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팽창한다고 하면, 우리는 무심코 ‘어딘가 텅 빈 곳을 향해 부푼다’고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 ‘어딘가’가 정말 있을까요. 공간 자체가 늘어난다는 건 무슨 뜻이고, 중심도 가장자리도 없다는 건 또 어떻게 가능할까요. 평행선이 만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에서 시작해, 우주의 모양과 다크에너지, 그리고 더 높은 차원까지 — 이 오래된 질문의 답을 천천히 따라가 봅니다.
▶ 영상으로 보기 — EP09 · 무엇을 향해 팽창하는가
한 노인이 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제발 그 문제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자신은 그것을 좇다가 빛도 기쁨도 다 잃었다고요. 노인이 말한 건 다름 아닌 ‘평행선’이었습니다. 평행선은 아무리 늘여도 만나지 않는다 — 우리는 그렇게 배웠죠. 수학자들은 이천 년 동안 이 한 줄을 증명하려다 실패했고, 19세기에야 답이 나왔습니다. 증명하지 못한 이유는, 그게 늘 참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간을 휘면 평행선도 만납니다. 그리고 이 휜 공간이, ‘우주는 무엇을 향해 팽창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의 열쇠입니다.
그 편지를 받은 아들, 헝가리의 보여이가 바로 그 휘어진 공간의 문을 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 이 휘어진 기하가, 우주를 향한 가장 큰 질문 하나와 맞닿습니다. 우주가 팽창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향해 커지는 걸까요. (우주의 ‘끝’과 무한이 궁금하다면 EP02 · 우주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가장 멀리 보는 눈이 궁금하다면 EP08 · 제임스 웹은 어떻게 과거를 보는가를 먼저 읽어도 좋습니다.)
놀랍게도 ‘팽창하는 우주’라는 생각의 첫 불씨는 13세기 한 주교에게 있었습니다. 영국 링컨의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그는 우주가 한 점에서 빛이 퍼져 나간 뒤 물질로 굳으며 시작됐다고 봤습니다. 현대 천문학이 같은 결론에 닿기 일곱 세기 전이라, 사람들은 그를 ‘빅뱅 주교’라 부르죠.
그 불씨를 20세기에 되살린 것도 성직자였습니다. 벨기에 신부 조르주 르메트르. 1927년, 그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을 풀어 우주 전체가 부풀고 있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싸늘했죠. 계산은 옳지만 물리는 끔찍하다고요. 그는 정적인 우주를 지키려 자기 방정식에 항을 하나 끼워 넣기까지 했습니다(이 항은 뒤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증거는 이미 하늘에서 모이고 있었습니다. 1915년 베스토 슬라이퍼는 은하 대부분이 우리에게서 달아난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빛을 무지개색으로 펼친 뒤, 원소들이 삼켜 버린 어두운 띠가 얼마나 ‘붉은 쪽으로’ 밀렸는지를 본 겁니다. 더 많이 밀렸을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신호죠. 이것이 적색편이입니다.
마지막 조각은 1929년 에드윈 허블의 손에서 맞춰집니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은 우주가 영원히 그 자리에 멈춰 있다고 믿었죠. 허블은 윌슨산의 2.5미터 후커 망원경으로, 흐릿한 얼룩들이 우리 은하 너머의 또 다른 은하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은하까지의 거리와 달아나는 속도를 나란히 놓자, 단순하고 엄격한 규칙이 드러났죠.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 — 허블의 법칙.
우주는 멈춘 무대가 아니라 자라나는 무대였고, 르메트르가, 그리고 700년 전의 주교가 옳았던 겁니다. 그렇다면 이 ‘자라남’이란 정확히 어떤 일일까요. 여기서부터, 흔한 오해를 하나 풀어야 합니다.
팽창이라고 하면 은하들이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로켓처럼 날아가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진실은 더 묘해요. 은하가 공간 속을 달리는 게 아니라, 은하와 은하 사이의 공간 자체가 늘어나며 은하를 실어 나릅니다. 우리는 공간을 별과 행성이 놓인 텅 빈 무대로 여기지만, 그 무대가 가만있질 않습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바닥이 계속 새로 깔리는 셈이죠.
