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눈이 소복이 쌓인 날, 손바닥으로 눈을 굴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은 덩어리 하나를 굴리다 보면 어느새 다른 덩어리와 만나고, 둘은 살며시 맞붙어 하나의 눈사람이 된다. 세게 부딪치면 부서지고 너무 약하면 붙지 않으니, 딱 알맞게 느린 속도로 만나야 눈사람은 완성된다. 그런데 태양계의 가장 먼 변두리에, 이 눈사람 놀이를 46억 년 전에 꼭 그렇게 해낸 천체가 하나 있다. 이름은 아로코스. 두 개의 덩어리가 좁은 목으로 맞붙은, 인류가 이제껏 가장 멀리서 직접 들여다본 세계다.

명왕성 이야기는 보통 명왕성에서 끝난다. 그러나 명왕성을 스쳐 지난 탐사선 뉴호라이즌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명왕성보다도 16억 킬로미터 더 먼 곳으로 날아가, 2019년 첫날 이 작은 눈사람 앞을 지났다. 아로코스가 특별한 까닭은 크기나 화려함이 아니다. 태양계가 갓 태어나던 무렵의 모습을 오랜 세월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측으로 확인된 사실과 아직 조심스러운 해석을 갈라 가며, 이 오래된 눈사람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었는지 차분히 따라가 본다.

1.명왕성을 지나, 가장 먼 만남

2019년 1월 1일, 뉴호라이즌스는 태양에서 약 66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아로코스를 스쳐 지났다. 인류가 이토록 먼 천체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명왕성 최근접이 끝난 뒤에도 탐사선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태양계 바깥을 향하고 있었다. 그 길목에는 태양계가 태어날 때 남은 얼음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있는 카이퍼벨트가 펼쳐져 있었고, 관제팀은 그 부스러기 가운데 하나를 다음 목적지로 골랐다. 흥미로운 것은 이 천체가 뉴호라이즌스가 발사될 때만 해도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탐사선이 날아가는 도중인 2014년, 허블 우주망원경이 명왕성 너머에서 이 작은 점을 찾아냈다. 목적지가 정해지기도 전에 이미 절반을 날아온 여행이었다.

그리고 2019년 첫날, 뉴호라이즌스는 명왕성보다도 16억 킬로미터나 더 먼 곳에서 아로코스 표면으로부터 약 3,500킬로미터까지 다가갔다. 명왕성 때와 마찬가지로 궤도를 돌지 않고 빠르게 스쳐 지나는 방식이었기에,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이 거리에서는 신호 한 번 주고받는 데만 열두 시간이 넘게 걸려, 탐사선은 미리 짜 넣은 각본대로 홀로 관측을 마쳐야 했다. 그렇게 인류는 태양에서 지구보다 마흔 배 넘게 먼 곳에 있는 한 세계를, 역사상 가장 먼 근접 통과로 처음 마주했다.

2.맞붙은 두 덩어리 — 눈사람의 정체

아로코스는 큰 엽(웨누)과 작은 엽(위요)이라는 두 덩어리가 밝고 좁은 목으로 맞붙은 접촉쌍성이다. 전체 길이는 약 35킬로미터로, 두 엽 모두 공이 아니라 눌린 팬케이크처럼 납작하다.

처음 도착한 사진 속의 아로코스는 영락없는 눈사람이었다. 큰 덩어리 하나와 작은 덩어리 하나가 잘록한 목으로 이어져, 마치 두 개의 눈덩이를 포개 놓은 듯했다. 누가 봐도 눈사람이었다. 천문학자들은 큰 쪽을 웨누, 작은 쪽을 위요라 이름 붙였다. 두 몸이 이렇게 살짝 닿은 채 붙어 있는 천체를 '접촉쌍성'이라 부르는데, 원래 따로 돌던 두 물체가 하나로 합쳐진 흔적이다. 두 엽을 잇는 목이 유난히 밝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무언가 고운 알갱이가 그 잘록한 곳에 쌓여 밝은 띠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두 덩어리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둥근 공이 아니었다. 특히 큰 엽 웨누는 호두처럼 도톰한 것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른 반죽처럼 납작했다. 탐사선이 지나가며 여러 각도에서 담은 모습과 별을 가리는 관측을 맞춰 보니, 두 엽 모두 한쪽으로 눌린 팬케이크에 가까웠다. 왜 이렇게 납작한지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물음이지만, 이 독특한 모양 자체가 아로코스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푸는 열쇠가 되었다. 아로코스는 약 15.9시간에 한 바퀴씩, 느긋하게 자전하며 이 모양을 우리에게 두루 보여 주었다.

