이라는 첫인상에서 이름을 얻었다. (Hewish 외 1968, Nature 217:709 · Schmidt 1963, Nature 197:1040)
1960년대의 천문학자들은 하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파 신호를 잇달아 잡아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별처럼 작디작은 한 점에서 왔다. 그런데 아무리 뜯어봐도 보통 별이 낼 수 있는 크기의 에너지가 아니었다. 별을 닮았지만 별은 아닌 이 수수께끼의 전파원에 사람들은 '준항성 전파원'이라는 긴 이름을 붙였고, 이내 줄여서 퀘이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별 같지만 별이 아니라는 뜻이 그 이름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1963년, 마르턴 슈밋이라는 천문학자가 3C 273이라는 천체의 빛을 해독하면서 그것이 수십억 광년 밖에서 온 빛임을 밝혀냈다. 그렇게 먼 곳의 한 점이 이토록 밝게 보이려면, 대체 얼마나 엄청난 불덩이여야 하는 걸까.
그로부터 몇 해 뒤, 케임브리지의 젊은 대학원생 조슬린 벨이 또 다른 이상한 신호와 마주친다. 이번 전파는 1.3초마다 정확히 한 번씩, 마치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처음엔 그 규칙성이 하도 기이해서, 혹시 외계 문명이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 싶어 'LGM-1', 그러니까 '작은 초록 사람 1호'라는 장난 섞인 이름까지 붙여 두었다고 한다. 다행히 곧 자연이 만든 현상임이 드러났고, 맥동하는 전파원이라는 뜻에서 펄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퀘이사와 펄사. 둘 다 별처럼 보이는 정체불명의 전파원으로 같은 시대에 나타났고, 이름의 끝소리마저 닮았으니 헷갈릴 만도 하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가 둘이 공유하는 전부다. 이 지점을 지나면 두 천체는 서로 반대편으로 갈라선다.
펄사는 태양보다 무거운 별이 폭발하고 남긴 중성자별로, 지름 약 20㎞의 도시만 한 몸이 빠르게 자전하며 양극에서 좁은 전파 빛줄기를 등대처럼 뿜는다. (Hewish 외 1968, Nature 217:709)
그렇다면 펄사란 대체 무엇일까. 펄사의 정체는 놀랍게도 별의 시체다. 태양보다 훨씬 무거운 별은 일생의 끝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날려 버린다. 그 폭발의 한복판에 별의 중심핵만 오그라들어 남는데, 이것이 중성자별이다. 태양보다 무거운 질량이 지름 20킬로미터 남짓, 그러니까 도시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공 안에 욱여넣어져 있다. 각설탕 한 조각만큼을 떠내도 그 무게가 수억 톤에 이를 만큼 촘촘하다. 별이 죽어 남긴 이 작고 단단한 심장이 바로 펄사의 몸이다.
이 죽은 별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몸이 오그라들면서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자전하고, 강력한 자기장을 두른 채 양극에서 좁은 전파 빛줄기를 뿜어낸다. 그 빛줄기가 별의 회전을 따라 우주를 빙빙 훑는다. 마치 바닷가 등대가 빙글빙글 돌며 어둠 속으로 불빛을 던지듯 말이다. 그 빛줄기가 어쩌다 지구를 스칠 때마다 우리는 짧은 신호 하나를 받는다. 별이 한 바퀴 돌 때마다 한 번씩, 깜빡깜빡. 조슬린 벨이 받은 1.3초의 규칙적인 신호는 바로 이 등대가 돌아가는 박자였던 것이다. 어떤 펄사는 1초에 수백 번씩 돌 만큼 어지럽게 빠르다. 그 회전이 어찌나 일정한지 웬만한 원자시계와 견줄 만하다. 무엇보다 펄사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대부분 우리 은하 안, 길어야 수천에서 수만 광년 거리에 흩어져 있는 이웃이다. 저 유명한 게 성운 한복판에도 1초에 서른 번씩 도는 펄사 하나가 박혀 있다. 그 게 성운은 약 천 년 전, 그러니까 1054년에 폭발한 별이 남긴 잔해다. 당시 사람들은 대낮에도 보일 만큼 환한 별이 하늘에 불쑥 나타났다가 스러지는 광경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그 별의 죽음이 남긴 단단한 심장이 지금도 저렇게 돌며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퀘이사는 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태양의 수백만~수십억 배)이 물질을 삼킬 때 켜지며, 빛을 내는 것은 수백만 도로 달아오른 강착원반으로 은하 전체보다 밝다. (Schmidt 1963, Nature 197:1040)
이제 퀘이사로 건너가 보자. 퀘이사는 별의 시체가 아니다. 애초에 별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퀘이사는 은하의 정중앙에 도사린 초대질량 블랙홀이 왕성하게 물질을 집어삼킬 때 켜지는 불빛이다. 이 블랙홀의 무게는 펄사와 아예 급이 다르다. 태양의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에 이른다. 펄사가 태양 한둘의 무게라면, 퀘이사의 심장은 태양 수억 개를 뭉쳐 놓은 괴물이다. 도시만 한 죽은 별과, 태양계를 통째로 삼키고도 남을 블랙홀. 둘의 저울추가 이렇게까지 어긋나 있다.
