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하트'라는 이름을 처음 마주한 건 2015년 여름이었다. 그해 7월, 인터넷에 명왕성 사진 한 장이 퍼졌고, 사람들은 표면 한복판의 밝고 커다란 무늬 하나를 곧바로 알아봤다. 누가 봐도 하트였다. 발견된 지 여든다섯 해가 되도록 흐릿한 점으로만 남아 있던 그 먼 세계가, 처음으로 또렷한 얼굴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그리고 하필 심장 모양의 표식을 단 채였다.

그날 이후 명왕성 하트는 이 별의 상징이 됐다. 다만 이 무늬가 그저 우연한 그림이라고만 여겨졌다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밝은 무늬는 알고 보니 하나의 장소였고, 더 놀랍게도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느리게 살아 움직이는 장소였다. 심장이라는 별명은 붙이고 나서 한참 뒤에야 그 속뜻이 밝혀졌지만, 생각보다 훨씬 정확한 비유였다.

1.하트라는 이름의 장소

이 사진을 지구로 보내온 건 뉴호라이즌스라는 작은 탐사선이다. 2006년 지구를 떠나 9년 반 동안 태양계를 가로질렀고, 2015년 7월 14일 명왕성 곁을 시속 5만 km에 가까운 속도로 스쳐 지났다. 궤도를 맞춰 나란히 도는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몇 시간 만에 명왕성의 얼굴을 훑고 지나가는, 단 한 번의 만남이었다. 놀랍게도 우리가 지금 가진 명왕성 표면 사진의 거의 전부가 그 짧은 스침에서 나왔다.

명왕성 하트의 정식 이름은 톰보 지역(Tombaugh Regio)이다. 1930년 명왕성을 처음 찾아낸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를 기린 이름이다. 하트가 유독 밝게 빛나 보이는 건, 갓 내려앉은 신선한 얼음이 햇빛을 잘 되비추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이 하트는 좌우가 똑같지 않다. 두 개의 심방을 붙여 놓은 것처럼, 서쪽 절반과 동쪽 절반의 표정이 사뭇 다르다. 동쪽은 고지대에 서리가 내려앉은 땅이고, 서쪽은 그와 딴판으로 유난히 매끈하고 평평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그 왼쪽 절반에 숨어 있다.

명왕성 전체 원반 사진. 오른쪽 아래에 밝은 하트 모양의 톰보 지역이 보이고, 그 하트의 왼쪽 절반이 스푸트니크 평원이다.
하트는 명왕성 원반의 오른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글이 들여다볼 곳은 그 하트의 왼쪽 절반, 스푸트니크 평원이다.뉴호라이즌스 · NASA/JHUAPL/SwRI · Public Domain

2.왼쪽 절반은 질소로 된 빙하다

하트의 서쪽 절반에는 별도의 이름이 붙어 있다. 스푸트니크 평원(Sputnik Planitia). 폭이 1,000km를 훌쩍 넘는, 한반도를 여러 개 담고도 남을 거대한 얼음 벌판이다. 그런데 이 얼음은 우리가 아는 물얼음이 아니다. 명왕성은 표면 온도가 영하 230도 안팎까지 내려가는 곳이라, 지구에서라면 공기 중에 흩어져 있을 질소가 이곳에서는 꽝꽝 언 고체가 된다. 스푸트니크 평원은 바로 그 질소 얼음이 두껍게 고여 만들어진, 태양계에서 손꼽히게 넓은 빙하다. 게다가 이 벌판은 그냥 평평한 땅이 아니라, 주변 지형보다 몇 km나 아래로 내려앉은 거대한 웅덩이 바닥이다. 아주 먼 옛날 커다란 천체가 부딪혀 파인 자리에 질소 얼음이 오래도록 흘러들어 고인 것으로 짐작된다. 명왕성의 심장은, 말하자면 오래된 상처가 얼음으로 채워진 자리다.

뉴호라이즌스가 이 벌판을 가까이서 들여다봤을 때, 과학자들을 가장 놀라게 한 건 뜻밖에도 '없는 것'이었다. 크레이터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태양계의 오래된 표면은 예외 없이 운석 자국으로 얽어 있다. 밤하늘의 달을 떠올리면 된다. 40억 년 넘게 얻어맞은 흔적이 곰보처럼 촘촘하다. 그런데 스푸트니크 평원은 이상하리만치 말끔했다. 이건 얻어맞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맞은 자국을 끊임없이 지워 왔다는 뜻이었다. 무언가가 이 표면을 계속 새것으로 갈아 치우고 있었다.