두 개의 납작한 덩어리가 좁은 목으로 맞붙은 눈사람 밝은 목 — 고운 알갱이가 쌓인 곳 웨누 큰 엽 · 약 20 km 위요 작은 엽 · 약 15 km 전체 길이 약 35 km 자전 약 15.9시간에 한 바퀴
큰 엽과 작은 엽이 밝은 목으로 맞붙어, 전체 길이 약 35킬로미터의 눈사람을 이룬다. 두 덩어리는 둥근 공이 아니라 한쪽으로 눌린 팬케이크처럼 납작하다. 크기와 비율은 관측값을 바탕으로 단순화한 개념도다.도식 · 경이의목록 (개념도) · 근거: Stern 외 2019 · Spencer 외 2020, New Horizons 관측

3.부드럽게 뭉친 화석

매킨넌 팀은 아로코스의 두 엽이 초속 5미터도 안 되는 아주 느린 속도로 부드럽게 합쳐졌다고 보고했다. 격렬한 충돌이 아니라, 작은 알갱이 구름이 천천히 주저앉아 뭉친 흔적이라는 것이다.

아로코스의 납작한 두 엽과 나란히 정렬된 자세는, 이 눈사람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두고 오래된 물음에 답을 주었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처음에 자잘한 알갱이가 뭉쳐 미행성이 되고, 그 미행성이 다시 충돌하며 자라났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그 첫 뭉침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오래 논쟁거리였다. 작은 돌들이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부딪쳐 우연히 붙은 것일까, 아니면 좀 더 질서 있는 다른 길이 있었을까. 아로코스는 바로 그 첫 순간을 화석처럼 간직한 표본이었다. 그래서 연구자들의 눈이 이 작은 눈사람으로 쏠렸다.

2020년, 매킨넌 팀은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아로코스의 모양을 되짚었다. 그들이 내놓은 그림은 이렇다. 두 엽은 원래 서로의 곁을 나란히 도는 짝이었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가까워지다 아주 느린 속도로 살며시 맞붙었다는 것이다. 그 속도는 초속 5미터도 되지 않았다. 사람이 가볍게 뛰는 것보다도 느린 만남이다. 이렇게 부드럽게 붙으려면 두 몸이 애초에 한자리에서, 작은 알갱이들이 모인 구름이 제 중력으로 천천히 주저앉으며 함께 태어났어야 한다고 이 팀은 해석한다. 격렬한 충돌로 우연히 붙었다면 이토록 온전한 눈사람은 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로코스는 미행성이 처음 어떻게 뭉쳤는지를 눈앞에 펼쳐 보이는, 태양계 형성의 살아 있는 화석이다.

부딪쳐 깨질 만큼 빠르지 않았다 예전 생각 · 격렬한 충돌 빠르게 부딪쳐 우연히 붙음 → 이랬다면 깨지거나 뒤틀렸을 것 실제 해석 · 부드러운 합체 알갱이 구름이 천천히 주저앉음 초속 5 m 미만으로 살며시 맞붙음 → 온전한 눈사람이 그대로 남음 모식도 · 크기·속도는 실제 비율 아님 · 근거: McKinnon 외 2020 (Science 367)
아로코스는 부딪쳐 깨질 만큼 빠르지 않았다. 예전에는 두 몸이 마구잡이로 부딪쳐 붙었다고 여겼지만, 온전한 눈사람 모양은 초속 5미터도 안 되는 느린 만남을 가리킨다. 작은 알갱이 구름이 천천히 주저앉아 함께 태어났다는 해석이다.도식 · 경이의목록 (개념도) · 근거: McKinnon 외 2020, Science 367

아로코스는 부딪쳐 깨질 만큼 빠르지 않았다. 초속 5미터도 안 되는 느린 만남이 이 화석을 지켜냈다.

