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밤하늘에서 새 천체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지루하다. 1930년 초, 미국 애리조나의 한 천문대에서 스물세 살 청년이 날마다 하던 일도 그랬다. 며칠 간격으로 같은 밤하늘을 찍은 유리 사진판 두 장을 기계에 걸고, 손잡이를 돌려 두 장면을 번갈아 깜빡깜빡 비춰 보는 것. 수만 개의 별이 촘촘히 박힌 두 사진 사이에서, 자리를 옮긴 점 하나를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2월의 어느 오후, 정말로 한 점이 폴짝 뛰었다.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 명왕성 발견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묘한 반전이 숨어 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성은, 실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명왕성 발견은 흔히 한 청년의 끈기 있는 승리로 이야기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승리의 밑그림을 그린 것은, 정작 명왕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한 부자 천문가의 오래된 집착이었다. 그리고 그 집착이 딛고 선 계산은, 반세기가 지나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관측으로 확정된 사실과 뒷날 뒤집힌 해석을 갈라 가며, 아홉 번째 행성이 세상에 나온 과정을 차분히 따라가 본다.

1.로웰의 '행성 X' — 보이지 않는 행성을 계산하다

명왕성 발견은 '행성 X'를 쫓는 데서 시작됐다. 퍼시벌 로웰은 해왕성 바깥에 보이지 않는 행성이 있어 천왕성의 궤도를 어긋나게 한다고 믿고, 1905년 무렵부터 그것을 찾아 나섰다.

이야기의 뿌리에는 앞선 성공 하나가 있다. 1846년, 천문학자들은 천왕성이 예상 궤도에서 자꾸 벗어나는 것을 보고, 그 어긋남을 만들어 낼 미지의 행성을 종이 위에서 먼저 계산해 냈다. 그리고 계산이 짚어 준 하늘을 실제로 겨눠, 그 자리에서 해왕성을 찾아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수학으로 먼저 붙잡은 이 사건은, 이후 천문학자들에게 강렬한 본보기로 남았다. 어긋남이 있으면, 그 뒤에 또 다른 숨은 행성이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기대였다.

미국의 부유한 천문가 퍼시벌 로웰도 그 기대를 물려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여긴 자잘한 어긋남을, 해왕성 너머의 또 다른 행성이 끌어당긴 흔적으로 읽었다. 그는 이 미지의 천체를 그저 '행성 X'라 불렀다. 로웰은 직접 세운 애리조나 플래그스태프의 천문대에서, 지구의 몇 배쯤 되는 — 해왕성의 절반 남짓한 — 질량을 가진 이 행성이 있을 법한 하늘을 계산하고 사진으로 훑기 시작했다. 그러나 끝내 그것을 찾지 못한 채, 1916년 세상을 떠났다. 행성 X는 여전히 종이 위의 숫자로만 존재했다.

2.캔자스 농장 소년, 톰보

로웰이 남긴 수색을 이어받은 이는, 정식 천문학 학위가 없던 캔자스의 농장 청년 클라이드 톰보였다.

톰보는 1906년 일리노이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에 가족을 따라 캔자스의 농장으로 옮겨 갔다. 대학에 갈 형편은 되지 못했다. 우박이 밭을 쓸어 버려 학비를 마련할 길이 막힌 탓이었다. 그래도 밤하늘을 향한 마음은 접히지 않아서, 그는 손수 망원경을 깎아 만들어 목성과 화성을 관찰하고 그 스케치를 로웰 천문대에 부쳤다. 그림을 눈여겨본 천문대는 뜻밖의 답장을 보냈다. 일자리 제안이었다. 그렇게 1929년, 스물두 살의 농장 청년은 애리조나로 건너가 행성 X를 찾는 고된 임무를 맡게 됐다. 대학 문턱도 밟지 못한 사람에게, 세상이 반세기 넘게 찾아 헤맨 행성의 수색이 통째로 맡겨진 셈이다.