건포도빵을 떠올리면 분명해집니다. 반죽을 오븐에 넣으면 부풀죠. 한 건포도에 올라타 주위를 보면, 1cm 떨어졌던 이웃은 2cm로, 2cm였던 이웃은 4cm로 멀어집니다. 처음에 더 멀리 있던 건포도일수록 더 빠르게 달아나는 것처럼 보이죠. 건포도가 반죽 속을 기어간 것도, 반죽이 새로 더해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사이의 반죽이 늘어났을 뿐입니다.
늘어나는 건 공간만이 아닙니다. 빛도 같이 늘어나 붉어지고(적색편이), 그러면서 에너지를 잃습니다. 가장 먼 옛날의 사건일수록 그 빛은 늘어나는 공간을 더 오래 헤쳐 오느라, 같은 사건이 오늘 벌어질 때보다 거의 다섯 배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런데 ‘빅뱅’이라는 이름은 폭발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죠. 그 폭발이 일어난 자리, 우주의 중심은 어디냐고. 방 안에서 폭탄이 터지면 조사관이 잔해를 더듬어 터진 자리를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빅뱅은 ‘방 안의 폭발’이 아니었습니다. 폭발이 방까지 함께 만들어 냈다면, 그 방 어디서 터졌느냐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죠. 방은 폭발 전에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질문을 고쳐 물어야 합니다. 어디로부터 팽창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 팽창하느냐고.
쉬워 보이지만, 답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깊습니다. 그 답으로 가려면, 먼저 ‘우주의 모양’을 알아야 합니다.
우주의 모양은 ‘곡률’로 가릅니다. 가장 익숙한 건 평탄한 우주입니다. 종이처럼 2차원이라는 뜻이 아니라, 안으로 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여기선 삼각형 세 각의 합이 정확히 180도이고, 평행선은 영원히 평행입니다.
그런데 모든 삼각형이 그렇진 않습니다. 지구 북극에서 적도까지 곧장 내려가 직각으로 꺾고, 적도를 따라 걷다 다시 직각으로 꺾어 북극으로 돌아온다고 해 보죠. 밑변의 두 각이 벌써 각각 90도라, 세 각을 더하면 180도를 넘습니다. 이게 양의 곡률, 닫힌 우주입니다. 곧장 나아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우주죠. 반대로 안장이나 감자칩처럼 음으로 휜 공간에선 세 각의 합이 180도보다 작아집니다. 이게 열린 우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살까요. 우주선이 수백만 광년에 걸쳐 거대한 삼각형을 그리며 지구로 돌아온다면 알 수 있겠지만, 탐사선이 가장 가까운 별에 닿는 데만도 수만 년이 걸립니다. 다행히 이미 수십억 광년을 가로질러 온 빛이 있죠. 빅뱅의 잔광, 우주배경복사입니다.
우주배경복사 지도는 미세한 온도 얼룩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건 아기 우주에서 조금 더 빽빽하거나 성겼던 자리고, 오늘 우리가 보는 모든 구조 — 초은하단과 거대한 공허 — 의 씨앗입니다. 천문학자들은 오늘의 거대구조에서 거꾸로 계산해 그 얼룩이 얼마나 커야 하는지 예측할 수 있는데, 그 값이 실제 관측과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이건 잔광이 ‘평탄한 우주’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는 뜻이죠.
그 잔광을 자 삼아, 아타카마 망원경(ACT) 연구진은 가장 정밀한 측정에서도 우주가 평탄에서 벗어났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허블 상수는 약 68로 나왔고요). 이것이 현재의 정설입니다.
이제 핵심입니다. 건포도빵도 풍선도 사실 한계가 있습니다. 둘 다 오븐이나 방이라는 ‘바깥’을 향해 부풀잖아요. 종이를 원통으로 말려고 해도 종이 바깥의 3차원이 필요합니다. 수학자들은 그 바깥을 ‘끼워 넣는 공간’이라 부르죠. 우주도 그런 바깥이 필요할까요? 그 답을 19세기의 두 수학자가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1827년,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어떤 정리를 발표하고 라틴어로 ‘놀라운 정리’라 이름 붙입니다. 어떤 휘어짐은 바깥 없이도 표면 ‘안에서만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거였죠. 구 위에 큰 삼각형을 그려 각의 합이 180도를 넘으면, 굳이 바깥으로 나가 보지 않아도 휘었음을 알 수 있으니까요. 이런 휘어짐을 내재 곡률이라 합니다. 반대로, 원통 위에 그린 삼각형은 여전히 180도라서, 그 표면에 사는 존재는 자기가 평평한 종이에 사는지 휜 원통에 사는지 알 수가 없죠 — 원통에는 내재 곡률이 없는 겁니다.
