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립소가 준 항해 지침은 한 문장이었다. 곰자리를 왼쪽에 두라는 그 말 안에, 3천 년 전 사람이 바다에서 쓸 수 있었던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세 줄 요약
① 오디세이아 5권의 항해 지침은 지지 않는 별무리를 왼쪽에 고정하는 방법이고, 그 결과 뱃머리는 동쪽을 향한다.
② 한 문장 안에 방향을 주는 곰자리, 밤의 경과를 알리는 목동자리, 계절을 알리는 플레이아데스가 함께 들어 있다.
③ 이 방법은 방향만 준다. 위치를 재는 기법은 3천 년 뒤에야 나왔고,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날수를 세었다.
바다 한가운데는 표지가 없다. 파도는 어제와 같고 물빛도 어제와 같다. 뭍이 보이지 않는 순간부터 방향이라는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개념이 된다. 그런 곳에서 뗏목 한 척으로 열이레를 나아간 사람의 이야기가 오디세이아 5권에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영웅적으로 버텼다는 데 있지 않다. 호메로스는 그가 무엇을 보며 키를 잡았는지 별 이름까지 적어두었다. 신화의 한복판에 실제 항법이 끼어 있는 셈이다.
그 문장을 천문학 쪽에서 다시 읽으면 시가 아닌 지침으로 읽힌다. 그리고 지침으로 읽는 순간, 그 방법이 무엇을 해줄 수 있고 무엇을 해줄 수 없는지가 드러난다.
오디세이아 5권 271~277행에 세 이름이 나온다. 플레이아데스, 늦게 지는 목동자리, 그리고 사람들이 수레라고도 부르는 곰자리다. 호메로스는 곰자리를 두고 오리온을 바라보며 제자리를 돌 뿐 대양의 물에 몸을 담그지 않는 유일한 별이라고 적었다.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에게 일러둔 것은 그 별을 왼쪽에 두고 바다를 건너라는 것이었다. (Homer, Odyssey 5.271–277, A. T. Murray 역)
앞뒤 상황부터 짚어두자.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서 나무 스무 그루를 베어 뗏목을 만든다. 나흘 만에 일이 끝나고, 닷새째 되는 날 칼립소가 순한 바람과 함께 그를 떠나보낸다.
잠은 그의 눈꺼풀에 내려앉지 않았다. 그는 플레이아데스를 바라보았고, 늦게 지는 목동자리를 바라보았고, 수레라 불리는 곰자리를 바라보았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볼 것은 그가 잠들지 않았다는 서술이다. 표지를 놓치면 방향을 잃기 때문이다. 키를 쥔 사람에게 별은 감상의 대상이 아닌, 계속 확인해야 하는 계기판이었다.
큰곰자리가 북쪽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북쪽이 배의 왼편에 놓이면 뱃머리는 자동으로 동쪽을 향한다. 오디세우스가 떠난 오기기아는 이타카보다 서쪽에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므로, 동쪽으로 가는 것이 귀향 방향과 맞아떨어진다. 이언 리드패스도 오디세우스가 동쪽으로 항해하며 큰곰자리를 왼쪽에 두었다고 정리한다. (Ian Ridpath, Star Tales — Ursa Major · Vanin 2022)
이 방법의 좋은 점은 계산이 필요 없다는 데 있다. 각도를 재지 않아도 되고, 시계를 볼 필요도 없다. 왼쪽을 한 번 보고 키를 조금 트는 동작을 밤새 반복하면 침로가 유지된다.
