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어리가 온다는 사실은 사흘 전에 안다. 그것이 폭풍이 될지는 도착 30분 전에야 알 수 있다.
세 줄 요약
① 폭풍의 세기를 가르는 첫 번째 조건은 덩어리의 크기나 속도보다 그것이 품고 온 자기장의 방향이다.
② G등급은 하늘을 본 값이 아니다. 땅에 박힌 자력계 여덟 대가 세 시간 동안 얼마나 흔들렸는지를 환산한 Kp 지수의 다른 이름이다.
③ 그 방향은 덩어리가 지구 코앞에 닿아야 측정된다. 그래서 오늘 나간 것은 예보가 못 되고 워치에 머문다.
태양은 사흘 전 두 번 뱉었다. 8월 25일 오전 10시 2분, 태양 원반 한가운데 놓인 활동영역 4513에서 M6.9급 플레어가 터졌다. 한 시간 뒤 코로나그래프가 그 자리에서 떠나는 덩어리를 잡았고, 같은 날 오후 필라멘트가 무너지며 두 번째 덩어리가 뒤따랐다.
두 덩어리 모두 지구를 향한 성분을 품고 있었다. 미국 해양대기청 우주환경예측센터는 이 둘이 8월 28일 지구 근처에 도달하리라 보고, 그날에 대해 G2 등급 지자기폭풍 워치를 걸었다. 바로 오늘이다.
여기까지가 뉴스가 전하는 내용이다. 태양에서 무언가 터졌고, 그것이 오고 있고, 오로라가 보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문장들 사이에는 설명되지 않은 칸이 하나 있다. 어제도 태양은 덩어리를 뱉었고 지난달에도 뱉었는데, 그 대부분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크기가 비슷한 덩어리들이 어떤 날은 전력망에 경보를 띄우고 어떤 날은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덩어리가 품고 온 자기장이 지구 자기장과 반대쪽을 향할 때만 폭풍이 된다. 우주환경예측센터는 지자기폭풍을 만드는 태양풍 조건으로 여러 시간 이어지는 빠른 태양풍과 함께 "무엇보다도, 자기권 낮쪽에서 지구 자기장과 반대 방향을 향하는 남향 태양풍 자기장"을 든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Geomagnetic Storms」). 속도와 질량은 그다음 문제로 밀린다.
이 대목이 직관을 배반한다. 우리는 큰 것이 세게 부딪히면 큰 일이 난다고 배웠다. 태양이 뱉는 물질은 실제로 어마어마하다.
우주환경예측센터는 코로나질량방출을 "10억 톤가량의 플라스마가 자기장을 품은 채" 지구에 닿는 사건으로 서술한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Geomagnetic Storms」). 그만한 것이 초속 수백 킬로미터로 달려와 부딪히는데, 그 결과가 방향 하나에 좌우된다는 말이다.
충돌의 세기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 애초에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는 맞는 쪽에 서 있지 않다. 지구는 문을 열지 말지 정하는 쪽에 서 있다.
덩어리는 벽을 부수러 오지 않는다. 열쇠를 들고 온다. 그 열쇠가 맞는 날에만 문이 열린다.
지구 자기장과 반대로 놓인 두 자기장이 맞물리면서 태양풍의 에너지가 자기권 안으로 흘러드는 통로가 열린다. 우주환경예측센터는 자기권계면이 "우리를 어느 정도 가려 주지만 결코 뚫을 수 없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에너지와 질량과 운동량이 태양풍에서 지구 자기권 안쪽으로 전달된다"고 적는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Earth's magnetosphere」). 남향일 때 이 전달이 가장 효율적으로 일어난다.
지구의 자기권은 바람에 눌린 물방울처럼 생겼다. 태양 쪽에서는 자기장이 지구 중심으로부터 지구 반지름의 약 열 배 거리 안쪽으로 눌려 있고, 반대쪽 밤 방향으로는 수백 배까지 늘어난다. 달 궤도가 60배 거리이니 꼬리는 그보다 훨씬 멀리 뻗는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Earth's magnetosphere」).
그 눌린 앞면이 문이다. 마주 오는 자기장이 지구 자기장과 같은 쪽을 향하면, 두 자기장은 같은 극끼리 만난 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낸다. 문은 닫힌 채로 있고 덩어리는 표면을 미끄러져 뒤로 흘러간다.
반대로 놓이면 사정이 달라진다. 서로 다른 극끼리 만난 자석처럼 두 자기장이 이어 붙고, 그렇게 이어진 선을 따라 태양풍의 입자와 에너지가 안으로 실려 들어온다.
