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주의 끝’이라 부르는 가장자리는 사실 벽이 아니라 시간의 한계입니다. 그 너머에서 우주는 어딘가에서 끝날까요, 아니면 정말 무한할까요. 제임스 웹과 최신 관측이 더듬고 있는 경계까지 천천히 걸어가 봅니다.
숨을 한 번 들이쉬어 보세요. 방금 당신의 폐로 들어간 공기 안에는 5 다음에 0이 스물두 개 붙는 수의 원자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우주 전체를 통째로 세면 0이 여든두 개죠. 사람의 머리로는 그려지지 않는 수입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수들도, 어떤 것 앞에서는 한 점 먼지가 됩니다. 무한입니다.
무한에는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큰 수를 떠올려도 그 뒤에는 늘 다음 수가 기다리니까요. 오늘 우리는 ‘우주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좇아,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가장자리까지 걸어가, 그 너머로 손을 뻗어 봅니다. 미리 말해 두자면, 거기서 기다리는 답은 하나가 아닙니다. (앞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P01 ·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부터 읽어도 좋습니다.)
▶ 영상으로 보기 — EP02 · 가장자리 너머 (약 25분)
우주에서 멀리 본다는 건 곧 과거를 본다는 뜻입니다. 빛은 1초에 약 30만 km를 달리지만, 우주가 워낙 넓어서 먼 빛이 우리에게 닿기까지 수십억 년이 걸립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천체를 본다는 건, 그 천체의 ‘아주 오래전 모습’을 보는 것이죠.
그 빛에는 비밀이 하나 더 숨어 있습니다. 우주가 팽창하는 동안, 먼 은하를 떠난 빛은 여행하면서 파장이 늘어납니다. 늘어난 빛은 붉은 쪽으로 밀려나죠. 이것을 적색편이라고 부릅니다.
바로 이 적색편이 때문에, 가장 오래된 빛은 우리 눈에 보이는 색의 영역을 넘어 적외선으로 넘어가 버립니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죠. 그래서 제임스 웹은 적외선을 봅니다. 2021년 성탄절에 발사돼 지구가 아니라 태양을 도는 ‘라그랑주 점’에 자리 잡았고, 열여덟 개의 금빛 육각 거울로 빅뱅 직후 몇억 년밖에 안 된 우주를 들여다봅니다.
그 눈에 담긴 건 막 빛을 켜기 시작한 첫 은하들, 이른바 ‘코스믹 던(우주의 새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은하들은 예상보다 많았고, 예상보다 훨씬 빨리 자라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이게 표준 우주 모형을 깨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죠.
그렇게 거슬러 보다가, 약 134억 년 전쯤 되는 거리에서 빛이 잦아듭니다. 더는 은하가 보이지 않죠. 그때는 아직 은하가 태어나기 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가장자리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정해집니다.
그것은 벽이 아닙니다. 빛이 우리에게 닿을 수 있었던 가장 먼 지점일 뿐이죠.
가장 먼 빛은 138억 년을 달려왔지만, 그동안 공간 자체가 팽창했기 때문에 그 빛을 보낸 천체는 지금 약 460억 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반지름이죠. 그런데 그 가장자리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거기엔 벽이 없습니다. 가장자리는, 가장자리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작은 섬에서 평생을 산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그에게는 이 섬과 바다가 우주의 전부입니다. 어느 날 수평선에 흰 점이 떠오르더니 거대한 배가 되어 섬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가 다시 사라집니다.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았다면, 그는 이렇게 물었을 겁니다. 내 세계가 전부라면, 저 배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우리도 그 섬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장자리 안쪽을 둘러봐도 어느 방향이든 우주는 비슷합니다. 유난히 뜨겁거나 빽빽한 중심 같은 건 없죠. 우주에는 중심이 없습니다. 섬사람에게 수평선이 끝이 아니었듯, 우리의 가장자리도 우주의 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너머는 얼마나 클까요. 답을 찾으려면, 인류가 가장 두려워했던 한 개념을 먼저 마주해야 합니다.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 학파는 깔끔하게 떨어지는 수를 신성하게 여기고 끝없이 이어지는 수를 악하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랑하던 기하학이 그 믿음을 무너뜨립니다. 정사각형의 대각선을 재자, 두 정수의 비로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수가 나온 거죠. 또 다른 그리스인 제논은, 집에 가려면 먼저 절반을 가고 남은 거리의 절반을 또 가야 하니, 절반을 무한히 쪼개면 영원히 도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이 무한을 어떻게든 현실 밖으로 밀어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로부터 이천 년 뒤,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가 무한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자연수도 무한, 짝수도 무한인데 둘의 크기가 같습니다(하나씩 짝지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칸토어는 무한에도 더 큰 무한이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무한은, 그것을 똑바로 응시한 사람의 정신마저 흔들어 놓았습니다.
칸토어 자신도 여러 번 무너졌고 생의 마지막을 정신병원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이제 종이 위가 아니라 진짜 하늘에서 이 무한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 그 단서는 ‘우주의 모양’에 있습니다. 모양을 읽는 가장 오래된 사진이 우주배경복사입니다. 빅뱅 약 38만 년 뒤, 우주가 처음으로 투명해지던 순간 퍼져 나온 잔광이죠. 그 사진을 보면 우주는 놀랄 만큼 고릅니다 — 가장 큰 규모에서 밝기 차이가 10만분의 1 남짓밖에 안 됩니다.
