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복은 사람을 지구와 똑같은 조건에 두지 않는다. 훨씬 낮은 압력에 둔다. 그 선택이 편하자고 한 일인데, 몸에 청구서가 날아왔다.
세 줄 요약
① 선외활동 우주복은 순산소 4.3 psia로 채운다. 옷을 굽힐 수 있게 하려고 내린 숫자다.
② 그 낙차를 그냥 통과하면 몸에 녹아 있던 질소가 기포가 된다. 잠수부가 겪는 감압병과 같은 기전이다.
③ 그래서 문을 열기 전에 순산소를 마신다. 걸리는 시간은 선실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몇십 분에서 하룻밤까지 갈린다.
미국 동부시간 8월 25일 오전 8시 35분, 한국 시각으로는 같은 날 밤 9시 35분에 국제우주정거장 밖에서 두 사람이 일을 시작한다. NASA의 아닐 메논과 유럽우주국의 소피 아드노다. 지난주에 떼어 낸 지상 통신 안테나 자리에 예비품을 끼워 넣고 전기와 데이터 연결을 잡는 작업이다.
중계로 보면 이 일은 문을 열고 나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듯 보인다. 실제 순서는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은 나가기 한참 전부터 마스크나 헬멧을 쓰고 순산소를 마시며 앉아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이 바깥 작업 시간과 맞먹거나 더 길기도 하다.
왜 그런 시간이 필요한지는 우주복이 왜 그렇게 헐렁한 압력으로 채워지는지를 먼저 물어야 답이 나온다. 편하게 만들려고 내린 숫자 하나가, 사람 몸에 전혀 다른 문제를 열어 놓았다.
국제우주정거장 선실은 해수면과 같은 14.7 psia에 산소 21퍼센트로 유지되지만, 미국 선외활동 우주복은 순산소 4.3 psia로만 채운다. 지구 기압의 30퍼센트에 못 미치는 값이다. 압력을 더 올리면 부푼 옷이 관절을 붙잡아 팔을 굽히는 데만 힘이 다 들어가므로, 움직일 수 있는 한계선에서 숫자가 멈춰 있다. (NASA OCHMO-TB-037 Rev C — 선실 14.7 psia · 우주복 4.3 psia)
이 값이 얼마나 낮은지는 다른 숫자와 나란히 놓아야 감이 온다. NASA 자체 기준은 사람이 무기한 머물러도 되는 압력 범위를 5 psia 초과 15.0 psia 이하로 잡는다. 우주복 안 4.3 psia는 그 하한선보다도 낮다. 순산소이기 때문에 폐에 도달하는 산소 분압은 지구에서와 비슷하게 유지되지만, 총압력만 놓고 보면 사람이 오래 머물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내렸는지는 부푼 풍선을 눌러 본 사람이면 짐작이 간다. 옷 안팎의 압력차가 클수록 옷감은 팽팽해지고, 팽팽해진 옷은 접히기를 거부한다. 압력을 3분의 1로 낮추면 그 저항이 3분의 1로 줄어든다. 손가락을 쥐었다 펴는 단순한 동작이 이 숫자 하나에 달려 있다.
덤도 있다. 안팎의 압력차가 작으면 미세운석에 옷이 뚫렸을 때 공기가 새어 나가는 속도도 느려진다. 그만큼 대처할 시간이 생긴다. 낮은 압력은 불편을 감수한 결과가 아니었다.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눌러 준 선택이었다.
몸에 녹아 있던 질소가 기포로 바뀐다. 높은 압력에서 조직에 녹아 있던 질소는 압력이 갑자기 낮아지면 그대로 머무를 수 없고, 새 압력에서 용액에 담길 수 있는 양을 넘어선 몫이 밖으로 나와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이 조직을 밀어내거나 혈관을 막는 상태가 감압병이다. (NASA OCHMO-TB-037 Rev C — Conkin의 정의를 인용)
이름이 낯설다면 잠수병을 떠올리면 된다. 깊은 물에서 급히 올라온 잠수부가 겪는 그 병과 기전이 같다. 방향만 반대다. 잠수부는 높은 압력에서 낮은 압력으로 올라오고, 우주비행사는 선실 압력에서 우주복 압력으로 내려간다. 몸 입장에서는 둘 다 똑같이 "갑자기 압력이 줄었다"이다.
