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저편 퀘이사의 빛에는 검은 세로줄이 숲처럼 빽빽하다. 그 줄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수소 구름의 그림자라는, 빛으로 우주의 가스를 읽어 내는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늦은 오후, 커튼 틈으로 햇살 한 줄기가 방 안으로 비스듬히 들어온다. 그러면 여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문득 떠오른다. 공중을 천천히 떠다니는 먼지들이다. 먼지는 원래부터 거기 있었다. 다만 빛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빛이 지나가자,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우주에도 그런 빛줄기가 있다. 수십억 광년을 가로질러 오는 동안, 길목에 숨어 있던 보이지 않는 가스를 낱낱이 드러내며 우리에게 닿는 빛. 천문학자들은 그 빛에 새겨진 무늬를 라이먼 알파 숲이라 부른다.
퀘이사는 우주에서 가장 밝은 등불이다. 먼 은하의 심장에서 블랙홀이 물질을 집어삼키며 뿜어내는 빛이라, 은하 하나를 통째로 웃도는 밝기로 타오른다. 그 밝기 덕분에 퀘이사의 빛은 수십억, 때로는 백억 광년이 넘는 거리를 건너 우리 망원경에 닿는다. 우리가 지금 보는 어느 퀘이사의 빛은, 지구가 아직 생기지도 않았던 아득한 옛날에 그 자리를 떠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빛은 오는 길에 대체 무엇을 만났을까. 이 등불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퀘이사란 무엇일까 편을 먼저 읽어도 좋다.
그 긴 여정을 한번 그려 보자. 빛은 텅 빈 우주를 곧장 날아오지 않는다. 은하와 은하 사이의 광막한 공간에는 옅은 수소 가스가 안개처럼 퍼져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성기지만, 분명히 거기 있다. 퀘이사의 빛은 우리에게 오는 내내 그 안개 자락을 몇 번이고 통과한다. 그리고 통과할 때마다, 자기 몸에 조용히 흔적을 하나씩 새긴다. 커튼 틈의 햇살이 먼지를 드러내듯, 퀘이사의 빛도 길목의 보이지 않는 가스를 제 몸에 기록하며 오는 셈이다.
퀘이사에서 지구까지 곧게 그은 이 한 줄기 시선은, 굵기로 치면 연필심 하나만큼도 되지 않는다. 그 가느다란 빛의 길 하나에 백억 광년의 우주가 얇게 저며 담긴다. 우리는 그 빛을 프리즘처럼 펼쳐, 길에 담긴 것들을 한 겹 한 겹 읽어 낸다. 하늘의 수많은 퀘이사마다 이런 시선이 하나씩 그어져 있으니, 천문학자에게 퀘이사는 우주 곳곳으로 꽂아 넣은 탐침이나 다름없다. 라이먼 알파 숲은 그 탐침이 가지고 돌아온 기록이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다.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더없이 단순한 물질이다. 그런데 이 단순한 수소가 특정한 빛을 아주 좋아한다. 전자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한 계단 위로 뛰어오를 때 꼭 맞는 에너지, 파장으로 치면 1216옹스트롬의 자외선이다. 이 파장의 빛이 수소 곁을 지나가면, 수소는 그 빛을 냉큼 삼켜 버린다. 그래서 수소 구름을 통과한 빛을 무지개처럼 펼쳐 보면, 딱 그 파장 자리에 검은 줄이 하나 파인다. 빛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가스의 그림자인 것이다. 빛은 소리 없이 지나쳤을 뿐이지만, 제 몸에 그 만남을 또렷이 적어 두고 왔다.
이름이 조금 낯설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라이먼'은 20세기 초에 수소가 내는 자외선 빛들을 꼼꼼히 목록으로 남긴 물리학자 시어도어 라이먼의 이름이다. 그가 정리한 여러 줄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첫 줄에 '알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것이 바로 그 1216옹스트롬의 빛, 라이먼 알파선이다. 수소가 가장 즐겨 삼키는 빛이라 흔적도 가장 진하게 남는다. 이 선이 스펙트럼에 빽빽이 새겨진 무늬이니, 라이먼 알파 숲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 그림자가 라이먼 알파 숲의 씨앗이다. 퀘이사의 빛이 오는 길에 수소 구름 하나를 만나면, 스펙트럼에 검은 줄이 하나 새겨진다. 구름을 둘 만나면 줄이 둘, 셋을 만나면 셋이 된다. 그런데 우주의 텅 빈 공간에는 그런 수소 구름이 수백, 수천 개씩 흩어져 있다. 그러니 백억 광년을 건너온 퀘이사의 빛에는, 그 길에서 만난 구름의 수만큼 검은 줄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우리는 그 줄 하나하나를 읽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스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낸다.
검은 줄이 여럿이라고 다 숲은 아니다. 이 무늬를 굳이 숲이라 부르는 데에는 우주의 팽창이 숨어 있다.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부풀고 있고, 그래서 먼 곳에서 오는 빛일수록 파장이 더 길게 늘어난다. 퀘이사와 우리 사이에 놓인 수소 구름들도 저마다 거리가 다르다. 어떤 구름은 퀘이사에 가깝고, 어떤 구름은 우리에게 가깝다. 거리가 다르면 늘어난 정도도 다르다. 그래서 같은 1216옹스트롬에서 시작한 그림자라도, 우리 눈에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자리에 와서 박힌다.