그에게 주어진 도구는 13인치, 그러니까 약 33센티미터 구경의 사진 망원경이었다. 톰보는 이 망원경으로 같은 밤하늘의 좁은 구역을 며칠 간격으로 두 번씩 찍었다. 사진판 한 장에는 많게는 수십만 개의 별이 촘촘히 박혔다. 그 수많은 점 가운데 행성 하나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었을까? 이 방대한 점들을 맨눈으로 하나하나 견주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었다. 하늘은 넓었고, 판은 자꾸 쌓였다. 별들 사이에 섞여 아주 조금씩 자리를 옮기는 천체 하나를 찾으려면, 사람의 끈기만으로는 모자랐고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3.깜빡이 비교기 — 두 사진 사이에서 뛴 점

1930년 2월 18일, 톰보는 1월 23일과 29일에 찍은 두 사진판을 '깜빡이 비교기'로 견주다 자리를 옮긴 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가 쓴 방법의 열쇠는 '깜빡이 비교기'라는 장치였다. 같은 하늘을 며칠 간격으로 찍은 두 사진판을 나란히 걸고, 빛을 번갈아 비춰 두 장면을 빠르게 오가게 하는 기계다. 원리는 단순하다. 아득히 먼 별들은 며칠 사이에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 둘레를 도는 행성은 그 며칠 동안에도 별들을 배경으로 조금씩 옮겨 간다. 그래서 두 장면을 깜빡깜빡 번갈아 보면, 다른 점은 모두 붙박인 채 오직 행성만이 제자리에서 폴짝 뛰는 것처럼 보인다.

1930년 2월 18일 오후, 톰보의 눈앞에서 정말로 한 점이 뛰었다. 1월 23일과 29일에 찍힌 두 판, 그 엿새 사이에 자리를 살짝 옮긴 희미한 점이었다. 그는 곧바로 흥분하지 않고, 다른 판들을 더 꺼내 같은 점의 움직임을 거듭 확인했다. 움직임의 폭과 방향은 해왕성 너머를 도는 천체와 들어맞았다. 별처럼 보이던 한 점이, 실은 태양계의 새 식구였던 것이다. 명왕성 발견은 이렇게, 거대한 망원경의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두 사진을 끈질기게 깜빡인 끝에 찾아왔다.

별은 그대로, 한 점만 자리를 옮긴다 1월 23일 1월 29일 배경의 별들은 붙박여 있다 노란 점만 엿새 사이 이동 모식도 · 별·명왕성의 위치와 이동폭은 이해를 위해 과장 · 원리: 깜빡이 비교기(blink comparator)
두 장면을 번갈아 비추면 붙박인 별들 속에서 명왕성만이 폴짝 뛴다. 톰보가 쓴 깜빡이 비교기의 원리로, 며칠 간격으로 찍은 두 사진판의 차이가 곧 움직이는 천체의 신호가 된다.도식 · 경이의목록 (개념도) · 원리 근거: Lowell Observatory / New Horizons 자료

4.3월 13일의 발표, 그리고 'PL'

로웰 천문대는 1930년 3월 13일에 발견을 공식 발표했다. 이 날짜는 로웰을 기려 일부러 고른 것이었다.

발견을 손에 쥔 뒤에도 천문대는 곧장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여러 판으로 움직임을 거듭 확인하고, 발표할 날을 골랐다. 그렇게 정해진 날이 1930년 3월 13일이다. 이 날짜에는 두 겹의 뜻이 담겼다. 하나는 1781년 이날 윌리엄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날이 바로 퍼시벌 로웰의 생일이라는 것이다. 새 행성을 세상에 알리는 날을, 이 수색의 밑그림을 그린 사람에게 바친 셈이다. 로웰은 그 발표를 보지 못했지만, 천문대는 그의 이름을 발견의 한복판에 놓았다.