배가 흔들려도, 바람이 방향을 바꿔도, 파도가 뱃머리를 돌려놓아도 하늘의 그 자리는 그대로다. 육지의 표지물과 달리 별은 뒤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구 자전축은 약 2만 6천 년을 주기로 팽이처럼 흔들린다. 그래서 천구 북극이 가리키는 하늘의 지점이 시대마다 달라진다. 기원전 800년경 폴라리스는 천구 북극에서 약 16도나 떨어져 있어 북극성 노릇을 하지 못했다. 그 시대에 극에 가장 가까운 밝은 별은 작은곰자리의 코카브였고, 그마저 약 6.6도 벗어나 있었다. (J2000 좌표에 IAU 1976 세차 모형을 적용해 직접 계산)
지금 우리는 북쪽을 찾을 때 점 하나를 찾는다. 폴라리스는 천구 북극에서 1도도 떨어져 있지 않아서, 그 별을 보면 곧 북쪽을 본 것이 된다.
호메로스 시대의 하늘에는 그런 점이 없었다. 극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러니 방법을 바꿔야 했다. 점 대신 극 둘레를 도는 별무리 전체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반전이 하나 나온다. 세차운동은 극의 위치만 바꾸지 않는다. 별들의 적위도 함께 바꾼다. 큰곰자리 국자 손잡이 끝 별의 적위는 기원전 800년경 약 +64도였는데, 오늘날에는 약 +49도까지 내려왔다.
북위 38도인 아테네에서 별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려면 적위가 +52도보다 높아야 한다. 계산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호메로스가 지지 않는다고 적은 그 별무리는 그 시대에는 정말로 지지 않았고, 지금은 하루 몇 시간씩 진다.
눈에 잘 띄는 쪽과 정확한 쪽 사이에서 다르게 저울질했기 때문이다. 아라토스는 파이노메나 37~44행에서, 아카이아인은 헬리케로 배를 어디로 몰지 정하고 페니키아인은 키노수라를 믿는다고 적었다. 헬리케는 큰곰자리이고 키노수라는 작은곰자리다. 큰곰자리는 밤이 시작될 때 크게 나타나 밝고 알아보기 쉽지만, 작은곰자리는 작은 대신 모든 별이 더 좁은 원을 그리며 돌아 뱃사람에게 더 낫다는 것이 아라토스의 평가였다. (Aratus, Phaenomena 37–44, G. R. Mair 역)
더 좁은 원을 그린다는 말은 극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극에 가까울수록 그 별이 밤새 움직이는 폭이 작으니, 북쪽을 짚는 오차도 작아진다. 대신 작은곰자리 별들은 어둡다. 흐린 밤이나 달 밝은 밤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아라토스는 그 대가를 치른 쪽이 더 멀리 갔다고 적었다. 시돈 사람들이 가장 곧은 길을 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페니키아인은 연안을 따라 도는 항법에 머물지 않고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직항로를 열었으며, 기원전 1100년경에는 이미 카디스까지 닿았다.
덧붙이자면 최초의 천문학 저술로 알려진 「항해 천문서」는 탈레스에게 돌려진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이야기인데, 탈레스 자신이 페니키아계였다는 기록도 함께 남아 있다.
방향이 아니라 시간이다. 목동자리는 호메로스가 늦게 지는 별이라고 부른 밝은 별을 품고 있어, 그 별이 언제 서쪽으로 넘어가는지를 보면 밤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플레이아데스는 뜨고 지는 시기가 계절을 갈랐다. 헤시오도스는 「일과 날」에서 하지가 지나고 오십 일이 되면 항해하기 좋은 때이고, 플레이아데스가 안개 낀 바다로 뛰어들면 온갖 바람이 사납게 분다고 적었다. (Homer, Odyssey 5.272 · Hesiod, Works and Days 618–623, 663–665)
정리하면 이렇다. 곰자리는 어디로 갈지를 알려주고, 목동자리는 밤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고, 플레이아데스는 지금 바다에 나가도 되는 철인지를 알려준다.
세 표지가 한 문장에 나란히 놓인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항해에 필요한 정보가 세 종류이고, 그 각각에 맞는 하늘의 계기가 하나씩 배정되어 있는 구조다.