기포는 어디에 생기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NASA는 관절 통증이나 한쪽 팔다리의 저림, 가벼운 피부 증상을 1형으로 묶고, 중추신경계나 심혈관계를 건드리는 쪽을 2형으로 나눈다. 2형에는 근력 저하와 혼동, 균형 상실, 뇌졸중까지 들어간다. 정맥으로 흘러든 기포는 폐가 걸러 내지만 동맥으로 들어간 기포는 그러지 못한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우주복이 순산소니까 질소 걱정이 없다는 설명을 한국어 자료에서 자주 만난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우주복에 질소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문제를 일으키는 질소는 우주복 안에 없다. 이미 몸속에 들어와 있던 질소다. 정거장에서 몇 달을 지내는 동안 조직 구석구석에 녹아든 그 질소가 나갈 곳을 찾는다.
NASA가 이 위험을 다루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위험을 0으로 만들겠다고 쓰지 않는다. 1형 감압병 발생을 15퍼센트 이하로, 4등급 정맥 기포를 20퍼센트 이하로 누르고, 2형은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숫자로 적어 둔다. 그 기준 아래에서 지금까지 실제 비행 중 2형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프로토콜에 따라 40분대부터 하룻밤까지 갈린다. 우주복 안에서 14.7 psia로 순산소를 4시간 마시는 방식, 에어록을 10.2 psia에 산소 26.5퍼센트로 낮춰 전날 밤을 보내는 캠프아웃 방식, 짧고 강한 운동을 앞에 붙이는 운동 프로토콜, 마스크로 40분을 마신 뒤 20분에 걸쳐 감압하는 선내 경운동 방식이 나란히 쓰였다. (NASA OCHMO-TB-037 Rev C — 과거 프리브리드 프로토콜 네 가지)
캠프아웃이 특히 인상적인 방식이다. 우주비행사는 선외활동 전날 밤 에어록에 들어가 문을 닫고, 압력을 10.2 psia로 내린 채 그 안에서 잠을 잔다. 자는 동안 질소가 천천히 빠져나가므로 다음 날 아침 우주복 안에서 마셔야 할 순산소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운항상의 이유로 10.2 psia에 머무는 시간은 8시간 40분을 넘기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준비 시간의 길이를 정하는 쪽이 우주복이 아니고 선실이라는 점이다. 우주복 압력을 4.3 psia로 고정해 두고 선실 쪽 조건만 바꿔 보면, 14.7 psia에 산소 21퍼센트인 정거장에서는 몇 시간이 필요하고, 8.2 psia에 산소 34퍼센트로 낮춘 선실에서는 준비가 거의 필요 없어진다. 사람이 견뎌야 하는 것은 절대 압력이 아니라 낙차다.
질소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조직에 도달하는 혈류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면 혈류가 늘고, 조직에 묶여 있던 질소가 폐로 실려 나오는 속도도 함께 빨라진다. 그래서 순산소를 마시는 동안 자전거를 밟게 하면 같은 안전 수준을 더 짧은 시간에 얻을 수 있다. (캐나다우주국, Using exercise to help prevent decompression sickness)
이 발상이 나온 배경에는 계산기가 있었다. 국제우주정거장을 짓는 데만 선외활동이 160회 넘게 필요했는데, 한 번 나갈 때마다 열두 시간을 감압에 쓰면 일정이 감당되지 않는다. NASA와 캐나다우주국, 캐나다 국방연구소, 듀크대학이 함께 저압실에 사람을 넣고 운동 시간과 강도를 바꿔 가며 시험했고, 그중 하나가 정식 절차로 승인됐다.
선내 경운동 프로토콜은 이 발상을 가장 얌전한 형태로 다듬은 결과다. 짧고 세게 굴리는 대신 우주복 안에서 가벼운 움직임을 길게 이어 간다. 절차의 뼈대는 운동 프로토콜과 거의 같지만, 마스크로 순산소를 40분 마신 뒤 20분에 걸쳐 10.2 psia까지 내려간다는 대목이 다르다.
같은 우주복이라고 다 같은 절차를 쓰지도 않는다. 러시아 올란 우주복은 가압 방식이 달라 미국 절차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옷의 설계가 사람의 준비 시간표까지 바꿔 놓는 셈이다.