이 구조를 처음 짐작하게 한 단서는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 1951년 루트비히 비어만은 혜성의 꼬리가 늘 태양 반대쪽을 향하는 이유를 파고들다가 태양이 무언가를 계속 내뿜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것이 지금 태양풍이라 불린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Earth's magnetosphere」). 우주날씨라는 분야가 혜성 꼬리의 방향에서 시작된 셈이다.
방향만으로는 부족하고 세기와 지속 시간이 함께 문턱을 넘어야 한다. 평균 남향 성분이 마이너스 3나노테슬라 아래로 한 시간 이어지면 부분적인 교란인 서브스톰이 일어나고, 마이너스 10나노테슬라 아래로 세 시간 넘게 꾸준히 이어져야 Dst 지수가 마이너스 100나노테슬라를 밑도는 강한 자기폭풍이 만들어진다(Kamide 외 1977; Gonzalez & Tsurutani, Planetary and Space Science 35, 1101, 1987). 잠깐 남쪽을 스치는 것으로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여기서 지속 시간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가 드러난다. 문이 열려 있다고 방이 곧바로 차지는 않는다. 에너지가 자기권 꼬리에 쌓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자기장이 남쪽으로 돌아선 뒤 오로라대가 적도 쪽으로 넓어지는 데는 평균 45분이 걸리고, 다시 북쪽으로 돌아선 뒤 원래대로 좁아지는 데는 여덟 시간이 걸린다(Nakai 외, 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91, 4437, 1986). 여는 데는 45분, 닫는 데는 여덟 시간이다.
같은 덩어리 안에서도 방향은 계속 뒤집힌다. 그래서 폭풍의 강도는 덩어리가 얼마나 컸는지보다 남쪽을 향한 구간이 얼마나 길게 이어졌는지에 달린다.
하늘이 아니라 땅을 재서 붙인다. 우주환경예측센터는 자기권과 오로라 전기제트가 만드는 자기 교란을 땅에서 측정해 행성 지자기 교란 지수인 Kp를 만들고, "이 지수가 NOAA 우주날씨 등급 셋 가운데 하나인 지자기폭풍 등급, 곧 G등급의 근거"라고 밝힌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Geomagnetic Storms」). G2는 Kp 6의 다른 이름이다.
Kp를 만드는 방식은 생각보다 소박하다. 알래스카 시트카, 캐나다 미눅과 오타와, 버지니아 프레더릭스버그, 영국 하틀랜드, 독일 빙스트와 니메크,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이 여덟 곳 지상 자력계가 세 시간 동안 기록한 수평 성분의 최대 흔들림을 묶어 세 시간짜리 행성 Kp 지수를 낸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Planetary K-index」).
그러니까 G등급은 태양을 잰 숫자가 전혀 아니다. 태양이 한 일이 지구의 땅을 얼마나 흔들었는지를 사후에 확인한 값이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태양 쪽 사건에는 따로 등급이 붙기 때문이다. 이번 M6.9 플레어에는 R2 등급이 매겨졌는데, R등급은 엑스선 세기로 정해지며 M5, 곧 제곱미터당 5 곱하기 10의 마이너스 5제곱 와트가 R2의 기준선이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NOAA Space Weather Scales」). R은 빛이 도착한 8분 뒤에 정해지고, G는 사흘 뒤에 정해진다.
한 칸마다 드문 정도가 서너 배씩 뛰고 오로라가 내려오는 위도가 5도씩 낮아진다. 등급표는 11년 태양 주기 한 번에 G1이 약 1,700회, G2가 약 600회, G3이 약 200회, G4가 약 100회, G5가 네 번 일어난다고 적는다. 오로라 한계선은 G1에서 미시간 북부와 메인주, G2에서 지자기위도 55도인 뉴욕주와 아이다호주, G5에서 40도인 플로리다와 텍사스 남부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NOAA Space Weather Scales」).
Kp는 눈금이 고르게 매겨진 자가 아니다.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사건의 희소함이 몇 배로 뛴다. 오늘 걸린 G2는 주기당 360일가량 일어나는 흔한 수준이고, 최고 등급인 G5는 주기 전체를 통틀어 나흘뿐이다.
G2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하늘보다 땅에서 두드러진다. 등급표는 G2에서 고위도 전력계통에 전압 경보가 뜰 수 있고 오래 이어지는 폭풍은 변압기를 상하게 할 수 있으며, 인공위성은 자세 보정이 필요할 수 있고 고위도 단파 통신이 끊길 수 있다고 적는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NOAA Space Weather Scales」).