고대 지중해에서 항해철이 짧았던 이유도 여기 있다. 별이 보이지 않으면 방향을 잃고, 겨울 바람은 뗏목이든 배든 가리지 않는다. 계절을 읽는 일이 방향을 읽는 일만큼 중요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다. 고대의 천문항법은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었을 뿐, 위치를 각도로 재는 기법이나 도구가 있었다는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 북극성의 고도나 태양의 남중고도를 재서 위도를 얻는 방법은 근세에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사분의와 아스트롤라베, 뒤이어 크로스스태프를 배에 맞게 고쳐 쓰면서야 자리를 잡았다. (Vanin 2022, arXiv:2209.02371)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날수를 센다. 열이레라는 숫자가 본문에 그대로 적혀 있다. 속도와 시간을 곱해 거리를 어림하는 것 말고는 위치를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항법의 더 큰 약점은 따로 있다. 하늘이 가려지면 그대로 끝난다는 점이다. 실제로 포세이돈이 구름으로 땅과 바다를 함께 덮자, 오디세우스가 붙잡고 있던 기준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오디세이아에는 그 상태를 정확히 묘사한 대사가 하나 더 있다. 10권에서 오디세우스는 동료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어디가 어둠이고 어디가 새벽인지, 사람에게 빛을 주는 태양이 어디로 지고 어디서 뜨는지 알지 못한다고.
방향을 잃는다는 것은 방향이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방향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지는 일이다.
열이레를 나아간 끝에 열여드레째 파이아케스인들의 땅에 있는 어두운 산이 보였다. 안개 낀 바다 위로 방패처럼 떠 있었다고 호메로스는 적는다. 그러나 포세이돈이 폭풍을 일으켜 뗏목을 부쉈고, 오디세우스는 널판 하나에 매달려 이틀 밤낮을 표류하다 사흘째 되는 날 스케리아 해안에 닿았다. (Homer, Odyssey 5.278–281, 313–332, 388–399)
여기에 작은 계산이 하나 숨어 있다. 이야기 초반에 제우스는 오디세우스가 스무 날째 되는 날 스케리아에 닿을 것이라고 말해두었다. 항해 17일에 육지를 본 하루를 더하고 표류한 이틀을 더하면 정확히 스무 날이다.
결말이 알려주는 바가 있다. 별은 제 몫을 다했다. 열이레 동안 침로는 유지되었고, 뗏목은 목적지가 보이는 곳까지 갔다. 무너진 것은 항법이 아니라 배였다.
3천 년 전의 이 방법에서 낡은 것은 도구 쪽이다. 발상은 낡지 않았다. 지지 않는 기준 하나를 잡아두고 그것을 놓치지 않는 일, 길을 찾는다는 행위의 뼈대는 지금도 그 모양을 하고 있다.
달라진 것은 우리가 하늘을 얼마나 보느냐뿐이다. 도시의 밤에서 큰곰자리 일곱 별을 다 찾아내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방향을 알려주던 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올려다보기를 그만둔 쪽에 가깝다.
오늘 밤 북쪽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면 그 일곱 별이 있다. 3천 년 전 어떤 사람이 뗏목 위에서 잠을 참으며 왼쪽에 두었던 바로 그 별무리다. 그때보다 조금 낮아졌을 뿐, 자리는 그대로다.
적위 수치는 J2000 좌표에 IAU 1976 세차 모형을 적용해 직접 계산했다. 기원전 800년 국자 손잡이 끝 별의 적위는 +64.5도, 오늘은 +49.2도로 나왔고, 앞의 값은 이 주제를 다룬 기존 문헌의 +64.5도와 일치한다. 아테네의 위도는 북위 37.98도로 잡아 주극 한계 적위를 +52.0도로 두었다. 고유운동은 반영하지 않았으므로 소수점 아래는 신뢰하지 않는 편이 좋다. 오기기아의 위치, 그리고 오디세이아의 항해 묘사가 실제 항법 관행을 얼마나 반영하는가는 학계에서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다. 도식 세 점은 직접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