블랙홀 자체는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검은 구멍이다. 그러니 정작 눈부시게 빛나는 것은 블랙홀이 아니다. 그 곁이다. 블랙홀로 빨려드는 가스가 소용돌이치며 원반을 이루고, 이 가스가 서로 맹렬히 부딪치고 짓눌리며 수백만 도로 달아오른다. 그렇게 달궈진 원반이 은하 전체의 별을 모두 합친 것보다 밝게 타오른다. 그것이 바로 퀘이사다. 그러니 저 멀리 수십억 광년 밖의 한 점이 그토록 밝게 보였던 것이다. 퀘이사는 대개 아득히 먼 옛 우주에 있다. 그 빛이 우리에게 닿기까지 수십억 년이 걸렸으니, 우리가 지금 보는 퀘이사는 우주가 한창 젊던 시절의 얼굴이다. 이웃에 사는 펄사와 달리, 퀘이사는 시간의 저 끝에서 편지처럼 도착한 손님이다. 가장 가까운 축에 드는 밝은 퀘이사 3C 273조차 20억 광년 넘게 떨어져 있다. 수천억 개의 별이 모인 은하 하나가, 그 한가운데 블랙홀의 불빛 하나에 통째로 압도당하는 광경이다. 은하 전체를 합친 빛보다 중심의 불티 하나가 더 환하다니, 쉽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그 심장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퀘이사란 무엇일까 편을 먼저 읽어도 좋다.
펄사와 퀘이사는 정체·질량·크기·사는 곳·빛을 내는 방식이 모두 정반대로, 펄사는 우리 은하 안 이웃이고 퀘이사는 수십억 광년 밖 옛 우주의 손님이다. (Hewish 외 1968, Nature 217:709 · Schmidt 1963, Nature 197:1040)
이제 두 천체를 한 자리에 세워 놓고 견줘 보자. 무엇이 가장 크게 갈릴까. 우선 정체가 다르다. 펄사는 별이 죽어 남긴 실제 천체, 곧 중성자별이다. 반면 퀘이사는 천체 하나의 이름이라기보다, 블랙홀이 물질을 삼키며 은하 중심이 통째로 타오르는 하나의 '현상'에 가깝다. 하나는 별의 마지막이고, 다른 하나는 은하의 심장이 벌이는 불꽃놀이다. 크기와 무게도 하늘과 땅이다. 펄사는 도시만 한 공에 태양 한둘의 무게가 담긴 반면, 퀘이사의 블랙홀은 태양 수백만에서 수십억 배에 달한다.
사는 곳도 다르다. 펄사는 대체로 우리 은하 안 가까운 이웃이고, 퀘이사는 수십억 광년 밖 먼 옛 우주의 손님이다. 빛을 내는 방식마저 정반대다. 펄사는 빠른 회전과 자기장으로 좁은 빛줄기를 뿜어 등대처럼 규칙적으로 깜빡인다. 퀘이사는 빨려드는 가스가 마찰로 달아오르며 쉼 없이 환하게 타오른다. 하나는 시계처럼 째깍이는 맥박이고, 다른 하나는 꺼질 줄 모르는 화톳불이다. 그러고 보면 퀘이사 펄사 차이는 단순한 크기 차이가 아니다. 별의 죽음과 은하의 심장이라는 전혀 다른 두 이야기다. 이름의 끝소리가 같다는 이유로 한데 묶기엔, 둘은 우주에서 서로 가장 먼 자리에 서 있다. 같은 블랙홀이라도 언제 퀘이사로 켜지는지가 궁금하다면 퀘이사와 블랙홀은 뭐가 다를까 편이 나란히 읽기 좋다.
첫인상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둘 다 정체를 모른 채 별처럼 보이는 이상한 전파원이라는 인상만으로 이름을 얻었다. 정체가 밝혀진 뒤에도 이름은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헷갈리는 짝으로 붙어 다닌다. (Hewish 외 1968, Nature 217:709 · Schmidt 1963, Nature 197:1040)
돌이켜 보면 신기한 일이다. 사람이 무언가에 이름을 붙일 때는, 대개 그 정체를 다 알기 전에 서둘러 이름부터 짓는다. 이 두 이름이 꼭 그랬다. 둘 다 정체를 모른 채, 그저 '별처럼 보이는 이상한 전파원'이라는 첫인상만으로 비슷한 이름을 얻었다. 그러고 나서야 사람들은 하나가 죽은 별의 등대이고, 다른 하나가 은하를 밝히는 블랙홀의 불이라는 걸 천천히 알아 갔다. 이름은 첫인상에서 오지만, 정체는 오래 들여다본 끝에야 드러난다. 이 얼마나 사람을 닮은 일인가.
닮은 이름 뒤에, 저마다 다른 심장이 뛴다. 별도, 사람도 그렇다.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 퀘이사와 펄사를 헷갈려 하거든, 이렇게 떠올려 보면 좋겠다. 펄사는 도시만 한 죽은 별이 켠 작은 등대, 퀘이사는 은하의 심장에서 타오르는 거대한 화톳불. 하나는 우리 곁에서 째깍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의 저 끝에서 빛난다. 이름이 닮았다고 해서 정체까지 닮은 것은 아니다. 그건 사람도, 별도, 어쩌면 당신 곁의 누군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닮은 얼굴 뒤에 저마다 다른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 밤하늘의 이 두 이름이 조용히 건네는 이야기다.
이 글의 사실은 아래 1차 문헌(원논문)과 기관 자료에 근거합니다. 위키백과·보도자료가 인용하는 원출처까지 함께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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