그 결과가 바로 숲이다. 스펙트럼의 한쪽 구간에 검은 세로줄이 빽빽하게 늘어선 모습이, 마치 나무들이 줄지어 선 숲을 닮았다. 줄 하나하나는 서로 다른 거리에, 서로 다른 시대에 떠 있는 수소 구름이다. 퀘이사에 가까운 줄은 우주가 젊었을 적의 가스이고, 우리에게 가까운 줄은 비교적 최근의 가스다. 그러니 이 숲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훑어 읽는 일은, 곧 백억 년에 걸친 우주의 역사를 한 줄기 빛 안에서 되짚는 일이 된다. 빛줄기 하나가 시간을 꿰뚫는 시추공이 되어 주는 것이다.
숲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의 결이 있다. 퀘이사 쪽으로 갈수록, 그러니까 더 먼 과거로 갈수록 검은 줄이 더 빽빽해진다. 우주가 젊었을 적에는 공간이 지금보다 좁게 뭉쳐 있어 가스도 더 촘촘했던 까닭이다. 반대로 우리에게 가까운 쪽은 나무가 성글다. 시간이 흐르며 우주가 넓어지고 가스가 옅어진 흔적이다. 이렇게 숲의 빽빽한 정도만 헤아려도, 우주의 가스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옅어져 왔는지가 한눈에 그려진다. 나무의 나이테를 세듯, 우리는 이 숲의 줄을 세어 우주의 나이를 읽는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만약 우주의 수소가 지금보다 훨씬 빽빽했다면 어땠을까. 구름이 지금처럼 드문드문 떠 있지 않고 온 공간을 촘촘히 메우고 있었다면, 퀘이사의 빛은 검은 줄 몇 개로 끝나지 않고 아예 넓은 구간이 통째로 먹혀 버렸을 것이다. 성긴 숲 대신, 빛이 사라진 시커먼 골짜기가 남는다. 이걸 처음 내다본 사람이 1965년의 건과 피터슨이다. 두 사람은 은하 사이 공간이 중성수소로 가득하다면 퀘이사 스펙트럼에 이런 검은 골짜기가 나타나야 한다고 계산했다.
그런데 실제로 퀘이사를 겨눠 보니, 골짜기는 없었다. 시커먼 구간은 어디에도 없고, 성긴 숲만 있었을 뿐이다. 이 뜻밖의 결과가 우주에 관한 커다란 사실 하나를 알려 주었다. 은하 사이의 수소는 대부분 중성 상태로 남아 있지 않고, 이미 전자를 빼앗긴 이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빛을 삼킬 중성수소가 얼마 없으니 골짜기가 파이지 않고 성긴 숲만 남은 셈이다. 건과 피터슨의 계산과 견주니, 실제 중성수소의 양은 예상보다 수만 배나 적었다.
그렇다면 그 검은 골짜기는 영영 볼 수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우주를 아주 먼 초기까지 거슬러, 첫 별과 은하가 갓 태어나던 시절의 퀘이사를 겨눠 보면 그제야 골짜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별빛이 은하 사이 수소를 다 이온화하지 못해, 온 공간이 중성수소로 자욱하던 때다. 우주가 캄캄한 안개를 걷고 처음으로 투명해진 그 문턱이, 바로 이 골짜기와 숲이 갈리는 자리에 새겨져 있다. 그 첫 새벽의 거대 블랙홀이 궁금하다면 초기 우주 거대 블랙홀 편도 나란히 읽어 볼 만하다. 라이먼 알파 숲은 그렇게 있고 없음만으로도 우주가 언제 밝아졌는지를 조용히 일러 준다.
라이먼 알파 숲이 그려 보이는 그림은 결국 우주의 밑그림이다. 검은 줄들의 촘촘한 정도를 이어 보면, 은하 사이의 가스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지 않다는 게 드러난다. 어떤 곳에는 가스가 실처럼 길게 이어져 모여 있고, 또 어떤 곳은 휑하니 비어 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이 우주 거대구조라 부르는, 은하들이 그물처럼 얽힌 그 밑바탕의 가스 골격이 이 숲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눈에 보이는 은하가 그물의 매듭이라면, 라이먼 알파 숲은 그 매듭을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을 비춰 준다.
한 줄기 빛은 그 실을 한 가닥밖에 짚지 못한다. 하지만 하늘 곳곳의 퀘이사 수천, 수만 개를 한데 모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그어진 시선들을 엮으면, 은하 사이 가스의 3차원 지도가 서서히 떠오른다. 손댈 수도, 사진으로 담을 수도 없던 우주의 가스를, 우리는 그렇게 먼 등불들의 그림자만으로 지도에 옮겨 그린다. 빛 한 줄기로는 실 한 가닥이지만, 그런 줄기가 수만이면 우주의 그물이 통째로 모습을 드러낸다. 우주에 흩어진 보통 물질의 상당 부분이 실은 이 옅은 숲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도, 그 지도를 그려 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가스가, 먼 빛의 그림자 속에서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해 보면 조금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그 가스에 손을 뻗은 적도, 빛을 비춰 사진을 찍은 적도 없다. 그저 아득히 먼 퀘이사가 우연히 그 곁을 지나며 남긴 그림자를, 뒤늦게 읽어 냈을 뿐이다. 지구가 생기기도 전에 떠난 한 줄기 빛이, 억겁을 달려와 당신 앞의 스펙트럼 위에 보이지 않는 가스의 지도를 펼쳐 놓는다. 그러니 당신이 언젠가 검은 줄이 빼곡한 퀘이사 스펙트럼을 다시 만난다면, 그 줄들을 성가신 얼룩으로 여기지 말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줄 하나하나가 저마다 한 조각의 우주라고, 그 숲이 곧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 내려는 우리의 오랜 눈길이라고, 그렇게 여겨 보면 좋겠다.
이 글의 사실은 아래 1차 문헌(원논문)과 기관 자료에 근거합니다. 위키백과·보도자료가 인용하는 원출처까지 함께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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