3.표면을 뒤덮은 다각형의 수수께끼

말끔하다고 했지만, 아주 가까이 다가가면 스푸트니크 평원에도 희미한 무늬가 드러난다. 벌판 전체가 수많은 다각형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폭이 대략 20~40km, 큰 것은 웬만한 도시를 통째로 덮을 크기다. 마른 논바닥이 갈라진 모양, 혹은 벌집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양을 떠올리면 가깝다. 가장자리를 따라 얕은 골이 파여 있고, 가운데는 몇십 미터쯤 봉긋하게 솟아 있다. 이 미묘한 무늬가 명왕성 하트가 감춰 둔 진짜 수수께끼였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이 거대한 무늬를 벌판에 새긴 걸까.

이 다각형이 대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두고, 2015년 이후 여러 연구팀이 매달렸다. 그리고 2016년, 두 팀이 나란히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학술지 네이처의 같은 호에 실린 매키넌 연구진과 트로우브리지 연구진의 논문이다. 이들이 지목한 원인은 조금 뜻밖의 단어였다. 대류. 냄비 속 물이 끓을 때 뜨거운 물이 올라오고 식은 물이 가라앉으며 만드는, 바로 그 순환이었다. 벌판 가장자리에서는 주변 고지대에서 흘러내린 질소 빙하가 이 얼음판으로 합류하는 모습까지 함께 포착됐다. 무늬 하나하나가, 이 땅이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던 것이다.

4.심장은 정말로 뛰고 있었다

대류라는 말이 낯설다면, 부엌의 죽 냄비를 떠올리면 쉽다. 약한 불에 오래 끓인 죽은 표면이 여러 개의 덩어리로 나뉘어 천천히 부글거린다. 가운데에서 뜨거운 것이 밀려 올라오고, 가장자리에서 식은 것이 아래로 말려 든다. 스푸트니크 평원에서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이것이다. 다만 냄비 속 물 대신 두께 수 km의 고체 질소 얼음이, 아궁이의 불 대신 명왕성 내부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열을 받아 아주아주 느리게 뒤집힌다. 그 열의 정체는 명왕성 깊은 곳 암석에 든 방사성 원소가 오랜 세월 천천히 붕괴하며 내놓는 온기로 여겨진다. 얼핏 얼음이 어떻게 흐르나 싶지만, 질소 얼음은 물얼음보다 훨씬 무르고 잘 뭉개지는 물질이라, 충분히 두껍게 쌓이기만 하면 엿가락처럼 서서히 흐르고 뒤집힐 수 있다.

얼마나 느린가 하면, 얼음이 움직이는 속도가 1년에 겨우 몇 cm다. 우리 손톱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하다. 그렇게 굼뜨게 순환하면서도, 이 얼음판은 대략 50만 년에 한 번씩 표면을 통째로 새것으로 갈아 치운다. 오래된 얼음은 가장자리에서 아래로 가라앉고, 밑에 있던 얼음이 가운데로 솟아 새 표면이 된다. 크레이터가 남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 있었다. 자국이 파일 만하면 얼음이 천천히 삼켜 버리는 것이다. NASA는 이 광경을 '우주의 라바 램프'라고 불렀다. 안에서 데워진 덩어리가 끝없이 올라왔다 내려가는, 그 느리고 나른한 순환에 딱 맞는 이름이다.

명왕성의 심장은 어떻게 뒤집히는가 — 질소 얼음의 대류 따뜻한 얼음 솟아오름 식어서 가라앉음 ← 다각형 세포 한 칸: 폭 약 20~40km · 가운데가 몇십 m 솟음 → 질소 얼음 · 두께 수 km 명왕성 내부에서 올라오는 열 표면 이동 속도: 1년에 몇 cm · 약 50만 년마다 표면 전체가 갈림
명왕성의 심장은 냄비 속 죽처럼 뒤집힌다. 세포 가운데에서 데워진 질소 얼음이 솟아오르고, 가장자리에서 식은 얼음이 가라앉는다. 이 느린 순환이 표면을 끊임없이 새로 만든다.도식 · 경이의목록 (개념도, 매키넌·트로우브리지 2016 기반)