사다리의 꼭대기가 어떤 모습인지는 최근에 확인됐다. 2024년 5월 10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진 일련의 폭풍은 2003년 핼러윈 폭풍 이후 처음으로 G5에 도달했고, 우주환경예측센터는 5월 12일에 대해 G4에서 G5 수준의 폭풍이 유력하다는 발표를 따로 냈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2024년 5월 발표). 21년 만의 일이었다.
결과를 가르는 자기장 방향을 미리 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태양풍을 실측하는 심우주기후관측위성은 지구에서 약 100만 마일 떨어진 라그랑주 1점에 머물고, 그 지점의 관측은 통상 15분에서 60분의 여유를 준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Real Time Solar Wind and NOAA's DSCOVR Satellite」). 덩어리가 온다는 사실과 그것이 어떤 열쇠를 들었는지는 사흘과 30분만큼 떨어져 있다.
이 간극이 우주날씨 예보의 구조적 한계다. 코로나그래프로 덩어리가 떠나는 장면을 찍으면 방향과 대략의 속도는 나온다. 그러면 도착 시각도 하루 단위로 잡힌다.
그러나 그 안의 자기장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는 사진으로 알 수 없다. 자기장은 빛을 내지 않는다. 자력계가 직접 통과당해야만 읽힌다.
그래서 우주환경예측센터의 통보는 두 단으로 나뉜다. 며칠 전에 나가는 워치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고, 도착 직전에 나가는 경고는 이미 재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 걸린 것은 앞쪽이다.
등급표가 제시하는 오로라 한계선이 한반도까지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환경예측센터의 등급표에서 오로라가 관측된 가장 낮은 위도는 G2가 지자기위도 55도, G3이 50도, G4가 45도이고, 최고 등급인 G5라야 40도의 플로리다와 텍사스 남부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NOAA Space Weather Scales」). 사다리의 마지막 칸조차 40도에서 멈춘다.
오로라가 생기는 자리는 자기장 선이 대기로 꽂히는 극지방 고리다. 폭풍이 세질수록 그 고리가 적도 쪽으로 넓어지는데, 넓어지는 폭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오로라를 본다는 것은 사다리 꼭대기 근처에서만 생기는 일이 된다. 평범한 G1이나 G2로는 어림도 없다.
다만 하늘이 조용하다는 것과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지자기폭풍이 만드는 유도 전류는 위도와 무관하게 긴 도체를 타고 흐른다. 전력망과 송유관, 그리고 위성항법 신호가 그 도체다.
덧붙이면 오늘 지구에 닿는 것은 덩어리 둘만이 아니다. 27일에는 코로나 구멍에서 나온 고속류가 먼저 왔다. 우주환경예측센터는 이런 고속류가 앞서 가던 느린 태양풍을 밀어붙여 상호작용 영역을 만들고, 그 결과가 "코로나질량방출 폭풍보다는 덜 세지만 더 긴 시간에 걸쳐 자기권에 더 많은 에너지를 쌓아 놓는 경우가 많다"고 적는다(NOAA 우주환경예측센터, 「Geomagnetic Storms」).
정리하면 이렇다. 태양은 덩어리를 뱉고, 그 덩어리는 자기장을 품고 날아오며, 그 자기장의 방향이 지구의 문을 여닫는다. 크기는 문이 열린 뒤에야 값을 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무엇이 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그것이 무엇을 들고 왔는지는 우리 머리 위 150만 킬로미터 지점에 놓인 자력계 하나가 마지막 30분에 알려 준다.
덩어리가 태양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났고, 남은 것은 그 30분이다. 하늘을 올려다볼 이유는 없다. 다만 우주날씨라는 말이 은유가 아니었다는 것 정도는 오늘 확인해 둘 만하다.
본문의 모든 수치는 위 자료와 1:1로 대조했다. 초속 603킬로미터와 초속 약 600킬로미터가 서로 다른 대상을 잰 값이라는 점은 본문 상자에 따로 적었다. 한반도의 지자기위도와 2024년 5월 국내 오로라 관측 여부는 한국 기관의 1차 발표로 확인하지 못해 숫자를 쓰지 않았고, 그 사정 역시 본문 상자에 밝혔다. 한국천문연구원 보도자료는 7월 29일자가 마지막이어서 이번 사건에 대한 국내 1차 발표는 확인되지 않았다. 나노테슬라와 Dst 지수는 원문 표기를 우리말로 풀어 적었으며, 지수 표기는 화면에서 깨지지 않도록 수사로 바꾸었다. 이미지 세 점은 이 글을 위해 직접 만든 도식이고, 자기력선의 모양은 개념을 나타낸 것이며 실제 관측 자료를 옮긴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