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에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잠깐 무슨 농담인가 싶었다. 태양에서 60억 km 가까이 떨어져 표면이 영하 230도까지 얼어붙는 그 작은 얼음덩어리에 물이라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근사한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명왕성의 심장이 놓인 '자리'에서 시작됐다. 뉴호라이즌스가 명왕성의 얼굴을 처음 담아 온 2015년 여름 이후로, 과학자들은 그 하트가 하필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먼저 솔직히 털어놓고 시작하자. 우리는 아직 명왕성의 바다를 여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그 얼음 밑에 액체가 고여 있으리라 여긴다. 본 적도 없는 바다를, 대체 무엇을 근거로 있다고 말하는 걸까. 놀랍게도 그 단서는 명왕성의 심장이 기울어 앉은 각도 하나에 숨어 있었다.
1.심장은 왜 하필 그 자리에 있나
명왕성 하트의 왼쪽 절반에는 스푸트니크 평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폭이 1,000km를 넘는 거대한 질소 얼음 벌판이다. 그런데 뉴호라이즌스가 이 벌판의 위치를 정밀하게 짚어 보고 나서, 한 가지가 묘하게 걸렸다. 스푸트니크 평원이, 명왕성에서 카론을 정면으로 등진 자리에 거의 정확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명왕성과 그 큰 위성 카론은 서로 같은 얼굴을 맞댄 채 도는 사이라, 둘을 잇는 보이지 않는 축이 하나 있다. 하트는 그 축의 반대쪽 끝에서 겨우 20도 남짓 벗어난 지점에 자리 잡고 있었다. 넓은 명왕성 표면에서 하필 그 각도라니, 우연이라기엔 지나치게 얌전했다.
이게 왜 이상한지는 팽이에 껌 한 덩이를 붙여 돌려 보면 감이 온다. 회전하는 천체에 유독 무거운 덩어리가 하나 얹히면, 그 별은 아주 느리게 몸을 굴려 결국 그 덩어리를 특정한 축 위로 옮겨 놓는다. 지구과학에서 진극배회라 부르는 현상이다. 그러니 스푸트니크 평원이 하필 카론과 이어진 그 축 위에 놓였다는 건, 이 벌판이 명왕성에서 유난히 무거운 자리라는 뜻이 됐다. 굴러가다 아무 데나 멈춘 게 아니었다. 무게가 끌어다 앉힌 자리였다.
2.구멍인데 어째서 무거운가
여기서부터가 묘하다. 스푸트니크 평원은 묵직한 혹이 아니라, 주변보다 몇 km나 푹 꺼진 거대한 웅덩이다. 아주 먼 옛날 커다란 천체가 부딪혀 파인 충돌 자국으로 짐작되는, 말 그대로 땅에 뚫린 구멍이다. 상식대로라면 구멍은 그 자리의 흙과 돌이 파여 나간 곳이니, 되레 주변보다 가벼워야 옳다. 그런데 앞선 이야기는 이 자리가 무겁다고 말하고 있었다. 파여서 가벼워야 할 곳이, 별을 통째로 굴려 앉힐 만큼 무거웠던 것이다.
바로 이 어긋남이 2016년 명왕성 연구자들을 붙들었다. 구멍이 무게를 가지려면, 그 밑 어딘가에 파여 나간 것보다 더 무거운 무언가가 채워져 있어야 한다. 표면에서는 분명 움푹 꺼졌는데, 그 아래에는 도리어 여분의 무게가 숨어 있어야 앞뒤가 맞았다. 얼음별의 껍질 밑에 대체 무엇이 들어앉아, 뚫린 자리를 이토록 묵직하게 만든 걸까. 답을 찾으려면 시선을 표면에서 떼어 껍질 아래로 내려보내야 했다.