5.태양계에서 가장 젊은 얼굴

크레이터가 없다는 사실 하나가 뜻밖에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천문학자들은 표면에 난 크레이터의 수를 세어 그 땅의 나이를 가늠한다. 오래 드러나 있던 땅일수록 그만큼 더 많이 얻어맞았을 테니까. 그런데 스푸트니크 평원에는 셀 크레이터 자체가 없다. 이는 이 표면이 길게 잡아도 1,000만 년, 대류하는 세포들만 놓고 보면 100만 년도 채 안 된 젊은 얼굴이라는 뜻이다. 46억 년 나이의 태양계에서 100만 년이라면, 여든 살 노인의 몸에 어제 돋은 새살과 같다. 이 사실이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 데는 까닭이 있다. 명왕성처럼 작은 천체는 몸집에 견줘 열을 금세 잃어, 진작 속까지 얼어붙은 죽은 세계여야 마땅했다. 지구가 지금도 지질학적으로 살아 있는 건 덩치가 커서 안쪽 열을 오래 붙들고 있기 때문인데, 지구의 다섯 분의 일도 안 되는 이 작은 별이 여태 표면을 새로 갈아 치우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넉넉히 기대하지 못했다.

물론 이 나이는 자로 잰 값이 아니다. 여기서 관측과 해석을 갈라 둘 필요가 있다. '크레이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진으로 확인한 관측이지만, '그러니 표면이 몇백만 년밖에 안 됐다'는 것은 거기서 끌어낸 해석이다. 대류라는 설명도 마찬가지다. 두 연구팀이 강하게 지지했고 지금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우리가 얼음이 뒤집히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다. 단 몇 시간의 스침으로 얻은 사진에서 모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다. 실제로 이후의 연구들은 그 대류가 정확히 어떤 힘으로 구동되는지를 두고 여전히 조금씩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태양계에서 가장 젊은 얼굴 태양계의 나이 46억 년 vs 스푸트니크 평원의 표면 < 100만 년 태양계 나이의 약 4천 분의 1보다 짧다 — 크레이터가 하나도 남지 못할 만큼 끊임없이 새로 태어난다.
크레이터가 없다는 건, 표면이 끊임없이 새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46억 년 된 태양계에서, 명왕성 하트의 얼음판은 100만 년도 안 된 갓 태어난 얼굴을 하고 있다.도식 · 경이의목록 (개념도) · 근거: 크레이터 부재 관측(뉴호라이즌스)

죽은 돌덩이인 줄 알았던 세계가, 알고 보니 태양계에서 가장 젊고 부지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6.이름표가 맞았다

그러니 명왕성 하트라는 별명은, 붙이고 보니 우연이 아니었다. 그 무늬는 심장처럼 생겼을 뿐 아니라, 심장처럼 움직인다. 우리 가슴속 심장이 1초에 한 번 뛴다면, 명왕성의 심장은 대략 50만 년에 한 번 크게 숨을 고른다. 박동의 속도가 다를 뿐, 둘 다 안에서부터 데워져 쉼 없이 도는 살아 있는 것이다. 강등당한 뒤 오랫동안 차갑게 식은 돌덩이 취급을 받던 세계가, 실은 태양계에서 가장 생생하게 뛰는 심장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오늘 밤 당신이 가슴에 손을 얹고 제 심장의 박동을 느낀다면, 65억 km 밖의 또 다른 심장을 잠깐 떠올려 봐도 좋겠다. 너무 느려서 사람의 한 생애로는 단 한 번의 박동조차 볼 수 없지만, 명왕성이 태어난 이래 단 한순간도 멈춘 적 없는 심장이다. 우리가 그 먼 점을 자꾸 하트라 부르며 마음에서 놓지 못하는 건, 어쩌면 그 안에서 우리 것과 닮은 무언가가 여태 조용히 뛰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 밤 당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면, 당신은 이미 그 먼 세계의 심장과 같은 박자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한 자료

· McKinnon 외, Nature 534, 82–85 (2016) — 질소 얼음층의 대류가 명왕성의 지질 활동을 이끈다

· Trowbridge 외, Nature 534, 79–81 (2016) — 다각형 지형의 원인으로서의 활발한 대류

· NASA/JPL, Pluto's Heart: Like a Cosmic 'Lava Lamp' (2016) — 약 50만 년 표면 갱신·라바 램프 비유

· NASA, 뉴호라이즌스 5주년: 명왕성에 관한 10가지 (2020)

· Stern 외, Science 350, aad1815 (2015) — 뉴호라이즌스 명왕성계 첫 결과

· 표면 나이 < 1,000만 년 관련: Sputnik Planum 크레이터 부재 분석(arXiv 1601.02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