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이 적은 땅은 젊은 땅이라고들 한다. 화성의 작은 달 하나가 그 문장에 단서를 달았다.
세 줄 요약
① 크레이터 개수는 표면이 드러나 있던 시간을 센다. 다만 개수 자체는 순서일 뿐이고, 연수는 아폴로 시료에서 들어온다.
② 이 시계는 두 방식으로 멈춘다. 새 자국이 옛 자국을 지우는 포화, 파편이 옛 자국을 덮는 매몰이다.
③ 8월 18일 발표된 데이모스 연구가 매몰의 정량적 사례다. 지름 320미터짜리 충돌체 하나가 위성 전체를 덮었다.
달 사진을 보면 어떤 지역은 자국투성이이고 어떤 지역은 유난히 매끈하다. 이 차이 하나로 우리는 두 땅의 나이를 가른다. 표본을 한 줌도 가져오지 못한 천체에서도 같은 일을 한다.
이 방법이 없으면 태양계 지질 연표는 거의 백지가 된다. 달을 뺀 어느 천체에서도 암석을 실어 와 실험실에서 연대를 잰 적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레이터를 세는 일은 취미에 머물지 않고 기반 시설 노릇을 한다. 화성 용암류의 나이도, 소행성 표면이 얼마나 오래됐는지도 여기서 나온다.
다만 이 시계는 조건부로만 작동한다. 8월 18일 Nature Astronomy에 실린 논문 한 편이 그 조건이 깨지는 장면을 정량적으로 보여줬다.
표면이 드러나 있던 시간에 비례해 자국이 쌓이기 때문이다. 같은 넓이를 놓고 자국이 많으면 오래 노출된 땅이고, 적으면 최근에 새로 깔린 땅이다. 이 셈이 성립하려면 충돌이 대체로 일정한 속도로 일어나야 하는데, 달 크레이터의 크기-빈도 분포에서 되짚은 충돌체 분포는 지난 40억 년 동안 비교적 안정적이었다(Neukum·Ivanov·Hartmann, Space Science Reviews, 2001).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전제다. 지구에서는 이 전제가 곧바로 무너진다. 비가 내리고 판이 움직이고 식물이 자라면서 자국이 몇천만 년 만에 사라진다.
공기도 물도 없는 천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한 번 파인 자국이 수십억 년을 그대로 버틴다.
그 덕에 표면이 장부가 된다. 충돌은 자국을 남기고, 남은 자국은 시간을 세며, 그 셈이 다른 천체의 연표까지 떠받친다.
지워지지 않는 표면만이 시계가 된다. 지워지는 순간 그것은 그냥 풍경이다.
달에서 실어 온 돌이다. 크레이터 밀도는 어느 땅이 더 오래됐는지만 알려주고 연수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 연수는 밖에서 들어온다. 내행성계 표면의 절대 연대는 달 시료의 절대 연대로 보정한 달의 충돌 플럭스 곡선을 외삽해서 얻는다(Neukum·Ivanov·Hartmann, Space Science Reviews, 2001). 눈금을 붙이는 일이 망원경 앞이 아닌 실험실에서 벌어진다는 뜻이다.
절차를 풀어 보면 이렇다. 아폴로와 루나가 착륙한 지점의 암석을 동위원소로 재서 그 땅의 나이를 확정한다.
그다음 같은 지점의 크레이터 밀도를 센다. 이제 밀도 하나와 연수 하나가 짝을 이룬다.
이런 짝을 여러 개 모으면 밀도를 연수로 옮기는 환산표가 만들어진다. 달 지질 단위의 층서와 동위원소 연대를 정리한 작업이 내행성계 전체의 연대 표준 노릇을 하게 된 것이 그래서다(Stöffler & Ryder, Space Science Reviews, 2001).
문제는 이 환산표가 달에서만 직접 검증됐다는 데 있다. 화성이나 소행성에 대려면 충돌률이 달과 얼마나 다른지를 가정해 비율을 곱해야 한다.