이렇게 고른 우주에서 별과 은하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 등장합니다. 암흑물질입니다. 빛을 내지도 반사하지도 않지만, 강한 중력으로 가스를 끌어모아 첫 별과 은하가 뭉칠 뼈대를 놓아 주었죠.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보통 물질은 우주의 5%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5%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주의 모양을 재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평행한 두 선을 멀리 그어 보는 거죠.
초신성을 ‘표준 촛불’로, 초기 우주에 새겨진 음파를 ‘표준 자’로 삼아 곡률을 재 보면, 우주는 어느 방향이든 평탄해 보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이어지는 걸까요? 하지만 바다도 낮은 곳에서 보면 평평합니다. 충분히 높이 올라가야 휘어진 게 보이죠.
유한과 무한 사이에는 또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유한하면서도 가장자리가 없는 우주죠. 섬사람이 바다로 계속 나아가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듯, 3차원 공간도 자기 자신으로 휘어 감길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우주배경복사에서 ‘맞물리는 똑같은 무늬’를 찾아 이런 우주의 크기에 하한을 매겼는데, 아직 그런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유한해도 적어도 우리가 보는 우주만큼은 크다는 뜻이고,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무한의 증거는 아닙니다.
가장자리 너머를 묻기 전에, 가장자리 안쪽부터 봅시다. 우리는 혼자일까요. 1995년 인류는 태양과 비슷한 별을 도는 첫 외계행성을 찾았고, 지금까지 확인된 외계행성은 5,500개를 넘어섰습니다.
제임스 웹은 이런 행성의 대기를 분석해 생명의 화학적 흔적을 찾습니다. 예컨대 산소와 메탄이 함께 있다면, 이 둘은 보통 서로 반응해 사라지기 때문에 누군가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는 강한 신호가 됩니다.
그런데 만약 우주가 정말 무한하다면, 생명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확실한 사실’이 됩니다.
무한한 우주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것도 무한히 여러 번.
별과 은하와 생명이 무한히 많은 배치로 존재한다면, 어딘가에는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똑같은 생각을 하는 당신의 복제가 무한히 많아야 합니다. 한 우주론자는 가장 가까운 당신의 복제가 10의 10의 118제곱 미터쯤 떨어져 있을 거라고 추정했죠.
무한은 바깥으로만 뻗는 게 아닙니다. 안으로도 끝없이 들어갑니다. 20세기의 수학자 브누아 만델브로는, 아무리 확대해도 똑같이 복잡한 무늬가 끝없이 나오는 도형을 보여 줬습니다. 프랙탈이죠.
그렇다면 우주 전체가 하나의 프랙탈일까요?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에서는 아닙니다. 큰 규모에서는 균일함이 지배하니까요. 하지만 그 바깥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번엔 시간을 거꾸로 감아 봅시다. 우주는 점점 작고 빽빽하고 뜨거워지다가, 어느 크기(플랑크 길이)에 이르면 우리가 아는 물리 법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그 너머, 무한히 작고 뜨거운 시작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 찰나에 또 다른 괴물이 태어났을지 모릅니다. 원시 블랙홀입니다. 별이 죽어서 생긴 게 아니라, 갓 태어난 우주에서 밀도가 유난히 높았던 자리가 곧장 무너져 만들어진 블랙홀이죠. 일부 과학자는 이 작고 어두운 블랙홀들이 바로 암흑물질의 정체일지 모른다고 봅니다(아직 가설입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지금 모든 은하는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고, 멀수록 더 빠르게 도망칩니다. 이 팽창을 밀어붙이는 건 암흑에너지라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우주의 약 3분의 2를 차지합니다.
가속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끝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큰 찢김 — 암흑에너지가 점점 강해져 은하를, 별을, 끝내 원자 하나까지 갈가리 찢는 결말. 다른 하나는 더 조용한 열죽음 — 모든 것이 끝없이 멀어지고 우주가 서서히 식어 모든 빛이 꺼지는 결말입니다.
무한의 증거를 우리는 영원히 손에 쥘 수 없습니다. 무한의 본성이 그러하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그게 우리를 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끝내 닿을 수 없기에, 우리는 다만 볼 수 있는 것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뿐이죠. 거북이 등 위에 거북이, 그 아래 또 거북이를 따라 내려가듯이요.
망망대해 위 한 알 모래 같은 우리지만, 그 너머를 향한 호기심만큼은 작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가장자리까지 걸어가 그 너머로 손을 뻗어 봤고, 손끝에 닿은 건 답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한은 저 바깥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한순간 속에도 숨어 있죠. 다음 밤, 우리는 그 안쪽의 무한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그때까지, 부디 평안한 밤 되시길.
동료심사 저널·arXiv 초록을 직접 확인해 작성했습니다(검증 2026-06). 관측·측정 데이터 기반 · 프리프린트 동료심사 전/진행중 · 논쟁/가설 5σ 미달이거나 검증 불가. 통계의 ‘시그마(σ)’가 5에 못 미치면 ‘발견’이 아니라 ‘힌트’로, 다중우주·순환우주는 ‘가설’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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