3.얼음 밑의 바다라는 대답
프랜시스 니모 연구진이 학술지 네이처에 내놓은 대답은 액체 바다였다. 논리는 이렇게 이어진다. 먼 옛날 큰 충돌이 이 웅덩이를 팠고, 그 부딪힌 여파로 그 자리 얼음 껍질이 얇아졌다. 만약 명왕성 얼음 껍질 밑에 물로 된 바다가 있다면, 껍질이 얇아진 자리에서는 무거운 바닷물이 위로 밀려 올라와 그 빈틈을 메운다. 물은 얼음보다 밀도가 높다. 그러니 껍질이 얇아진 만큼 무거운 물이 더 높이 차오른 자리가 되고, 파여서 가벼워진 몫을 밑에서 밀려 올라온 바다가 되갚고도 남는다. 여기에 질소 서리가 얇게 내려앉으면, 그 구멍은 마침내 묵직한 자리로 완성된다.
바다 없이 이 무게를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니모 연구진의 계산으로는, 그 경우 구멍을 질소 얼음으로 40km 넘게 두껍게 쌓아 올려야 했다. 태양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억지스러운 두께다. 그러니 얼음 밑 바다라는 그림이 훨씬 군더더기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못 박아 두자. 이건 관측이 아니라 관측을 설명하려고 세운 모형이다. 연구진은 바다를 목격한 게 아니라, 무거운 구멍을 가장 매끄럽게 설명하는 그림으로 바다를 불러온 것이었다.
4.갈라진 표면이 건넨 두 번째 단서
흥미롭게도 같은 호의 네이처에는, 이 그림을 다른 방향에서 받쳐 주는 논문이 나란히 실렸다. 제임스 킨 연구진의 계산이다. 이들은 스푸트니크 평원에 질소 얼음이 쌓여 무거워지는 것만으로도 명왕성이 60도가량 몸을 틀어, 이 벌판을 지금 자리로 옮겨 올 수 있음을 보였다. 앞서 말한 진극배회가 정말 일어날 만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에는 반전이 하나 더 있었다. 얼음 밑 바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얼어붙는다면, 물이 얼음으로 굳을 때 부피가 불어나므로 명왕성 전체가 아주 미세하게 부푼다는 것이다.
별이 부풀면 겉껍질은 팽팽해지다 못해 갈라진다. 마른 흙바닥이 부풀어 터지듯, 표면 곳곳에 길게 벌어진 균열이 남는다. 그리고 뉴호라이즌스는 명왕성 표면에서 바로 그런 균열의 그물을, 여러 갈래로 뻗은 단층을 실제로 찍어 왔다. 심장이 앉은 자리가 첫 단서였다면, 갈라진 표면은 그와 따로 노는 두 번째 단서였던 셈이다. 서로 무관한 두 증거가 같은 곳을 가리킬 때, 과학자들은 비로소 그 그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바다라는 가설이 그렇게 조금씩 무게를 얻어 갔다.
5.바다의 몸값 — 두께와 소금기
바다가 있다고 치면, 그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2024년 알렉스 응우옌과 패트릭 맥거번은 표면의 균열과 부풀어 오른 자국을 거꾸로 되짚어, 얼음 껍질과 바다의 성질을 가늠했다. 이들의 모형에서 스푸트니크 평원의 물얼음 껍질은 두께가 대략 40에서 80km에 이르렀다. 어마어마한 얼음 뚜껑이다. 바로 그 두꺼운 뚜껑이 밑의 바다가 마저 얼어붙지 않도록 온기를 가둬 두는 담요 노릇을 한다. 명왕성처럼 작고 차가운 별이 여태 액체를 붙들고 있으려면, 이런 두툼한 보온막이 있어야만 했다.
바다의 소금기도 짚였다. 이들의 계산으로 명왕성 바다는 지구 바닷물보다 많아야 8%쯤 밀도가 높다. 미국 그레이트솔트호의 짠물과 비슷한 농도라, 사람이 들어가면 힘 하나 안 들이고 둥둥 뜰 정도다. 이 짠 성분과 암모니아 같은 물질이 부동액 노릇을 해, 그 지독한 추위에도 물을 얼지 않게 붙든다고 본다. 재미있는 건 이 8%라는 값이 절묘하다는 데 있었다. 바다가 이보다 묽으면 얼음 껍질이 더 많이 무너져 균열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야 하고, 더 짜면 균열이 되레 모자라야 한다. 실제 표면에 새겨진 균열의 양에 딱 들어맞는 농도가 하필 그 언저리였다.