그 비율 자체가 연구 주제다. 화성은 소행성대에 가까워 충돌이 더 잦은데, 얼마나 더 잦은지는 값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크레이터 집단은 개수만이 아니라 크기별 비율에도 고유한 모양을 갖기 때문이다. 그 모양을 표준 곡선에 겹쳐야 비로소 맞춤이 되고, 좁은 지름 구간만 쓰면 답이 흔들린다. 두 연구진이 독립적으로 만든 등연대선은 대체로 30퍼센트 안에서 서로 어긋나며, 충분히 넓은 지름 범위를 쓰면 크레이터 자료를 등연대선에 잘 맞출 수 있다(Hartmann & Neukum, Space Science Reviews, 2001).
작은 크레이터를 세는 일에는 함정이 하나 더 있다. 큰 충돌이 튀겨 올린 파편이 근처에 떨어져 만든 자국, 곧 이차 크레이터가 섞여 들기 때문이다.
이차 크레이터는 원래 충돌과 사실상 같은 시각에 생긴다. 그것을 독립 충돌로 세면 그 지역이 실제보다 늙어 보인다.
그래서 지름 구간을 넓게 잡는 것이 안전장치가 된다. 크기별 비율의 모양이 어긋나면 무언가 섞였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어서다.
있다. 새 자국이 옛 자국을 지우기 시작하면 밀도가 더는 오르지 않는다. 포화 평형 곡선은 크레이터 밀도가 좀처럼 넘어서지 못하는 경험적 상한으로 다뤄진다(Hartmann & Neukum, Space Science Reviews, 2001). 이 상태에 이른 면에서는 밀도가 나이를 말해 주지 않고, 그저 오래됐다는 사실만 말해 준다.
어느 밀도에서 평형이 오는지는 오래 다퉈 온 값이다. 많은 경험적 관측이 상대밀도 0.1에서 0.3 사이, 곧 기하학적 포화의 5~10퍼센트에서 평형이 나타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Xiao & Werner, JGR: Planets, 2015).
다만 같은 연구가 그 숫자를 기계적으로 쓰지 말라고 못 박는다. 평형이 시작되는 밀도가 그 크레이터 집단의 나이와 상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평형은 표면 전체에 한꺼번에 오지도 않는다. 젊은 면에서는 작은 지름에서만 평형이 되고, 오래된 면에서는 더 큰 크레이터까지 평형에 이른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지름 구간을 골라 가며 센다. 아직 평형에 들지 않은 구간이 남아 있으면, 거기서는 시계가 여전히 돌고 있다.
파편이 옛 자국을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름 약 320미터짜리 충돌체가 45도로 비스듬히 부딪힌 시나리오 하나가 남극의 함몰과 전 지구를 덮은 레골리스 층, 그리고 밝은 줄무늬와 크레이터 메움까지 정량적으로 설명한다(Raducan 외, Nature Astronomy, 2026). 데이모스가 매끄러운 것은 젊어서가 아니라 덮여서다.
데이모스는 지름 12킬로미터짜리 화성 바깥쪽 위성이다. 지름 22킬로미터의 포보스가 자국과 홈으로 뒤덮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두 위성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 동안 같은 폭격을 받았다. 그런데 한쪽만 기록을 잃었다.
연구진이 근거로 삼은 것은 크레이터의 깊이다. 지름 450미터가 넘는 가장 큰 크레이터 14개의 깊이 대 지름 비를 쟀더니 계통적으로 얕아져 있었고, 이는 옛 크레이터가 100~150미터의 레골리스 아래 묻혀 있으며 작은 크레이터일수록 메워지기 쉽다는 것을 시사한다(Raducan 외, Nature Astronomy, 2026).
남극의 함몰 자체도 얕다. 논문은 그것을 지름 약 10킬로미터에 깊이는 수백 미터에 그치는 얕은 사발로 적는다.
이 얕음이 데이모스의 속살을 알려준다. 모의실험에서 표층의 응집력을 100파스칼 아래로 낮추자 크레이터 테가 무너지고 잔해가 흘러내려, 관측된 것과 같은 얕고 부분적으로 메워진 공동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결론이 표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데이모스의 겉은 극히 무르고 속은 구멍이 많아, 최근 탐사선이 찾아간 잔해더미 소행성을 닮았다는 것이 연구진의 판단이다.