이 헌사는 이름에도 남았다. 새 행성의 이름은 영국 옥스퍼드의 열한 살 소녀 베네티아 버니가 제안한 '플루토(Pluto)', 곧 로마 신화 명계의 신에서 왔다. 그런데 이 이름의 첫 두 글자 'PL'을 겹쳐 만든 기호가 명왕성의 천문 기호가 됐고, 이 두 글자는 마침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의 이니셜과도 같았다. 우연이라기엔 절묘한 이 겹침 덕에, 명왕성은 이름 속에 조용히 로웰을 품게 됐다. 소녀가 붙인 이름과 그 뒤에 얽힌 사연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이야기라, 여기서는 이쯤에서 접어 둔다.

5.뒤집힌 계산 — 명왕성은 '우연히' 거기 있었다

그런데 정작 로웰이 근거로 삼은 궤도의 이상은, 뒷날 잘못된 계산으로 드러났다. 명왕성은 그가 상상한 큰 행성이 되기엔 너무 작았다.

처음 명왕성은 로웰이 예언한 바로 그 행성 X로 환영받았다. 예측했던 하늘 근처에서 실제로 천체가 나왔으니, 완벽한 승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천체는 로웰이 그린 큰 행성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밝기는 자꾸 흐려지고, 크기 추정치는 계속 쪼그라들었다. 결정타는 1978년에 왔다. 명왕성의 위성 카론이 발견되면서, 두 천체가 서로 도는 방식으로부터 명왕성의 질량을 처음으로 제대로 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온 값은 지구의 약 5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로웰이 상상한, 지구의 몇 배나 되는 행성과는 견줄 수조차 없이 가벼웠다. 이렇게 작은 천체가 천왕성의 궤도를 눈에 띄게 흔든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로웰이 쫓던 그 어긋남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답은 허탈하게도, 어긋남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천문학자 스탠디시는 1993년, 천왕성 궤도에 남는다던 이상이 실은 해왕성의 질량을 약 0.5퍼센트쯤 크게 잡은 데서 생긴 허깨비였음을 보였다. 그 값은 1989년 보이저 2호가 해왕성을 스쳐 지나며 정밀하게 다시 잰 것이었다. 바로잡은 질량을 넣자, 로웰이 근거로 삼았던 궤도의 어긋남은 거의 말끔히 사라졌다. 다시 말해, 찾아야 할 행성 X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런 천체가 있어야 할 물리적 이유가 없었던 자리에, 명왕성이 그저 우연히 놓여 있었을 뿐이다. 틀린 계산이 엉뚱한 하늘을 가리켰고, 그 하늘에 마침 진짜 천체가 있었다.

로웰이 찾던 것과, 실제로 찾은 것 로웰의 예측 · 행성 X 지구의 약 7배 질량 (해왕성의 절반 남짓) 실제 · 명왕성 지구의 약 1/500 미만 질량 궤도를 흔들기엔 너무 가볍다 모식도 · 두 원의 넓이는 질량비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음(작은 쪽을 보이게 과장) · 근거: 카론 발견(1978) 이후 명왕성 질량 · Standish 1993
로웰은 지구의 몇 배짜리 행성을 찾고 있었지만, 명왕성은 지구의 5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만큼 가벼운 천체가 천왕성의 궤도를 흔들 수는 없다. 예측과 실제 사이의 이 아득한 간극이, 명왕성이 행성 X가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도식 · 경이의목록 (개념도) · 근거: 명왕성 질량(카론 발견 이후) · Standish, AJ 105, 2000 (1993)

틀린 계산이 엉뚱한 하늘을 가리켰고, 그 하늘에 마침 진짜 천체가 있었다.

6.없는 것을 쫓다 만난, 진짜

정리하면 이렇다. 명왕성 발견을 이끈 계산은 틀렸고, 찾으려던 행성 X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 잘못된 지도를 들고 성실히 하늘을 훑은 끝에, 톰보는 태양계의 진짜 아홉 번째 식구를 붙잡았다. 발견의 동기는 허물어졌지만, 발견된 천체만은 조금도 가짜가 아니었다. 얼음으로 뒤덮인 이 먼 세계는 훗날 뉴호라이즌스가 다가가 심장 모양의 얼음 평원과 지하 바다의 가능성을 보여 줄 때까지, 여든다섯 해 넘게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과학은 이렇게, 틀린 이유로 시작한 일에서도 참된 것을 건져 올리곤 한다.