1857년, 일흔여섯의 가우스 앞에서 옛 제자 베른하르트 리만이 강연을 합니다. 리만은 가우스의 곡률을 3차원 너머로 확장합니다. 그 핵심이 측지선, 곧 휜 면 위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이에요. 런던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가 곧장 동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휘어 나는 것도 측지선 덕분이죠. 평면 지도에선 굽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곧은 길입니다.
이 측지선과 리만 기하가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의 뼈대가 됩니다. 공간 세 방향과 시간 한 방향이 4차원의 천으로 엮이는데, ‘시공간’이라는 그 말을 지은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옛 스승 민코프스키였죠. 질량이 이 4차원 시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휘어짐이 곧 우리가 ‘중력’이라 느끼는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건 끌어당기는 힘 때문이 아니라, 태양이 파 놓은 시공간의 골을 따라 곧장 나아가기 때문이죠. 4차원에선 직선인데, 3차원으로 내려다보면 휘어 보이는 겁니다.
이 휘어짐이 가장 또렷이 드러나는 게 중력렌즈입니다. 먼 빛이 무거운 은하단 곁을 지날 때 그 길이 휘는데, 리만 기하로 휘어진 정도를 되짚으면 은하단의 질량이 나오죠. 그런데 거의 언제나, 눈에 보이는 별과 가스를 다 더한 것보다 질량이 훨씬 큽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 암흑물질의 강한 단서죠(이 이야기는 6장에서 이어집니다).
일반상대성은 우주와 그 팽창을 오직 ‘내재 곡률’만으로 완전히 그려냅니다. 바깥의 끼워 넣는 공간이 필요 없죠.
그러니 우주는 무엇을 향해 팽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게 가우스와 리만을 거쳐 아인슈타인이 내놓은, 그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공간은 바깥 없이도 스스로 늘어날 수 있어요. 담담하지만 묵직한 답이죠. 그런데 이 답은 곧장 더 깊은 물음을 부릅니다 — 그렇다면 이 우주는 끝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평탄하다는 게 곧 무한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위상’이 등장합니다. 위상이란 이런 겁니다 — 찰흙 두 덩이를 찢지 않고 서로 빚어낼 수 있으면 같은 위상이죠. 그래서 도넛과 손잡이 달린 찻잔은 같은 위상입니다. 우주가 한 장의 종이라면, 말아서 원통으로, 양 끝을 이어 도넛 모양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수학에선 이 도넛을 토러스라 부르죠. 그리고 이 모두가 ‘평탄’합니다 — 그 위에 그린 삼각형의 각이 여전히 180도이니까요. 평탄한 우주와 맞아떨어지는 3차원 위상은 무려 18가지나 됩니다.
그런 우주에 산다면 우리는 ‘우주적인 거울의 방’에 있는 셈입니다. 빛이 고리를 한 바퀴 돌아오면서, 같은 천체가 하늘의 여러 자리에 동시에 보일 테니까요. 그 흔적은 우주배경복사에 ‘짝지어진 동그라미’로 남습니다.
컴팩트(COMPACT) 연구진이 WMAP와 플랑크 자료를 뒤졌지만, 그런 동그라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주를 한 바퀴 도는 가장 짧은 고리가, 우리가 보는 가장 먼 빛의 경계(마지막 산란면)의 98.5%보다 길다는 뜻이죠. 가장 단순한 도넛 우주는 사실상 지워지는 겁니다.
사실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정말 평탄한지조차 100%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잰 건 ‘관측 가능한 우주’, 곧 우리가 볼 수 있는 부분의 평탄성이니까요. 그렇다면 왜 하필 그 부분이 이토록 평탄할까요. 발밑의 둥근 지구가 평평해 보이듯, 빅뱅이 우주를 너무 크게 늘려서 원래의 휘어짐이 다 펴진 것일 수 있습니다. 그 ‘다림질’의 후보가 바로 인플레이션이죠. 빅뱅 직후, 원자 하나보다 작던 것이 1조 분의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수 광년 너비로 부풀었다는 폭주입니다. 이 급팽창은 곡률을 펴 버리는 동시에, 우주배경복사의 얼룩(미세한 양자 떨림이 얼어붙은 것)까지 설명합니다.