이 연구가 성립한 데에는 새 자료가 있었다. 유럽우주국의 헤라 탐사선이 2025년 3월 12일 화성 중력도움 비행 중 약 1000킬로미터 거리에서 데이모스를 관측했고, 그 영상에서 반지름 약 3킬로미터의 원형 구조가 새로 드러났다.
계산량도 만만치 않았다. 베른대 연구진은 충돌체의 크기와 속도, 입사각, 데이모스의 내부 구조를 바꿔 가며 약 100번의 모의실험을 돌렸고, 한 번에 일주일가량이 걸렸다.
탐색 범위도 좁지 않았다. 충돌체 지름은 300미터에서 360미터, 입사각은 0도에서 60도까지 훑었고, 그중 320미터와 45도가 관측된 함몰의 크기와 모양에 가장 가깝게 맞았다.
덮는 힘의 세기도 절묘했다. 공저자 마르틴 유치는 충돌이 물질을 전 지구에 재분배할 만큼 강했지만 위성을 부술 만큼 강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순서는 튼튼하고 연수는 헐겁다. 충분히 넓은 지름 범위를 써서 크레이터 자료를 등연대선에 맞출 때, 나이 결정의 유효 1시그마 불확실도는 약 두 배로 잡힌다(Hartmann & Neukum, Space Science Reviews, 2001). 두 배라는 값은 오차 막대라기보다 폭에 가깝고, 이 폭을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의 차이가 크다.
그래도 이 방법을 버릴 수는 없다. 대체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화성 표면에서 암석을 실어 와 동위원소로 잰 적은 아직 없다. 지금 우리가 아는 화성의 연표는 전부 달의 눈금을 옮겨 온 것이다.
그래서 실무에서 이 시계는 절대 시각보다 상대 순서에 쓰인다. 달 크레이터에서 뻗어 나온 밝은 광조가 그 지역이 젊다는 표시로 읽히는 것도 같은 원리이고, 광조가 우주풍화로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또 하나의 시계 노릇을 한다.
반대쪽 극단도 있다. 카이퍼벨트의 아로코스처럼 거의 손대지 않은 표면은 자국이 드물어서, 그 드묾 자체가 그 자리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증거가 된다.
데이모스가 보태는 교훈은 방향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자국이 적은 표면은 젊거나, 아무 일도 없었거나, 한 번의 큰 사건에 덮인 것이다.
세 경우를 가르려면 개수만으로는 부족하다. 깊이를 재고, 크기별 비율을 보고, 지형이 어떻게 무너져 있는지까지 봐야 한다.
같은 조심성이 다른 측정에도 걸린다. 보이지 않는 별을 세는 일이 초기질량함수를 가정해야 하듯, 크레이터 계수는 충돌률과 지워짐을 가정해야 한다.
가정의 종류가 다를 뿐 구조는 같다. 별의 띠로 암흑물질을 재는 방법이 중력장의 모양을 가정하는 것처럼, 크레이터 시계는 표면이 기록을 지우지 않았다는 것을 가정한다.
결국 우리가 읽는 것은 표면 자체가 아닌, 표면이 남긴 기록이다. 기록이 지워질 수 있다는 사실까지 세어 넣을 때, 그 숫자는 비로소 나이가 된다.
본문의 모든 수치는 Nature Astronomy 논문 본문과 베른대 발표문에서 가져와 1:1로 대조했다. 레골리스 두께가 두 자료에서 다르게 읽히는 사정은 본문 상자에 따로 적었다. 크레이터 연대측정 쪽 수치는 2001년 Space Science Reviews 특집의 세 편과 2015년 JGR: Planets 논문에서 가져왔으며, 이 분야의 표준 곡선은 이후에도 개정되어 왔으므로 최신 값과 자릿수가 다를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관련 발표나 국내 연구진 참여 여부는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았다. 이미지 세 점은 이 글을 위해 직접 만든 도식이며, 히어로의 곡선은 개념을 나타낸 것이지 실제 관측 자료를 그린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