가만 생각하면 이 이야기가 아주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우리 역시 더러 잘못된 짐작을 품고 무언가를 향해 걸음을 뗀다. 이유가 틀렸다는 걸 뒤늦게 알고 멋쩍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성실한 걸음이 우리를 애초 상상하지 못한 자리에 데려다 놓곤 한다. 톰보가 없는 행성을 쫓다 진짜 행성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오늘 당신이 딛는 걸음의 이유가 조금 어긋나 있더라도, 우리는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좋겠다. 성실히 내디딘 그 걸음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지는, 지금 여기서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찾으려던 것과 다른, 그러나 분명히 진짜인 무언가를 그 끝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명왕성은 누가, 언제 발견했나요?

1930년 2월 18일, 미국 애리조나 로웰 천문대의 클라이드 톰보가 발견했다. 그는 정식 천문학 학위가 없던 캔자스 농장 출신 청년으로, 1929년 로웰 천문대에 고용돼 '행성 X'를 찾는 사진 수색을 맡았다. 로웰 천문대는 1930년 3월 13일에 공식 발표했다.

'행성 X'가 무엇인가요?

퍼시벌 로웰이 해왕성 바깥에 있다고 믿은 미지의 행성이다. 그는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에 남는 어긋남(잔차)을, 보이지 않는 행성의 중력으로 설명하려 했다. 1905년 무렵부터 그 위치를 계산하고 사진으로 수색했으며, 지구의 몇 배 정도 되는 질량(해왕성의 절반 남짓)으로 예측했다.

톰보는 어떻게 명왕성을 찾아냈나요?

13인치(약 33cm) 사진 망원경으로 같은 밤하늘을 며칠 간격으로 찍은 뒤, '깜빡이 비교기'라는 장치로 두 사진판을 번갈아 비춰 봤다. 별은 제자리에 있지만 행성은 자리를 옮기므로, 깜빡일 때 폴짝 뛰는 점이 보인다. 톰보는 1월 23일과 29일에 찍은 두 판에서 그런 점을 찾아냈다.

명왕성은 정말 로웰이 예측한 행성이었나요?

아니다. 명왕성은 로웰이 상상한 큰 행성이 되기엔 너무 작고 가볍다. 1978년 위성 카론이 발견되며 명왕성 질량이 지구의 약 5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 확인됐다. 게다가 로웰이 근거로 삼은 궤도의 이상 자체가, 스탠디시가 1993년에 보인 것처럼 해왕성 질량을 약 0.5% 크게 잡은 오차였다. 보이저 2호가 1989년에 잰 값으로 바로잡자 그 어긋남은 거의 사라졌다.

명왕성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었나요?

1930년, 영국 옥스퍼드의 열한 살 소녀 베네티아 버니가 로마 명계의 신 '플루토(Pluto)'를 제안해 채택됐다. 이 이름의 첫 두 글자 'PL'은 명왕성의 천문 기호가 됐는데, 마침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의 이니셜과도 같다.

참고한 자료

· Lowell Observatory — 명왕성의 발견 (톰보 고용·13인치 사진 망원경·깜빡이 비교기·발견 사진판)

· American Physical Society, APS News (2009) — 1930년 3월 13일, 톰보의 명왕성 발견 발표 (발견일·발표일·허셜/로웰 날짜의 뜻)

· Britannica — 클라이드 톰보 (생애·수색 임무·발견 경위)

· The Planetary Society — 명왕성 발견사 (3): 행성 X (로웰의 예측 질량·수색·행성 X 개념)

· Standish, E. M., The Astronomical Journal 105, 2000–2006 (1993) — Planet X: 갱신된 천체력에 비춘 유효성 없음 (해왕성 질량 보정·천왕성 궤도 잔차 소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