4.붉고 어두운, 태초의 얼굴

아로코스는 매우 붉고 어두운 표면을 가졌다. 메탄올 얼음과, 햇빛을 오래 받아 만들어진 붉은 유기물이 덮여 있으며, 위성이나 고리, 대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가까이서 본 아로코스의 얼굴은 짙은 적갈색이었다. 태양에서 워낙 멀어 표면은 늘 영하 200도가 훌쩍 넘는 혹한에 잠겨 있다. 그런데 이 시린 세계가 어째서 붉은빛을 띨까. 까닭이 있다. 표면에는 메탄올이라는 단순한 알코올 얼음이 있고, 그 위로 오랜 세월 햇빛과 우주에서 날아든 입자를 받아 만들어진 붉은 유기물 층이 덮여 있다. 이런 붉은 유기물은 태양계 바깥의 차갑고 오래된 천체에서 흔히 보이는 것으로, 시간이 그 표면에 새긴 일종의 그을음이라 할 만하다. 물 얼음은 뚜렷하게 잡히지 않았는데, 이 점 역시 아로코스가 어떤 재료로 뭉쳤는지를 말해 주는 단서다.

눈여겨볼 것은 표면의 색이 두 엽에 걸쳐 고르다는 사실이다. 큰 엽과 작은 엽이 서로 다른 곳에서 만들어져 나중에 부딪쳐 붙은 것이라면, 두 표면의 성질이 제법 달랐을 법하다. 그런데 아로코스는 어디를 보나 비슷하게 붉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두 엽이 같은 재료에서 나란히 태어나 함께 자랐다는 증거로 읽는다. 또 탐사선은 아로코스 둘레에서 위성도, 고리도, 대기의 흔적도 찾지 못했다. 아무런 장식 없이 홀로 붉게 얼어 있는 이 단출한 모습이, 오히려 태양계가 태어나던 첫 순간의 민낯에 가깝다.

5.울티마 툴레에서 아로코스로 — 이름의 사연

아로코스는 북아메리카 포와탄·알곤킨 계열 언어로 '하늘'을 뜻한다. 처음엔 임시 명칭 2014 MU69로 불렸고 '울티마 툴레'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2019년 11월 국제천문연맹의 정식 절차를 거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새로 발견된 천체에는 먼저 무미건조한 임시 부호가 붙는다. 이 눈사람도 처음엔 2014 MU69라는 발견 연도와 순번을 담은 이름으로 불렸다. 탐사팀은 최근접을 앞두고 대중 공모를 열어 '울티마 툴레'라는 별명을 골랐는데, 옛 지도에서 알려진 세계의 끝 너머를 가리키던 말이다. 가장 먼 곳을 찾아가는 탐사에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로 부르던 애칭이었고, 천체의 공식 이름은 국제천문연맹의 정식 절차를 통해 따로 정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2019년 11월, 이 천체는 아로코스라는 공식 이름을 얻었다. 아로코스는 포와탄·알곤킨 계열 언어로 '하늘'을 뜻한다. 뉴호라이즌스와 허블을 운영하는 연구팀이 자리한 미국 동부 체서피크만 일대는 본래 포와탄족이 살던 땅으로, 탐사팀은 그 원주민의 말을 빌려 이 먼 세계를 하늘이라 불렀다. 부족 어른들의 동의를 얻어 지은 이름이다. 가장 먼 곳에서 만난 작은 눈덩이에게, 우리가 올려다보는 바로 그 '하늘'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6.46억 년을 건너온 눈사람

정리하면 이렇다. 명왕성을 스쳐 지난 탐사선은 거기서 16억 킬로미터를 더 날아, 두 덩어리가 좁은 목으로 맞붙은 작은 눈사람 앞을 지났다. 그 눈사람은 초속 5미터도 안 되는 느린 만남으로 부드럽게 뭉쳤고, 붉게 얼어붙은 채 46억 년을 거의 그대로 버텨 왔다. 아로코스가 값진 것은 크거나 화려해서가 아니다. 태양계의 다른 세계들이 충돌과 열로 제 어린 시절을 지워 버리는 동안, 이 먼 변두리의 눈사람만은 태어나던 순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화석을 열어, 행성이 처음 어떻게 뭉쳤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가만 생각하면 이 눈사람의 사연은 우리가 무언가를 오래 지켜 내는 방식과도 조금 닮았다. 세게 부딪치면 부서지고 무심하면 흩어지는 것은, 저 먼 천체나 우리 곁의 소중한 것들이나 다르지 않다. 어떤 것은 격렬하게 얻어야 하지만, 어떤 것은 딱 알맞게 느린 속도로 살며시 다가가야만 온전히 남는다. 아로코스가 46억 년을 건너 우리에게 도착한 것도 그 느림 덕분이었다. 그러니 오늘 당신이 마음을 다해 천천히 붙잡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더딘 걸음을 너무 조바심 내지 않아도 좋겠다. 태양계 끝의 저 작은 눈사람처럼,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지켜 낸 것들은 오래도록 곁에 남아 언젠가 우리를 조용히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자주 묻는 질문