다만 이 짧고 격렬한 폭주의 결정적 증거는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평탄하지 않은 — 그래서 유한한 — 우주가 다시 후보로 올라오고, ‘무엇을 향해 팽창하느냐’는 그 골치 아픈 질문도 함께 돌아옵니다.
모양을 그렸다고 이야기가 끝나는 건 아닙니다. 남은 물음이 더 크니까요 — 무엇이 이 거대한 공간을 점점 더 빠르게 밀어내고 있을까요. 우리가 보고 만지는 모든 것, 별과 은하와 사람까지 다 합쳐도 우주의 고작 5%입니다. 나머지 95%는 정체를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물질이 우주를 붙들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우주를 떼어 놓죠.
오랫동안 사람들은 중력이 팽창을 서서히 늦출 거라 믿었습니다. 던진 공이 느려지듯이요. 그런데 1990년대 말, 두 연구팀이 먼 초신성을 들여다보다 충격에 빠집니다. 별의 최후가 터뜨리는 그 밝은 폭발이 예상보다 어두웠던 거예요. 더 멀리 있었다는 뜻이고, 팽창이 느려지긴커녕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뜻이었죠. 중력을 이기고 은하를 밀어내는 이 정체불명의 힘에, 사람들은 다크에너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크에너지는 우주 에너지의 약 68%를 차지합니다. 물질과 달리 뭉치지 않고 공간에 고르게 퍼져 있고, 우주가 커져도 묽어지지 않은 채 새로 생긴 공간을 계속 채우죠. 팽창이 더 큰 팽창을 부르는 눈덩이처럼요. 우주의 살림을 펼쳐 보면 다크에너지 약 68%, 암흑물질 약 26%, 별과 행성처럼 눈에 보이는 보통 물질은 고작 5%입니다.
그 정체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빈 공간 자체가 지닌 에너지’, 곧 우주상수예요. 흥미로운 건 이게 아인슈타인이 한 세기 전 정적인 우주를 지키려 방정식에 넣었던(1장에서 끼워 넣었던) 바로 그 항이라는 겁니다. 허블이 팽창을 밝히자 그는 이걸 빼며 ‘인생 최대의 실수’라 불렀죠. 그런데 다크에너지 덕분에, 그 실수가 어쩌면 실수가 아니었던 것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한편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또 다른 어둠이 암흑물질입니다. 은하의 회전, 은하단 속의 움직임, 그리고 중력렌즈가 하나같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질량을 가리키죠. 암흑물질은 오직 중력으로만 자신을 드러내고, 별이나 행성 같은 구조를 빚지도 못합니다. 후보로는 윔프(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 액시온(지독히 가벼운 입자), 원시 블랙홀 등이 줄을 섰지만, 어느 것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깊은 지하에서 직접 잡으려는 실험, 소멸 신호를 노리는 간접 검출, 충돌기에서 만들어 보는 길이 모두 동원되고 있죠.
그렇다면 이 줄다리기의 끝, 우주는 어디로 갈까요. 팽창의 빠르기는 허블 상수로 나타내는데, 여기서 또 다른 미스터리가 등장합니다.
제임스 웹이 이 텐션의 열쇠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리스 연구진은 웹으로 세페이드 1천여 개를 다시 재서, 허블 망원경의 측정이 ‘별이 빽빽이 겹쳐 보여 생긴 오류’라는 가설을 8.2σ로 기각했죠. 텐션은 측정 실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이 8.2σ는 그 ‘오류 가설’을 내쳤다는 것이지, 새로운 물리를 찾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편엔 프리드먼 연구진이 있어, 세페이드 대신 늙은 적색거성의 끝 밝기를 잣대로 써서 약 70.4를 얻고 ‘표준 모형과 잘 맞아 새 물리는 필요 없다’고 봅니다 — 아직 정식 게재 전이라, 두 진영의 다툼은 현재진행형이죠.