얼음 뚜껑 40km 아래, 바닷물보다 조금 더 짠 물이 얼지 않은 채 고여 있을지 모른다.
6.그래도 우리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여기서 한 걸음 물러나, 무엇이 관측이고 무엇이 해석인지 갈라 두자. 뉴호라이즌스가 실제로 본 것은 스푸트니크 평원의 위치였다. 움푹 꺼진 웅덩이 모양이었고, 표면을 가른 균열의 그물이었다. 여기까지는 사진에 또렷이 찍힌 관측이다. 반면 그 아래 바다는 아무도 본 적이 없다. 뉴호라이즌스는 몇 시간 만에 명왕성을 스쳐 지난 탐사선이라, 궤도를 돌며 중력을 촘촘히 잰 적도 없고 수십 km 얼음 밑 액체를 직접 감지할 장비를 싣지도 않았다. 바다는 찍힌 게 아니었다. 여러 단서를 이어 붙여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그림이다.
그래서 이 그림에 반론이 없는 것도 아니다. 2024년 해리 밸런타인 연구진은 네이처 천문학에 사뭇 다른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지름 700km가 넘는 바위-얼음 천체가 느린 속도로 명왕성에 박히면, 그 무거운 바위 핵이 껍질을 뚫고 들어가 그 자리에 묵직한 덩어리로 눌러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묻힌 바위만으로도 '무거운 구멍'이 설명된다면, 지금 이 순간 액체 바다가 없어도 그만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논쟁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좋은 과학은 두 가능성을 성급히 하나로 지우는 대신, 둘 다 저울에 올려 둔 채 다음 증거를 기다린다.
7.65억 km 밖의 물이라는 것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사람 마음을 오래 붙드는 데는 까닭이 있다. 만약 그 바다가 정말 있다면, 거기엔 액체 물이 있고 그 밑에 암석이 있으며 그 곁에 수십억 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 된다. 생명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조건들이다. 물론 명왕성 바다에서 생명의 낌새가 잡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 깊고 어두운 곳에 생명을 밀어 올릴 만한 에너지가 있을지조차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여기서 함부로 생명을 입에 올려선 안 된다. 다만 우리가 아는 한, 그 바다는 인류가 알아낸 가장 먼 곳의 물일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이 컵에 물을 한 잔 받아 든다면, 그 투명한 액체가 65억 km 밖 얼음 뚜껑 아래에도 똑같이 고여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상상을 잠깐 해 보면 어떨까. 우리는 그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앞으로 한참을 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자꾸 그 먼 점을 들여다보는 건, 파여서 가벼워야 할 구멍 하나가 이상하게 무겁더라는 사소한 어긋남 때문이다. 그 작은 어긋남이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끝내 궁금하게 만들었다. 확신 때문이 아니라 궁금함 때문에 계속 바라보는 그 마음이, 어쩌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일 것이다.
참고한 자료
· Nimmo 외, Nature 540, 94–96 (2016) — 스푸트니크 평원의 재정렬은 명왕성의 지하 바다를 암시한다
· Keane 외, Nature 540, 90–93 (2016) — 스푸트니크 평원의 휘발성 물질 적재에 따른 명왕성의 재정렬과 단층 (약 60° 진극배회)
· Nguyen & McGovern, Icarus 412, 115968 (2024) — 스푸트니크 평원의 질소 얼음을 지탱하는 명왕성 바다의 염도 (얼음 껍질 40~80km · 바닷물보다 ~8% 높은 밀도)
· Ballantyne 외, Nature Astronomy (2024) — 바다 없는 명왕성의 오래된 바위 질량집중을 시사하는 충돌체 잔해로서의 스푸트니크 평원 (바다 없는 대안 가설)
· NASA, 뉴호라이즌스 — 2015년 7월 14일 명왕성 최근접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