아로코스는 무엇이고, 뉴호라이즌스는 언제 지나갔나요?

아로코스는 명왕성보다 약 16억 킬로미터 더 먼 카이퍼벨트에 있는 작은 천체다. 뉴호라이즌스가 2019년 1월 1일, 태양에서 약 66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표면으로부터 약 3,500킬로미터까지 다가가 스쳐 지났다. 인류가 이토록 먼 천체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로코스는 왜 '눈사람' 모양인가요?

아로코스는 큰 엽(웨누)과 작은 엽(위요)이라는 두 개의 덩어리가 밝고 좁은 목으로 맞붙은 접촉쌍성이다. 전체 길이는 약 35킬로미터이고, 두 덩어리 모두 공처럼 둥글지 않고 눌린 팬케이크처럼 납작하다. 원래 따로 돌던 두 몸이 아주 느리게 다가와 하나로 붙었다고 해석된다.

아로코스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매킨넌 팀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아로코스의 두 엽은 원래 서로의 곁을 나란히 돌던 짝이었다가 초속 5미터도 안 되는 아주 느린 속도로 부드럽게 합쳐졌다. 작은 알갱이들이 모인 구름이 제 중력으로 천천히 주저앉으며 뭉쳤다는 뜻으로, 격렬한 충돌로 우연히 붙은 것이 아니라고 본다.

아로코스의 표면은 어떤 색인가요?

아로코스는 매우 붉고 어두운 표면을 가졌다. 메탄올 얼음과, 햇빛과 우주선을 오래 받아 만들어진 붉은 유기물이 덮여 있다. 표면 색이 전체적으로 고른데, 이는 두 엽이 같은 재료에서 함께 태어났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위성이나 고리, 대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로코스'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아로코스는 북아메리카 포와탄·알곤킨 계열 언어로 '하늘'을 뜻한다. 처음에는 임시 명칭 2014 MU69로 불렸고 '울티마 툴레'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2019년 11월 12일 국제천문연맹의 정식 절차를 거쳐 아로코스라는 공식 이름을 얻었다. 탐사팀이 있는 지역의 원주민 포와탄족을 기려 지은 이름이다.

참고한 자료

· NASA Science — Arrokoth (2014 MU69) (2019-01-01 최근접·전체 길이 약 35km·태양에서 약 66억 km·이름의 뜻)

· Johns Hopkins APL — New Horizons: Arrokoth (표면으로부터 약 3,500km 최근접·역사상 가장 먼 근접 통과·접촉쌍성)

· Stern, S. A. 외, Science 364, aaw9771 (2019) — Initial results from the New Horizons exploration of 2014 MU69, a small Kuiper Belt object (첫 종합 결과·자전 약 15.9시간·붉은색·위성·대기 없음)

· Spencer, J. R. 외, Science 367, aay3999 (2020) — The geology and geophysics of Kuiper Belt object (486958) Arrokoth (두 엽의 납작한 모양·밝은 목·크기)

· McKinnon, W. B. 외, Science 367, aay6620 (2020) — The solar nebula origin of (486958) Arrokoth, a primordial contact binary in the Kuiper Belt (초속 5m 미만의 부드러운 합체·중력 붕괴로 형성)

· Grundy, W. M. 외, Science 367, aay3705 (2020) — Color, composition, and thermal environment of Kuiper Belt object (486958) Arrokoth (메탄올 얼음·붉은 유기물·고른 표면색)

· NASA — Far, Far Away in the Sky: New Horizons Flyby Object Officially Named (2019-11-12 정식 명명·포와탄어 '하늘'·명왕성 너머 약 16억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