가속이 멈추지 않는다면 먼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하나는 ‘큰 얼어붙음(열죽음)’ — 은하들이 점점 멀어지고 별이 연료를 다 태우면 우주는 차갑고 캄캄한 침묵 속으로 잦아듭니다. 더 사나운 결말은 ‘큰 찢김’ — 다크에너지가 갈수록 강해져 은하와 별과 행성, 끝내는 원자마저 갈가리 찢는 결말이죠.
우주가 무엇을 향해 팽창할 필요가 없다 해도, ‘더 높은 차원’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실마리가 중력의 이상한 허약함이죠. 전자 두 개를 나란히 두면, 둘 사이의 중력은 서로 밀어내는 전기력보다 ‘1 뒤에 0이 마흔세 개 붙는 배수’만큼 약합니다. 다른 세 힘(전자기력·약한 핵력·강한 핵력)은 첫 찰나에 하나에서 갈라졌다는 증거가 거의 들어맞는데, 유독 중력만 따로 떨어져 있죠.
한 가지 답이 브레인월드입니다. 우리 4차원 시공간이 더 높은 차원의 공간(‘벌크’)에 떠 있는 얇은 막이라는 거죠. 공중에 뜬 속 빈 공 위를 기는 개미가 3차원 속 2차원 막에 갇혀 있듯, 우리는 5차원 이상의 벌크 속 4차원 막에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 발상은 끈 이론에서 나옵니다 — 입자가 사실은 진동하는 작은 끈이라는 이론이죠. 중력을 나르는 ‘중력자’는 양 끝이 묶이지 않은 닫힌 고리 끈이라 막에 매이지 않고 벌크를 자유로이 떠돌 수 있고, 그래서 중력이 벌크로 ‘새어 나가’ 묽어진다는 겁니다. 다른 세 힘은 막에 한쪽 끝이 묶인 열린 끈이라 새지 않고요.
검증할 길도 있습니다. 중력은 보통 거리가 두 배가 되면 4분의 1로 주는 ‘거리 제곱의 법칙’을 따르죠. 그런데 중력이 차원 하나로 새 나간다면 ‘거리 세제곱의 법칙’으로 바뀌어, 두 배 거리에서 8분의 1로 줍니다. 그 어긋남은 아주 작은 규모에 숨어 있을 텐데, 2021년 90밀리그램짜리 금 구슬 두 개를 40밀리미터 떨어뜨려 재 봤습니다. 거리 제곱의 법칙에서 벗어남은 없었죠. 언젠가 0.3밀리미터 아래까지 내려가면 중력이 벌크로 새는 증거를 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만약 ‘벌크’가 증명된다면, ‘무엇을 향해 팽창하느냐’는 질문에 한결 또렷한 답이 생깁니다 — 우리 4차원 우주가 잠재적으로 무한한 더 높은 차원의 공간으로 자라고 있다는 답이죠.
밤하늘을 본다는 건 사실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먼 은하의 빛은 수백만, 때로는 수십억 년을 달려와 오늘 밤 우리 눈에 닿으니까요. 시간은 곧게 흐르고 공간은 가만있는 지구에서 진화한 우리 뇌는, 끝없이 늘어나는 가장자리 없는 우주를 온전히 그려 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죠. 수식으로 은하의 길을 정확히 짚어낼 수는 있어도, 그 모든 것의 ‘왜’냐는 물음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주는 무엇을 향해 팽창할까요. 가우스와 리만을 거쳐 아인슈타인에게 이른 답은 담담합니다 — 아무것도 향하지 않는다. 공간은 바깥 없이도 스스로 늘어날 수 있으니까요. 평행선이 만날 수 있다는 말이 누군가의 삶을 집어삼키던 시절이 있었듯, 오늘의 수수께끼도 언젠가 다음 망원경이, 다음 호기심이 풀어낼지 모릅니다. 그날까지 밤하늘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고 있겠죠. 부디, 평안한 밤 되시길.
동료심사 저널·arXiv 초록을 직접 확인해 작성했습니다(검증 2026-06). 관측·측정 데이터 기반 · 프리프린트 동료심사 전/진행중 · 논쟁/가설 5σ 미달이거나 검증 불가. 통계의 ‘시그마(σ)’가 5에 못 미치면 ‘발견’이 아니라 ‘힌트’로, 타임스케이프·브레인월드 등은 ‘대안/가설’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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