아폴로 선실이 5.0 psia 순산소였기 때문이다. 몸에 씻어 낼 질소가 애초에 없었으므로 감압병 위험이 사라졌고 프리브리드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폴로 우주복은 지금보다도 낮은 3.75 psia로 운용됐는데, 선실과의 낙차가 작아 이 값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NASA OCHMO-TB-037 Rev C · Gernhardt 외, NASA/SP-2013-607 5.4장)
공짜였을 리는 없다. 순산소 선실은 감압병을 지웠지만 대신 불을 불렀다. 1967년 1월 27일, 지상 시험 중이던 아폴로 1호 사령선은 대기압보다 조금 높은 16.7 psi의 순산소로 채워져 있었고, 배선에서 튄 불꽃 하나가 걷잡을 수 없는 화재로 번졌다. 거스 그리섬, 에드 화이트, 로저 채피 세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 뒤 NASA는 지상에서는 산소 60퍼센트에 질소 40퍼센트를 섞어 채우고, 발사 과정에서 그 혼합기를 서서히 내보내며 5 psi 순산소로 바꾸는 방식으로 설계를 고쳤다. 위험 하나를 지우면 다른 위험이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이 분야에서는 도표가 아니라 사고 조사 보고서로 남았다.
지금의 정거장이 선실을 지구와 같은 조건으로 두는 이유도 여기에 닿아 있다. NASA 기준은 선실 대기에 불활성 희석 기체를 최소 30퍼센트 넣도록 못 박고 있다. 화재 위험을 낮추자고 질소를 남겨 두었고, 그 질소를 다시 씻어 내자고 프리브리드를 한다. 두 요구가 같은 공기 안에서 맞물려 있다.
그대로는 통하지 않는다. NASA는 낮은 압력에 노출된 상태에서 걷거나 몸을 쓰면 감압병 위험이 크게 올라간다고 보고, 무중력에서 검증된 국제우주정거장 프리브리드 프로토콜은 행성 표면 선외활동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명시한다. 정거장 밖에서는 손으로 붙잡고 이동하지만 달과 화성에서는 다리로 걷는다. (NASA OCHMO-TB-037 Rev C — 보행이 감압병 위험을 올린다)
그래서 논의의 축이 옮겨 갔다. 준비 절차를 더 정교하게 다듬는 쪽이 아니다. 선실 자체를 바꾸는 쪽이다. 총압력을 8.2 psia로 낮추고 산소를 34퍼센트로 올린 이른바 탐사용 대기가 유력한 후보다. 이 조건이면 4.3 psia 우주복으로 나가는 데 필요한 준비 시간이 거의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와 있다.
이 문제를 다르게 푸는 길도 있다. 우주복 압력을 아예 올려 버리는 것이다. 8.3 psi로 설계된 시험용 경식 우주복 같은 것을 쓰면 정거장 선실에서 그대로 입고 나갈 수 있어 준비 시간이 0이 된다. 대신 처음의 문제로 돌아간다. 압력이 높으면 옷이 굽지 않는다.
결국 우주복의 압력은 하나의 정답을 찾은 숫자가 아니다. 관절을 굽힐 수 있어야 하고, 기포가 생기지 않아야 하고, 불이 붙지 않아야 하는 세 요구가 서로를 밀어내는 자리에서 잠정적으로 합의된 값이다. 4.3이라는 숫자는 그 줄다리기가 지금 멈춰 서 있는 지점을 가리킨다.
그래서 25일 밤 중계를 켰을 때 두 사람이 이미 우주복을 입고 대기하는 장면이 나오더라도, 그 앞에 무엇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작업의 시작이 아니라, 몇 시간에 걸친 준비가 끝난 뒤의 장면이다. 문 하나를 여는 데 들어간 시간의 대부분은 그 문 안쪽에서 흘렀다.
본문의 모든 수치는 위 자료에서 가져왔다. 프리브리드 소요 시간은 자료마다 세는 구간이 달라 3~5시간과 12시간이 함께 쓰이므로 어느 한쪽을 고르지 않고 둘 다 적고 이유를 밝혔다. 8월 25일 선외활동의 시각과 작업 내용은 실시 전 시점의 발표이며 변경될 수 있다. 탐사용 대기 조건의 프리브리드 추정치는 NASA가 검증 전이라고 밝힌 값이다. 이미지 세 점은 이 글을 위해 직접 제작한 도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